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 있게 마음 쓰는 게 쉽지 않아요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건전한 게시판 문화를 위하여 성격에 맞지 않는 게시물, 광고 등 유해성 글들은 관리자가 임의로 이동, 삭제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질문을 올리기 전에, 게시된 글들을 참고하시면 많은 도움이 됩니다.

여유 있게 마음 쓰는 게 쉽지 않아요

본문

질문

저는 중국에서 좀 크게 사업을 하다가 믿었던 사람에게 회사를 다 뺏기다시피 했습니다. 그래서 정말 살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큰스님께서는 도둑놈이 들어와도 “가져갈 것도 별로 없지만 가져갈 거 있으면 가져가라.” 또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뭔가 좀 갖다 주면서 “이것밖에 없으니 이거 가져가시오.” 그랬다는 얘기를 듣고, 제가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나 같은 일반 사람이 이런 상황에서 그런 식으로 여유 있게 마음을 쓰기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그 오죽해서 그랬겠습니까. 그래 내가 그럽니다. 어떤 때는 “그 오죽해서 왔겠느냐. 그걸 짜증내지 말고 주어라. 주되 줬다는 생각조차 하지 마라. 너로 바꿔서 한번 생각을 해 볼 때, 그렇게 없을 때에 그건 말이 그렇지 그 도리를 모르면은 자연적 마음이 가난해지고 궁색하게 되니까요. 그럼 행동도 궁색하게 해요.
 
그래서 내 집이 눈 깜짝할 새에 다 달아나갔다 하더라도 눈 깜짝도 하지 마라 이겁니다. 왜? 다 달아나갔어도 눈을 깜짝 안 하면은 그것이 달아나간 게 아니라 되돌아서 나투면서 또 돌아옵니다. 그러나 그것을 애원하게 하고 원망하고 그냥 저거 하면은, 그 돈이 만약에 사람이라면요, 나갔다 ‘아이, 저 집은 저럭하기 때문에 아이 귀찮아. 저 집 들어가면 아주 귀찮아서 죽겠어. 그냥 붙들어 매 놓고는 어디 나가지도 못하게 하고 그냥 그러기 때문에 귀찮아서 죽겠어. 난 안 들어가, 그 집에.’ 그러고 안 들어갑니다.
 
그러나 이걸 아주 허심탄회하게 그냥, ‘나가겠으면 나가고 들어오겠으면 들어오고 마음대로 해라. 에이그, 나가게 되니까 너 나가라.’ 하고선 ‘나가겠으면 나가라.’ 이렇게 탁 틔어 놓으면은, 그 돈이 사람이라면 나가서도 그냥 그 집 생각이 굴뚝 같을 겁니다. 그 집에선 그렇게 허심탄회하게 그냥 여여하게 지냈는데 이게 나가다 보니까는 아주 궁색하고 그런 집에 들어가고 싶지도 않아요. 그래서 다시금 돌아서 다니다가 이 집에 도로 들어옵니다, 사람이라면. 비유해서 얘깁니다. 돈이 말입니다. 그래서 그 도리를 알면 이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참, 지혜가 넓고 풍족해지고 마음이 그렇게 여여해질 수가 없으니 어찌 가난하랴. 죽을 먹은들 어찌 가난하랴 이겁니다.
 
여러분은 돈에 대한 애착, 자식에 대한 애착, 그것이 아주 제일 크더군요, 내가 감지할 때. 그래서 상원사 지을 때 “야! 오천만 원 있으면 천만 원씩 가져와. 그러면 내가 너 해 달라는 대로 해 줄 테니까.” 그랬습니다. 왜냐? “당신네들이 와서 덕을 빌고 쓰레기를 치워 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아, 오천만 원 있으면 천만 원은 가져와야지, 무슨 소리야?” 그럭하기도 했습니다마는, 그렇습니다. 사람이 부자로만 살던 사람은 가난한 도리를 모릅니다. 그 돈을 다 내 버리고 다 망쳐 버리고 난 뒤에야 자기 정신이 번쩍 나는 거죠. 그래서 몽땅 파서, 파서 버려라! 버려라! 이러니까 어느 사람은 그냥 막 갖다가 그냥 버렸죠. 버리고서 난 뒤에 다시 버림 없이 버렸고 또 오는 것은 ‘내가 가져야지.’ 하는 생각이 없으니까 그때서야 알뜰하게 그 재산이 모이더랍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만약에 “야! 이러한 문제를 가지고 여러 사람들을 고치기 위해서, 여러 사람들을 이익하게 하기 위해서 이 집 하나 지읍시다. 우리 병원 하나 지읍시다.” 이러더라도 그것은 자기가 만약에 오백만 원짜리 집이 있다면은 백만 원이라도 내놔서 이거는 짓게 되면은 그거는 거기서 다 또 나가게 되죠. 오백만 원짜리 집 짓고 있다가 백만 원 내놓으면은 사백만 원짜리 전세입니다. 그런데 그 전세가 나중에는 사천만 원짜리 집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걸 모릅니다. 전체 몰라요. 그저 붙들고 내놓질 않기 때문에. 아까 내가 여북하면 그 돈을 사람으로 비유했겠습니까. 사람이 하도 붙들고 놓질 않기 때문에, 왜 이런 게 있죠.
 
사회에서도 아무리 좋은 직장이라도 그 여러 해를 그냥, 10년 20년 하다 보면은 권태가 나죠. 권태가 납니다. 아주 그냥 지긋지긋합니다. 그렇게 지긋지긋하게 하지 마라 이겁니다. 그래서 이리로도 가 보고 저리로도 가 보고 이럴 때 비로소 그게 좋은 직장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그랬을 때 권태가 나지 않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돈도 역시 그렇습니다. 그냥 붙들고 늘어지면은 그 돈이 지겨워서도 나갑니다. 반드시 그건 나가게 돼 있습니다.
 
내가 수차에 그건 경험해 본 얘기고, 그래서 내가 “될 수 있으면 그 마음을 내서 사심 없이 왼손이 하는 거 바른손이 모르게끔 시주해라. 그러면은 그것이 바로 무한량 돌아다니다가 이자가 붙고, 달라 이자가 붙고 그래 가지곤 너희 집으로 도로 찾아간다.” 그러기도 합니다.

옛날 얘기 하나 할까요? 예전에 어느 사람이 동네에서 전부 그 땅 아니면 딛고 다닐 수가 없으리만큼 부자였습니다. 근데 어떻게나 그냥 노랭인지 말입니다, 그냥 붙들고 놓질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손자 대로 내려갔습니다. 아들하고 아버지하고 살다가 아들이 꼼짝을 못했으니까 손자 대로 내려갔어요. 아버지도 죽고 인제 할아버지도 죽고 손자 대로 내려가서는 그냥 몰락 다 나간 거예요. 그래서 공부를 많이 해 가지고도 저, 우산 고치는 거 있죠? 그거 억지로 못합니다. “우산 고치시오!” 그러고 다니는 사람이 돼 버리고 말았다 이겁니다. 그게 뭡니까? 부모가 그렇게 해 놓은 그 업이 내려가면서 그렇게 연결돼 돌아가니까 말입니다. 그럭한다고 그게 꼭 붙들려서 있습니까?
 
그래서 아무 걱정 하지 말라는 겁니다. 저녁에 죽을 먹더라도 걱정하지 말라 이 소리에요. 걱정하지 않는다면 온다 이겁니다. 와요. 근데 그 생각을 그렇게 놓질 못하는 겁니다, 도대체. 그래서 내가 그러지 않습니까. 그런 걱정, 천만 원 아니라 이천만 원이 생긴다 하는 거를 놓쳤다 하더라도 애원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것 또 쫓아가지도 말고, 오는 것 막지도 말고 가는 것 잡지도 말라 이겁니다.
 
아예 그냥, 그냥 놔 버려라. 그래야 그 도리를 알 수 있는 거지, 만약에 그걸 붙들고 늘어지고 그냥 모든 거를 다, 이 몸 아픈 것도 그렇고 애착을 두고 그냥 그냥 ‘아이구, 내가 이게 이렇게 아픈데 내가 설법을 어떻게 들어? 아이구, 내가 저기 드러누워야 좀 낫겠지.’ 그까짓 몸뚱이가 뭐기에, 항상. 그렇게 아끼니까, ‘에이구, 난 네가 아끼니까 더 붙어 있겠다.’ 요렇게 되는 거예요, 병도.
그러니까 사람이라는 건 모든 걸 몽탕 그냥 다 놔 버려야 되는 겁니다. 그냥 죽겠으면 죽고 살겠으면 살고, 그저 그냥 막 돌아다니면서. 그러한 그 믿는 마음으로다가 그렇게 내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목록

대한불교조계종 한마음선원(13908) 경기 안양시 만안구 경수대로 1282Tel. 031-470-3100Fax. 031-470-3116
Copyright (c) 2021 HANMAUM SEONWON. All Rights Reserved.
"이 제작물은 아모레퍼시픽의 아리따글꼴을 사용하여 디자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