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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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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의 마음자세에 대해

본문

질문

요즘 보면 정치하는 사람들이나 종교계의 지도자들이나 다 자기 개인의 이익 때문에 전체를 살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저도 그런 사람 중의 한 사람인지라 부끄럽습니다만 지도자의 마음가짐에 대하여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예전에 달마 대사가 양 무제라든가 누구라든가 믿지를 않으니까 그렇게 화신으로써 방편이라도 써야 했죠. 어느 스님이 그 짚신 한 짝 얘기를 하기에 "그 작대기에다가 우린 지금 안 하고 다닙니까?" 그랬어요, 내가. "스님은 지금 당신 작대기가 당신 몸을 꿰 가지고 끌고 다기지 않습니까?" 하니까 "그렇죠!" 하곤 손바닥을 치면서 아주 퍽 좋아하시더군요.

그랬는데 그 달마 대사이기 이전에 우리가 지금 그럭하고 다니는 겁니다. 정치하는 사람도 신 한 짝을 하늘에다 놓고 신 한 짝을 땅바닥에 놔야만이 정치를 할 수 있는 거지요. 만약에 무의 세계에 내가 없고 유의 세계에만 있다면 유의 세계만 보고 물질만 보고 나가다간 정치를 못해요. 마음 세계. 이게 마음이라는 것도 어폐가 있는 말이지만 우리가 한마음이라 한다면 한 그릇을 말하는 거예요. 그러니깐 이게 방편의 표현이죠.
 
그러니까 전체 우리가 그러한 뜻을 볼 때에 그것은 묘지 속에 신 한 짝이 거기 놓여 있고 하는 건, 이 우주 속에 전부 하나에 뭉쳐 가지고 있는 자기의 자기가 또 있고, 지금 현재에 화해 가지고 화신으로서의 그 방편으로 보여준 거죠. '나는 산 것이 없기 땜에 죽을 것도 없다.'는 그 사실을 알려 주고, '너희들도 이렇게 작대기에다 꿰어 가지고 네 몸뚱이로 다니는 거뿐이다.' 그걸 일러 주신 거예요. 그런데 양 무제는 그것도 그때는 몰랐단 말입니다. 그러니 참 미거했다는 얘기죠.
 
그러니 우리가 지금 가만히 볼 때에, 각 사찰이나 모든 종교인들을 볼 때 가톨릭교든 기독교든 다 봐도 지금 자기 제자들도 그렇게 가르치질 못하고 있고 또 신도들한테 그렇게 당겨 줄 수가 없어요. 그런데 이렇게 밝고 밝은 세상에, 이렇게 좋은 시기에 우리가 지금 이 공부를 안 하고 어떻게 그냥 갑니까? 필수적으로 우리는 해야 하는 문젭니다, 이게.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내가 지금 안테나가 서지 않았으면 절대로 무전도 들을 수 없고 남의 소리를 들을 수가 없기 때문에 그것은 보이는 데서 듣는 거, 보이는 데서 보는 거, 보이는 데서 행하는 것만 알고선 그냥 생각을 그대로 하기 때문에 입력이 그렇게 되는 거죠. 만약에 그 보이지 않는 데 50%를 완전히 알아서 그 보이는 50%로 내놓고 또 안으로 들여놓고 한다면, 그게 입력이 다 되니까 우주 이 법계에서 다 알고 그냥 선처가 다 들어오죠. 그러니까 전부 부하 아닌 게 없고, 전부 나 아닌 게 없고, 부처님 자리 아닌 게 없다 이 말입니다, 모두가. 병이 났을 때는 모두 무정물 생물 또는 식물이 전부 액체로 그 약이 돼 가지고 체내에서 모두 즙을 내서 분배하듯이, 그 우주간에서도 전부 분배를 해 가지고 돌아오는 거죠. 자동적입니다, 이게.

그래서 여북하면 부처님은 병자를 낫게 해 주는 왕이라고 그렇게 불리기도 했다는 얘기죠. 당장 그 중생들이 자꾸 와서 자기 고달픈 걸 말하니까. 이 사대에서 일어나는 것은 반드시 악업 선업으로서의 뭉쳐진 덩어리기 때문에 자꾸 나오는 거죠. 즐거움도 있는가 하면 거기서 고통도 있고 아픔도 있고 슬픔도 있고 고독함도 있고 여러 가지 그냥 시시때때로 나오는 것을, 그 입력이 돼서 자꾸 나오는 걸 어떻게 감당을 합니까? 그러니 거기다가 되입력을 해 놓는다면 앞서 것이 없어지고 현실에 넣는 것이 자꾸 나오기 때문에 즐겁고, 정말이지 나날이 밝아지는 그런 형태가 나오고, 아래로는 제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고, 위로는 그 은혜를 갚는 능력이 생기고 또 두 마음이 아닌, 둘이 아닌 도리를 알게 되고, 무의 세계 유의 세계를 한꺼번에 걷어쥐고 할 수 있는 그런 용기와 당당함과 그런 게 생기는 거죠.
 
그러니까 모든 것이 우리가 이러한 도리를 하는 데에 그 달마 대사가 그랬듯이 우리가 지금 한 짝은 무의 세계에 있고 한 짝은 유의 세계에 있다 이겁니다. 그 도리를 안다면 지금 어느 별성이나 어는 혹성에도 여러분이 있다는 얘기죠. 그건 거기만 있는 게 아닙니다. 이 공부를 하면 마음은 찰나에요.  오백 년 전으로  지금 금방 돌아갔다 올 수도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거는 법왕이라고 그랬습니다, 법왕!
 
무의 세계와 유의 세계가 이 벽이 없다. 저승 이승이 벽이 없다. 이쪽은 이승세계, 저쪽은 저승세계라 하고 전자의 그 선지식들이 요렇게 금을 그어 놓고 여기는 저승이니까 넌 들어오기만 하면 죽는다 요렇게 걸리게끔 해도요, 이 도릴 공부한 사람은 픽 웃고선 그냥 아무 소리 안 하고 그냥 넘어오죠. 그런데 덜 떨어진 사람은 거기 걸려서 못 넘어옵니다. 감히 어떻게 넘어옵니까? 모르니까. 자기가 있기 때문에 죽을 것이 두려운 거죠. 만약에 자기가 없다면, 둘이 아니라면 되는 거고, 또 그 스님과 둘이 아니라는 걸 안다면 그냥 넘어와요. 그래서 이 도리가 아니라면, 이승 저승을 다루지 못한다면 이승 천자 저승 천자 노릇을 못한다는 얘기죠. 법왕 노릇을 못한다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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