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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고 하는데

본문

질문

부처님께서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고 하셨다는데 그 까닭이 무엇인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여러분이 말하고 움죽거리죠? 만약에 생명의 근본이 없으면 그건 무효입니다. 또 육신이 없어도 무효고, 생각 내는 게 없어도 목석이에요. 이 몸뚱이, 육근, 육진, 육식이 움죽거리는 게 다 우주의 혹성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된다면 이게 없어도 아니 되고 저게 없어도 아니 되는데, 그것이 종합된 근본이 불성이에요. 그러니까 "부처님 법이 어떠한 것입니까?" 하고 물으니까 "이리 오너라, 가르쳐 줄게." 이러고는 멱살을 쥐고 발길로 차고선 주먹으로 한방 지르니까 "아이고!" 하고 쓰러지더라는 거죠. "요놈! 지금 '아이고!' 하는 놈이 누구냐?" 하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생각을 내는 것이 즉, 법이지요. 여러분이 이 정신세계의 50%를 모르고 그냥  물질세계로만 간다면 그것이 망상이지마는, 이 도리를 한데 합쳐서 모든 것을 맡겨 놓고 거기서 들이고 낸다는 것을 실감한다면 바로 그게 법이 되는 겁니다.
 
법이 돼서 나를 끌고 다니는, 과거에도 끌고 다녔고 지금도 끌고 다니고 미래에도 끌고 다닐 거다. 그런데 과거는 아까 한 시간 전만 하더라도 과거예요. 조금 아까도 과거죠. 그래서 과거는 지나갔으니깐 없고, 아직 오지 않았으니깐 미래는 없을 것이고, 현실은 공해서 돌아가니깐 또 없어요. 그런데 그 없다는 이유가 어데 있을까요?
 
이 모든 것이 한 발 들고 한 발 놓고 한 발 들고 한 발 놓고, 그저 자나 깨나 맥박이 그저 오르락내리락 오르락내리락 하는 거와 같기 때문에, 어떤 거를 할 때 내가 했다 할 수 없기 때문에 공했다 한 거고 "무(無)" 했던 겁니다. 그러니까 '없을 무' 자가 아니라 '있을 무'지요. 왜 내가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그 모든 거를 갖추어 가지고 있어야만이 사람이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눈이 하나가 없어도 병신이고 귀가 하나 없어도 병신이에요.  손가락 하나만 없어도 병신이죠. 그러니만큼 모든 것이 종합된 자체에서 그냥 일체 생활하고 들이고 내고 돌아가는 그 자체가 바로 불성입니다. 불성 자체가 돌아가게 하고, 말하게 하고, 행하게 하고…, 이렇게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 불성이, "내 마음이 그렇게 일체를 들이고 내는 걸 어찌 알았으리까." 이랬지 않습니까. "내 마음이 그대로, 생활 그대로 여여함을 어찌 알았으리까." 자기가 자기를 모르면 그 도릴 모르거든요.
 
그러니깐 유마힐 거사가 병을 앓았을 때 병문안을 문수가 갔을 때 얘기죠. "나는 중생들이 다 나아야 내가 병이 낫는다." 했잖아요. 그걸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 몸속에 들어 있는 중생들이 지금 작용을 안 해 주면 이 몸뚱이가 쓰러지죠? 이 속의 중생들이 다 작용을 해서 병이 나아야 내가 병이 낫죠? 안 그렇습니까? 그러니까 모든 게 둘이 아니다 이겁니다.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다 한 것도 그 뜻이에요. 너부터 알아라 한 것도 그 뜻이에요. 사대 성인들도 너부터 믿고 너부터 알라 했듯이. 너한테서 물러서지 말라. 모든 거를 다 놓고 갔을 때에, 어차피 죽을 때는 몸뚱이까지 다 놔야 됩니다. 그런데 마음으로 다 놔야 하나도 버릴 게 없이 됩니다. 나 아님이 하나도 없이.
 
그렇기 때문에 불성이란…. 왜 이런 게 있죠? 차가 갈 때에 딱 고정되게 있는 거는 있는데 그거는 구르지를 않아요. 바퀴만 구르지. 그와 같은 겁니다. 심봉이란, 인간의 뿌리란 그렇게 돼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내놓을 수도 없고 보일 수도 없고 빛깔도 없지만 허공은 허공대로 있듯이 마음도 그렇게 있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딴 데서 찾지 마세요.

 내가 항상 이런 말을 합니다. 아, 길을 가다 엎드러지면 땅을 짚고 일어나지 허공을 허우적거려서 일어날 수 있겠느냐고요. 그 속에서 나온 거, 그래 천백억화신이라고 그러죠? 예를 들어서 병이 났으면 '야, 네 몸뚱이 네가 건강하게 해서 끌고 다녀라.' 그러고 맡겼을 때, 그게 진짜로 믿어야 맡기지 믿지 못하면 맡길 수가 없어요, 또. 거기다 진짜 그렇게 맡겼을 때 약사 의사가 됩니다, 그냥 그 자체 내에서. 가난해서 애달플 때 거기다 맡기면 관세음이 되고 명이 짧아서 아주 애원을 했을 때, 식구 중에 어떠한 문제가 있을 때, 또 거기다가 '너밖에 해결할 놈이 없다. 너밖에 이끌어 줄 놈이 없다.'고 맡길 때 그때는 칠성부처가 되죠. 그러니까 좋은 데로 못 간다고 애원하지 말라 이겁니다. 좋은 데로 못 갈 것 같으면 모든 것을 거기다가, 마음의 용광로에다 다 넣고 그렇게 '좋은 데로 가는 것도, 가게 하는 것도 너밖에 없어.' 한다면 그냥 지장이 돼 버립니다. 한 순간에, 한 순간에 바꿔지면서 돌아간다 이겁니다, 화해서.
 
생활하는 데도 그렇지 않습니까. "형님!" 하면은 그냥 형님으로, 자동적으로 형님 노릇을 하죠? 말도 행도 그렇죠? 그런데 아버지가, 어머니가 "얘, 아무개야!" 불렀을 때 자동적으로 또 자식의 노릇을 합니다. 또는 장가 든 사람은 자동적으로 사위가 되고 남편이 되고 이렇게 돌아갑니다. 부처님의 마음도 그렇게 화해서 돌아간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이 둘이 아니다. 이 물질적인 체는 어저께 게 있고 오늘 게 있지만, 마음이라는 것은 삼천 년 전에 있던 마음이나 지금 현재 있는 마음이나, 많이 모여도 한마음밖엔 안 됩니다. 그런데 그 한마음도 없어요. 체가 없단 말입니다. 그러니깐 마음과 마음이 수없이 한데 합쳐도 하나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와 같이 하나로 돌아가는 것조차도 없다고 한 뜻이 바로 공해서 화해서 나투면서 돌아가니까 그러는 겁니다.
 
빗방울이 수없이 쏟아졌어도 그 한 바다에 들어갔다면 한 바다지 빗방울이 따로따로 있는 게 아니죠. 그래서 우리들의 마음은 창살 없는 감옥에다가 자꾸 이렇게, 즉 말하자면 살아나가는 습관으로 인해서 모두 꼼짝하지 못하고 묶여 있지 말고 마음을 탁 틔워라 이겁니다. 마음은 체가 없어서 광대무변하고,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앉았어도, 집에 갔다 오려도 갔다 올 수 있죠?  또 지구 바깥을 벗어나려도 벗어날 수 있어요. 이 모두가, 마음이라는 게 광대한 겁니다, 아주.
 
그러니까 불성이 없다 있다 하지도 말고, '천상천하에 유아독존'이라고 부처님께서 한 거는, 농사꾼은 농사꾼들 틈에는 농사꾼이 제일 으뜸이죠? 개개인이 다 높아요. 높지 않은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근중하지 않은 게 하나도 없고.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나 아님이 없고, 내 자리 아님이 없고, 내 손 아님이 없고, 내 발 아님이 없어서 '평발' 이랬고, '평손' 이랬습니다. 이 도량도 내 도량 아님이 없다. 내 몸 아님이 없고. 그래서 모든 게 높은 것도 없고 얕은 것도 없고, 모두가 독존이다 이겁니다. 그래서 천상천하에 모두가 독존이다. 모두가 중요하단 얘깁니다, 모두가. 그래서 천상천하에 유아독존이라고 한 것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불성이 보이지 않는다, 들리지 않는다 해서 없다고 하지 말고, 자기가 진짜로 자고 깨고, 먹고 눕고 일하고 이러는 게 그대로 불성이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지, 불성이 없다면 어떻게 이게 움죽거리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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