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과 계합하기 위한 실천행은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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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과 계합하기 위한 실천행은

본문

질문

우리가 이 진리를 깨달아 주인공에 계합이 되려면 어떤 실천행을 해야 되겠습니까.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우리가 이 진리를 탐구하는 데는 열심히, 어떠한 것도 보지 말고 어떠한 분별을 가져서도 아니 됩니다.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분별을 하면은 통달을 못한다." 하셨습니다. 벌레 속에 들어가도 어리석다는 생각이 없어야 하고, 또 돼지 속에 들어가도 어리석다는 생각이 없어야 합니다. 삼독이나 역시 일체 번뇌 망상, 이 속에서도 걸림이 없고 분별이 없어야 합니다. 누가 죽인다 하더라도 분별이 나오지 않고, 부처님 한자리에 앉았다 하더라도 쾌활하게 생각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사로이 그냥 이론으로는 알지만 진실히 행동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말로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이리 꿰어 맞추고 저리 꿰어 맞춰도 다 아는 것이 바로 이 부처님의 말씀이지요. 그러나 여러분은 말씀을 가지고 따르려고 하지 말고 그 말씀을 거름 삼아서 행동으로써 실천궁행하는 데 목적을 둬야 하는 거라 이겁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심안으로 천지를 다 본다 하더라도 도가 아니니라." 했습니다. "우주 천지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듣는다 하더라도 도가 아니니라." 다섯 가지 오신통, 다 보고 듣고, 가고 옴이 없이 행하고, 남의 속을 알고, 남이 어디서 온 거를 알고. 이것을 타심통이니 숙명통이니 또 천이통이니 신족통이니 천안통이니,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부처님께서 다섯 가지를 다 알면서도 도가 아니라고 그랬느냐 이겁니다.

여러분은 물이 여기 분명코 있는 것을 아시고 봤습니다. 전에도 그렇게 말했듯이, 이것을 내가 목마를 때에 아무 끄달림이 없이 마실 수 있고 줄 수 있어야만이 이것이 실천궁행입니다. 여러분은 그 뜻을 잘 들으셔야 합니다. 보기만 해도 도가 아니니라. 구름을 타고 오고 가고 빛보다 더 빨리 왔다 갔다 한다 하더라도 도가 아니니라 그랬습니다. 심안으로 전체를 다 봐도 도가 아니고 말입니다. 어디서 온 거를 알고 남의 속을 뻔히 알고 이래도 도가 아니니라 했습니다. 왜 도가 아니라고 했는가.

내가 실천을 하지 않는다면 그걸 보고도 맘대로 못하고 보고만 있으면은 소용이 없거든요. 갖다 먹을 줄 모르는데 어떻게 소용이 있겠습니까. 도가 아니지. 줄 줄 모르는데 어떻게 도가 됩니까. 가고 온다 하더라도 자유자재권을 가지고 자유자재하게 행할 줄 알아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그 법을 무심법행으로서 행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한 가지를 봤다고 해서 그게 다라고 멈춰서는 안 된다 이 소립니다.
 
여러분이 그 오신통을 다 들어서, 마음으로부터 누진을 통해서 다 들 수 있다면, 바로 오신통에서도 벗어나야 그걸 들 수 있는 것입니다. 들었다면 굴릴 수 있어야 하고 굴릴 수 있다면 바로 실천궁행이 되는 겁니다. 또 그것을 굴린다고 해서 안이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 열반이라는 것은 결국은 우리가 위도 아니고 아래도 아니고 중간도 아닌 것을 열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부처님께서 모두 아니 된 게 없고 나 아님이 없고 내 자리 아님 없고 평발 하나로써 모두 디뎠느니라 하는 것을 표현해서 바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했고, 모두 여러분을 내가 현재 이렇게 나와서, 거기 여러 모로 말은 붙지 않았습니다마는 내 생각에 그렇다는 얘깁니다. 이 세상을 다, 여러분을 다 건졌느니라 하는 뜻에서 바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했던 거고, 나오셔서 휘휘 둘러본 것은 여러분, 이 세상에는 고정됨이 없고 공했어요. 그러니 부처님 자리가 둘이 아니고 중생과 부처가 항상 같이 있느니라. 평등하니라 하고 둘러보신 겁니다. 일곱 발자국을 디딘 것은 그 평등한 실천궁행이 그대로 여여하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말입니다, 여러분을 다 빼놓고 뭐가 부처님 법이 있겠습니까?
 
미생물에서부터 진화돼서 인간으로 이렇게 나와서 여러분은 좋고 나쁘고, 더럽고 깨끗하고, 평등한 진리도 알고 그것을 알기 때문에 99%가 부처 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부처님 오시기 전에도 진리는 있었지만, 우리가 먹어 보지 않고 해 보지 않고 보지 못한 것은 생각도 안 나듯이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나셔서 참 우리의 스승으로서 여러분한테 설하신 그 뜻이 헛되지 않게, 여러분이 뜻을 가지고 행하시는 그 마음이 진실하다면 바로 불제자의 가치가 있지만, 여러분이 하나하나 분별을 하고 벌레 속에 들어가 보지 않으면 벌레의 심정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잘, 마음으로 분별하지 말고 침착하게 놓고, 모르는 사람을 본다면 내가 과거에 모르는 그 모습으로 보시고 아는 사람을 본다면, 아주 차원이 높은 사람을 본다면 바로 배우기도 하고 바로 내 마음속에, 주인공안에 다 같이 하고 있으니까 내가 그 뜻으로써 바로 알 것이다 하는 생각. 그 주인공에 놓는 감사함.

'높은 거를 봐도 높게 보지 말고' 하는 것은, 저 부처님도 내 형상이요 부처님 마음도 내 마음이요, 부처님 생명도 내 생명이니 항상 위로는 모시고 있고 아래로는 중생들을 리드해 나가니까, 여러분이 살림살이하는 데 부모님을 모시고 아래로 자식을 기르는 거와 같습니다,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라는 뜻이.

그러니 모든 분별을 놓아야 합니다. 물론 가정에서도 속상한 일이 있더라도 내가 그 상대의 행동을 보고서 생각하는 거는 누구든지 각자 자기 소견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거, 남편이 나갔다 들어와도 "아이, 저이가 뭘 하고 들어왔지? 내가 생각하기에 이런 거 같아." 이런 것이 바로 자기 소견이지 남편의 마음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러니깐 남의 소견을 자기가 지어서 그렇게 생각하는 그런 분별은 벗어버려야 되지 않겠느냐 이겁니다. 그러니깐 뒤집어쓰기도 하고 뒤집어씌우기도 하는 이러한 분별은 버려야 하고, 아무리 죽인다 하는 걸 안다 하더라도 나하고는 상관이 없어야 합니다. 이런 말이 있지요. "나를 천번 만번 죽인다 한들 내 마음이야 죽일 수 있겠는가. 천번 만번 노예를 쓴다 하더라도 내 마음은 움죽거릴 수 없느니라."
 
여러분의 그 마음이, 체가 없는 마음이, 지붕도 없고 벽도 없고 천지를 탐험해도 손색이 없는 여러분의 마음이 갖춰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북하면 부처님께서 "이 도리를 알면 삼십이상이 구족하고 삼십이응신으로서 천백억화신으로 나투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셨는데도 그 뜻을 모르는 것은 우리가 마음의 분별로 인해서 과거로부터 현실로 나오는 이 뭉치 덩어리가 얽히고설켜서, 아주 벽을 두껍게 싸서 그걸 벗어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내 마음이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모두가 여러분의 슬기로운 마음에 달린 거예요. 내가 마음을, 참나를 깨치지 못하고는 이 도리를 풀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몸 떨어지기 전에 이 도리를 알아야 될 텐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분별에서 헤어나지 못하신다면, 영원히 위로 묵은 빚도 갚지 못하고 아래로도 주지 못하는 이러한 분이 된다면 세세생생에 항상 이런 고에서 헤어나질 못할 겁니다. 승진이 됐다 좌천이 되고, 인간도 천차만별로 차원이 다릅니다. 부자도 바라지 말고, 가난도 바라지 말고 잘난 것도 바라지 말고, 못난 것도 바라지 말고 오로지 '바로 내 주인공만이 모든 것 다 해결할 수 있다.' '내 주인공만이 감사하구나, 나도 형성시켰으니까.' 이것 두 가지만 알면 습도 다 뗄 수 있고, 일체를 다 버린다면은 일체를 얻을 수가 있고, 일체를 얻었다 하면 일체 항복 받을 수가 있어요. 그래야만이 둘이 아니게 나툼을 알 수 있는 그런 계기가 오게 되고, 그러면 여러분은 맛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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