어떻게 공부를 시작해야 할는지요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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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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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공부를 시작해야 할는지요

본문

질문

삼보님께 귀의합니다. 이 교도소 안에서도 부처님을 뵐 수 있어 주말 모임에 참석해 법을 듣고 있습니다만 무엇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고 그저 『반야심경』 『천수경』을 보면서 마음을 달래고 있습니다. 하지만 벌써 만 2년이란 시간이 흘렀는데도 남은 시간이 배로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마음이 나약해서인지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가 없던 차에 신문을 접하게 돼서 이렇게 도움을 청합니다. 부처님의 법을 배우고자 하는 마음은 한결같지만 어디서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하고 무엇을 시작으로 공부를 해야 부처님의 법을 배우고 제자가 될 수 있을까요. 남들처럼 그냥 경을 보고 외우며 사경을 한다 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아니다 싶고, 현재의 나이 43세이고 사회에 복귀해 48세인데 그때 나가서 공부하면 늦지 않을까 싶어 이렇게 너무나도 힘든 마음 내려놓는 공부를 할 수 있는 길을 여쭈고자 두서없는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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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삼보님께 귀의합니다. 이 교도소 안에서도 부처님을 뵐 수 있어 주말 모임에 참석해 법을 듣고 있습니다만 무엇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고 그저 『반야심경』 『천수경』을 보면서 마음을 달래고 있습니다. 하지만 벌써 만 2년이란 시간이 흘렀는데도 남은 시간이 배로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마음이 나약해서인지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가 없던 차에 신문을 접하게 돼서 이렇게 도움을 청합니다. 부처님의 법을 배우고자 하는 마음은 한결같지만 어디서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하고 무엇을 시작으로 공부를 해야 부처님의 법을 배우고 제자가 될 수 있을까요. 남들처럼 그냥 경을 보고 외우며 사경을 한다 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아니다 싶고, 현재의 나이 43세이고 사회에 복귀해 48세인데 그때 나가서 공부하면 늦지 않을까 싶어 이렇게 너무나도 힘든 마음 내려놓는 공부를 할 수 있는 길을 여쭈고자 두서없는 글을 올립니다.
답) 여러분이 부처님의 경을 뚫어지게 위로 꿰고 알로 꿰고 옆으로 꿴다 할지라도 우리가 마음을 그렇게 쓰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소소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어떤 때는 사람들이 “어떻게 빌어야 됩니까? 어떻게 기도를 해야 됩니까? 뭐를 어떻게 해야만 되는 겁니까?” 하고 묻습니다. 아니, 자기가 태어나서 자기가 살고 자기가 생활을 지금 하고 있는데, 그 생활 속에서 외롭다 괴롭다 고통스럽다 하는 그 문제점을 누구한테 물어봅니까? 자기가 더 잘 알고 있는 것을요. 그래서 그 자기가 있기 때문에 부처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바로 자기가 있는 데, 부처님은 바로 그 속에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 내기 이전 본래면목에, 그 실상에게 자기가 ‘이렇게 내가 지금 고통스러운 것도 당신으로 말미암아 생긴 것이니까 당신에게 일임합니다.’ 하고 놔 버리는 그런 자세, 좋은 일이 생겼을 때는 ‘당신이 형성시켜서 이렇게 좋은 일이 있으니 참 고맙습니다.’ 하고 놔라 하는 것입니다. 부어도 부운 사이 없고 꺼내도 꺼낸 사이가 없이 이렇게 자기 자신을 부처로 알고 항상 일체를 그렇게 지켜볼 수 있는 그런 자세로 해 나간다면 생활에 도움이 되고 울던 것도 웃게 되고, 만약에 운다 할지라도 그건 값비싼 눈물이 될 것이고 값비싼 눈물을 흘렸기 때문에 즐거움도 거기서 아마 샘솟듯 꽃이 활짝 필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녹음테이프에 녹음을 해 놨는데 그것이 영 안 없어진단 말이에요. 그랬는데 그 녹음테이프에 녹음이 돼 있는 데다가 다시 지금 착한 마음으로서 착한 도리의 녹음을 한다면 그 앞서의 뭉쳐서 녹음됐던 것은 바로 없어지고 말죠. 사대 오온이 다 공했으니 자기도 공하고 세상도 공했어요. 그러니 공한 데서 나온 거 공한 데다 다시 놓으면 바로 그것은 테이프에 녹음되었던 것이 다시 없어지듯 하는 겁니다. 지금 하루 24시간 동안에도 한 발짝 한 발짝 녹음했다 없애고 했다 없애고 하는 반복된 생활을 지금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공한 데서 나온 거 공한 데다 놔야 없어지는 거지, 만약에 그것을 ‘에이구, 될 대로 돼라. 난 착하게 하는 사람 더 잘사는 사람 못 봤어. 나는 이렇게 해서라도 살아야 되겠어.’ 한다면 안 됩니다. 착하게 하는 것도 끝이 있고 악하게 하는 것도 끝이 있습니다. 언제나 도둑질을 길게 하다 보면 꼬리가 밟히는 법, 착한 일을 길게 하다 보면 그것도 역시 꼬리가 밟힙니다. 사람이 꼭 악해서만이 아니라 자기가 모르고 저지른 일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모르고 저지르는 일은 모르고 받게 마련이고, 알고 저지르는 일은 알고 받게 마련입니다.
 
여러분은 고등 동물이 돼서 인간이 되기 때문에 사회상식이나 인간 도리에 어긋남이 없이 나쁘고 좋은 것을 안다는 겁니다, 본래. 그렇기 때문에 모르고 저지른 죄가 있다면 회개를 하게 되는 겁니다. 회개를 하게 되면 그 모르고 저지른 것이 녹음이 지워지면서 새로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녹음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알고 있는 그것을 바로 지금 현재에 회개하는 마음으로써 지우라는 얘기입니다. 즉 말하자면, 그 테이프에다 다시 녹음을 한다면 바로 그 앞서 거는 없어지게 돼 있다 이겁니다.
 
그런데 또 “나쁜 짓을 저질러 놓고도 주인공에 맡기면 되는 것입니까? 이해가 안 갑니다.” 하고 묻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왕 저지른 걸 어떡하느냐 이겁니다. 이왕 저지른 거라면 다시는 앞으로 저지르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이왕 저지른 거라면 바로 앞으로 저지르지 않겠다 하고 그 녹음테이프에다 다시 녹음을 해 놔라 이겁니다. 주인공에다 모든 걸 맡겨 놔라. 안되는 건 믿고 놓고, 되는 거는 감사하게 놓고, 모르는 거는 몰라서 놓고, 그렇게 모든 것을 몰락, 자기가 한 발 한 발 떼 놓는 거를 다, 잘한 것도 감사하게 놔라 이랬는데 하물며 잘 안된 거를 갖다가 놓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자기 의식에서 나오는 대로, 팔자운명대로 그렇게 끌려다니면서 살지 말고 앞서 입력된 걸 죄 없애라 이겁니다. 어떻게 없애느냐. 거기다, 주인공에다 모든 거를 ‘너만이 할 수 있어. 안되는 것도 너만이 되게 할 수 있어. 안되게 하는 것도 너, 되게 하는 것도 너니까 너만이 할 수 있어.’ 이러고 오로지 거기다가 다 일임할 때 바로 앞서 입력된 것이 없어지는 거죠. 입력이 새로이 들어가니까 앞서의 입력은 없어지면서 새로이 입력이 된다 이겁니다.

그래서 새로이 입력된 것이 현실에 나오니까 좋게 나올 수밖에요. 그러니 좋게 살 수밖에 없죠. 입력이 좋게 들어갔으니까. 전에는 입력이 그렇게 돼서 내가 이렇게 어지럽게 사는구나 하는 거를 몰랐으니까 그랬지만 이제는 알았으니까 절대로 나쁜 입력을 넣지 마세요. 그러면 현실로 금방 나와요. 그러니까 그저 주인공에다 무조건 맡기면 입력이 좋은 입력으로 되고, 절대로 자기 자부처가 자기를 못되게 하지는 않습니다, 절대로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고통스럽게 사시는 건 그렇게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무조건 자기 주처를 믿으셔야 합니다. 자기 주인공을 모르든 알든 이유를 불문에 붙이고 자기 주인공을 믿어야 합니다. 그 주인공만이 자기를 이끌어 줄 수 있으니까요. 남이 대신 죽어 줄 수도 없습니다. 남이 대신 먹어 줄 수도 없습니다. 대신 자 줄 수도 없습니다. 대신 아파 줄 수도 없습니다. 대신 똥 눠 줄 수도 없습니다. 어떠한 거라도 누가 대신 해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혼자 왔다 혼자 가는 길에 그냥 갈 수는 없다’고 하는 생각이 있다면, 자기를 자기가 리드해 간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믿고 거기에 맡겨 놔 보고 실험을 해 보세요, 그게 체험이 안되나 되나. ‘주인공이시여!’ 항상 이렇게 하십시오. 근본이 당신이니까. 주인공이시여, 모든 것을 당신이 형성시켜놨고, 당신이 모든 것을 하고 있으니 생각을 내게 하는 것도 당신이요, 생각을 안 내게 하는 것도 당신이니 모든 것은 당신에게 일임시키세요. 다 놔 버리세요. 놔 버리시고 모든 망상이 드는 것도 바로 그 자기 주처에서 내는 겁니다. 그러니 믿으세요. 믿고 놔 버리세요.
 
또 모든 들이고 내고 하는 것도 전부 주처에서 들이고 내고 합니다. 그러니 자기 주처를 주인공이라고 이름해서 붙이고 꼭 ‘주인공이시여, 감사합니다.’ 하고 모든 것을 거기다 일임시키십시오. 나는 죄가 많다, 나는 업이 많다, 이렇게 수많은 이름으로 업이니, 팔자운명이니 이런 언어도 붙이지 마시고 내가 죄가 얼마나 많기에 이런가 하는 생각도 마시고, 그런 생각도 그냥 자기 주인공에 맡겨 놓으세요. ‘모든 게 당신 속에서 나온 거니까 당신이 알아서 할 수 밖에 없지.’ 하고 놓고, 또 모든 게 좋게 되면 ‘아, 감사하구나.’ 하고 또 놓고 말입니다.

이 도리를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거지마는 이렇게나마 여러분이 안다면 주인공에다가 놓을 수 있는 자신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니 주인공에서 나오는 일들은 바깥에서 하는 일이나 안에서 하는 일이나, 안에서 생각나는 거나 바깥에서 내 몸이 움죽거리는 거나 모든 게 나로 인해서 생긴 거니까, 내 주인공에서 나오는 것을 다시 그 자리에 되놓으라고 한 겁니다. 그러면 강한 것도 녹고, 부러뜨리는 것이 아니라 마치 용광로에 넣으면 다 녹듯이 그렇게 모든 걸 녹여나가다 보면 홀연히 과거 자기와 현재 자기가 둘이 아니게 상봉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때서부터 진짜 공부를 시작하는 거죠.

이 세상의 모든 살림살이가 다 여러분이 이날까지 해 왔지 누가 해 줬습니까. 자기가 있고부터 이 세상이 있는 줄 알았고, 이 세상이 있는 줄 앎으로써 생활이 어떻게 돌아간다, 또는 나쁘다 좋다를 알았지 않습니까, 모두가 다. 그러니까 자기로부터 알아야지요.
 
자기가 어디서 왔나, 어디로부터 왔나? 자기 주인공에 모든 것을 관하되 ‘참나가 어딨나? 이 몸은 어디서부터 왔는가? 참나는 무엇인가?’ 이러고 관하십시오. 바깥으로 말로만 그냥 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말도 없이 생각 자체에 깊숙하게, 침착하게, 정성스럽게 믿음을 가지고, 앉으나 서나, 깨나 자나, 변소에 가나, 나거나 들거나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생활 불교며 생활 참선이며 바로 이것이 좌선도 되고 참선도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편안하면 좌선이죠. 이해되십니까. 앞으로도 신문지상으로나마 계속적으로 공부하시다 보면 점차 이해가 되실 겁니다. 열심히 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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