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아닌 길을 걸어가려면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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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아닌 길을 걸어가려면

본문

질문

이 마음공부를 알고부터 모든 것을 주인공에 놓고 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음이 편안하고 걱정이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 길 아닌 길을 걸어 보려면 어떻게 마음을 내야 되는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여러분 모두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벌써 원소를, 자기가 생명력을 가지고 나옵니다. 생명력을 가지고 거기 들어가서 모습을 받는단 얘기죠. 그런데 자기 원소가 그렇게 고생을 하고 수억겁을 거치면서 그렇게 진화하고 형성되는 그 고생은 모르죠. 자기가 그렇게 고생하고 거기 입증해서, 즉 말하자면 태어나는 거는 자기 소관이란 말입니다, 모두가. 부모의 소관이 아니라 자기의 소관이란 말입니다. 차원이 높고 낮고 그런 것도 자기의 소관이죠, 다. 그러니까 자기가 모습 있는 인연을 따라서 소중하게 받은 그 모습으로, 바로 자기, 보이지 않는 자기를 진짜로 믿어야 된다. 그건 바로 즉, 만법을 행할 수 있는, 색색가지로 만법을 행할 수 있게 하는 에너지다 이런 말입니다. 에너지니까 그 에너지를 부처님께서는 ??별성??을 봤다고 했고 또 우리가 불가에서 ??불성??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에너지 주장자??라고도 합니다.

우리가 문을 찾을 때 지혜롭게 찾아야 문 없는 문을 마음대로 다닐 수 있다. 문을 찾아다니는 건 육신을 가진 사람이나 문을 찾아다니지, 육신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문이 있어도 그냥 문이다. 이렇게 될 때 여러분이 그 원소 자체의 그 불성은 문이 없어도 왕래할 수 있는 겁니다.

아난이 ??형님, 내가 형님을 뵙고 가고 싶습니다.?? 하니까 가섭 존자의 말이 ??너 그렇게 들어오고 싶으면 열쇠 구멍으로 들어오너라.?? 이랬거든요. 그걸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들어올 수 있으면 열쇠 구멍으로 들어왔다가 가라 이겁니다. 열쇠 구멍이 문도 될 수 있는 거라면 이 봇장이고 벽이고 그런 게 뭐 소용 있습니까? 우리가 그렇지 않으면 50%를 즉, 정신계로 활용할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지금 원소는 정신계를, 왼쪽 두뇌의 정신계를 말하고 또 바른쪽은 물질계를 말하는 겁니다. 이거를 혼합시켜서 이게 같이 이렇게 돌아가는데 여러분은 같이 돌아가는 거를 이해를 못합니다. 이 우리가 머리에 하나의 지혜가 트이면 열 가지 백 가지가 트인다고 그랬습니다. 어떤 것이든 들이대면 그게 법이 되고, 어떤 것이든 들이대면 그대로 결정이 나고, 어떤 것이든 들이대면 그냥 활용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살아나가는 데 정신계의 문제나 물질계의 문제나 같이 반반 섞여서 돌아가는데 우리는 그걸 이해를 못하고 그냥 갑니다. 모두 물질이 나라고 생각하고, 내가 했다고 생각하고, 내가 망했다고 생각하고, 내가 잘했다고 생각을 하니까 뭐든지 그게 핀트가 안 맞는 거죠.
 
여러분이 차를 가지고 다니시죠? 차가 여러분이라면 말이 됩니까? 차는 여러분이 쓰는 즉, 사용하는 차입니다. 그런데 우리 원소 자체가 보이지 않는, 함이 없는 나가 사용하는 것이 이 모습입니다. 이 모습을, 즉 말하자면 시자로 씁니다, 심부름꾼으로. 우리가 차 쓰듯이. 그런데 나라고 그런다면 그게 안되죠. 말이 안되죠, 그게. 운전하는 주인이 반드시 있는데 차가 자기라고 그러니까 이게 핀트가 맞지 않아요, 모두가 사는 게. 그래서 이게 과거로부터 선조들까지도 문제가 됩니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믿음이라도 진실하게 있으면 몰라도. 믿음을 가지면 그냥 아무 데라도, 돌자갈이라도 믿고 저거 한다면, 그게 아주 크게 이루어질 수  있는 그런 에너지통이 돌봐서 그렇게 되는데, 그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닐 때 고집부리는 거는 멍청한 고집이죠. 우리가 고집이 세고 그렇게 아주 괴롭고 망종스럽게 산다, 이런 거 말입니다.
 
지금 우리 인간이 컴퓨터를 만들어 놓고 컴퓨터를 누르고 살죠? 우리가 컴퓨터를 누르고 사는데 사람이 만들었기 때문에 사람이 누르고 산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북두칠성으로 인해서 그 왕별이, 큰 별이 그 생명력을 애당초에, 최초에 줬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 그 마음의 원소 자체에서 모두 만법을 들이고 내고 살게끔 그렇게 해 놨습니다.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길은 이 세상에 어느 길치고 길 아닌 데가 하나도 없다 이겁니다. 허공도 길이요 지구도 길이요 우주도 길이다. 우리가 몸뚱이를 생각할 때 한번 지구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지구가 우리의 집이라고 생각한다면 몸뚱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알궁달궁 생명체들이 그 속에서 이렇게 살고 있는데 이 몸속을 한번 들여다보십시오. 어떻게들 살고 있나. 몸속에서들은 그러죠. 몸속에 들어 있으면서 의식들은 ??아이고, 지구 우주에서 지금 그런 사령이 내렸으니까 그대로, 마음을 그대로 바쳐 드려야지.?? 하고 그냥 나오는 대로, 사람이 마음 쓰는 대로, 그냥 도둑질을 하면 도둑질 하는 대로, 또 선한 일을 하면 선한 일을 하는 대로 이렇게 따라 준단 말입니다, 의식들이. 참 문제가 큽니다. 의식들이 이렇게 따라 주는데 그걸 사람들이 생각을 못 해요.

그러니까 자기 모습은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으니 자기가 결정을 짓지 말고 모든 걸 주인한테, 주처한테 맡겨 놔라. 그러니까 일할 때는 행선이고, 앉았으면 좌선이 되고, 또 길거리를 다닐 때는 입선이 되고 누웠을 때는 와선이 되느니라. 그것이 조금도 그른 사이가 없이 요만큼도 틈이 안 나게끔 돼 있는 자체다. 그게 그냥 참선이다, 여러 가지로 따질 게 없이.  참선이니까 우리 생활이 그냥 ??도??니라, 이런 거예요. 우리 생활이 도지, 우리 생활 떠나면 뭐가 있느냐. 네가 떠나면 뭐가 있느냐. 하나도 없다. 모두 각자 여러분이 계시기 때문에 종교도 있다느니, 진리도 있다느니, 부처도 있다느니, 세상도 있다느니, 에고도 있다느니, 또 편안함도 있다느니 이런 게 모두가 필요한 거죠.

그러니까 그 도리를 완전히 우리가 알아야만 되겠다 이겁니다. 컴퓨터를 우리가 만들었으니까 우리가 누르고 산다. 또는 우리가 누르는 거는 우리 자체가 바로 불성 자체, 별성의 근본이기 때문에 에너지통이 그냥 여기 들어 있다. 그러니까 작으나 크나, 차원이 높으나 낮으나 그거를 알고 진행한다 하면은 그냥 자기가 자꾸 크게 만드는 겁니다. 자동적으로 아쉬우면 꺼내 쓸 수 있는 거, 전력을 그냥 꺼내 쓸 수  있는 거. 그것이 에너지가 멀리 있는 게 아니고 지구 바깥에, 우주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내가 있기 때문에, 나 자체 내에 있기 때문에, 나 자체 내에 그 문이 있기 때문에, 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단 얘기죠. 그러니까 이 속에, 암흑 속에는 에너지를 발현할 수가 있고 이 거죽에 속하는 데는 에너지를 발생해서 쓸 수 있는 데입니다.
 
우리가 컴퓨터를 눌렀을 때 이걸로도 변하게 하고 이걸로도 나오게 하고 저걸로도 나오게 하고 부산으로도 갔다가 제주도로 갔다가도 이렇게 누르지 않습니까? 우리 마음은 천국에도 갔다가 지옥에도 갔다가, 서울로 왔다가 부산으로 갔다가 이렇게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 세상에 인간이 미생물로 인해서 조그맣게 생명이 생겨서,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진화가 되고 이렇게 사람까지  몇 번씩 태어나도 그냥 그 자리를, 지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그렇죠. 그러나 우리가 지금 이 지구 안에서 벗어난다면 세세생생을 벗어날 수 있다는 얘기죠. 어디에 갇혀서 우리가 산다고 보세요. 병 속에서 갇혀서 산다 이런다면 답답하지 않겠습니까? 답답함을 느끼죠. 자유스럽게 훨훨 날아다닌다면, 구속받지 않고 날아다닌다면 얼마나 편안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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