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신 까닭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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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신 까닭

본문

질문

석가모니께서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시니 가섭이 웃었지 않습니까? 어느 책을 보니까 그 대목에서 가섭이 큰 죄를 지었다고 합니다. 왜 죄를 지었느냐 하니까 뭘 웃느냐는 말씀이죠. 이 부분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그게 아니죠. 왜냐하면 까닭이 없으면 이게 돌아갈 수가 없어요. 까닭이 있기 때문에 진리거든요. 우리가 공생 공심 공용으로 돌아가는 것도 까닭이 있기 때문에 돌아가는 겁니다. 그 ‘까닭’ 때문에 모두들 헐뜯고 뜯고 그러는데 그것은 공부하는 사람의 그 괴팍함이지 까닭이 있어야 성사가 되는데 어떡합니까. 까닭 없이 무슨 성사가 되나요? 그러면 장속 안에 넣어 놓고 그냥 있는 셈이니 다른 혹성에서 계발 못하고 무용체로다가 그냥, 무용신으로 그냥 있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러니까 까닭이 있는 거다 이겁니다. 만약에 그 꽃을 들었으면 벌써 봄이 왔다는 뜻이거든요. 그럼 이쪽에서 또 웃었다 할 때는 그것도 꽃이다 이겁니다. 이쪽도 꽃을 들고 저쪽도 꽃을 들었다 이겁니다. 생면부지인데 말이에요, 이 육신으로서는. 마음과 마음으로 전달하는 데는 마음과 마음으로 이거를 들었지 아니, 물질을 든 겁니까, 이게? 그래 마음에 까닭이 있으니까 이걸 든 것이지요. 마음에 까닭이 없는데 들었을까요? 그래서 이쪽도 마음에 까닭이 있으니깐 웃은 겁니다.

근데 왜 들고 웃는 걸 가지고 말을 하죠? 왜 석존이 꽃 든 거는 탓을 안 합니까? 웃는 것은 탓을 하면서. 그렇게 까닭도 모든 게 없다 하면 ‘왜 꽃은 들었느냐?’그러고 탓을 하시지요, 왜. ‘왜 팔만대장경을 내놓고 왜 말을 했느냐?’이러시지. '아예 본래부터 그냥 있는 거 그대로 두지, 왜 이렇게 말을 해 가지고, 팔만대장경을 해 놓고 사람 속을 썩이느냐.'고 그런 사람도 있을 겁니다, 아마.

또 어떤 분은 내가 만약에 그 자리에 있었다면 석가모니의 사지를 찢어서 개나 줬을 거라고 하는 말을 했다던데 말입니다, 또 사지 찢을 게 뭐 있습니까? 사지 찢을 게 있나, 찢게? 그러나 만약에 그만큼 그래도 선지들이 나서서 그렇게 가르쳐 주시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가 이렇게 계발이, 모든 혹성들이, 전체 계발이 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이 돼요. 얼마나 고마워요?
그래서 이것이, 그래요. 우리가 마음으로 마음을 전달하는데 때로는 신도들이, 이게 우리 있는 얘기를 하지 없는 얘기를 해서 여러분의 가슴에 감응이 될 수도 없는 거고…. 참 무궁무진한 그 이치를 어떻게 다 말로 하리까? 모르는데 어떻게 말로 해!

어떤 때는 여러분이 이렇게 오실 때 “욕심 부리지 말고요, 마음속에서 푸뜩 나오는 대로 그냥 하세요. 학교를 넣는 것도 그렇고. 마음속에서요, 이게 분수를 지켜요. 언제나 여기에서 나오는 거는 항상, 자기를 속일 수 없는 자기가 있는 거예요.” 하고선 일러 준다고요. 그럼 “알았어요.” 그러고 간다고요.

그렇게 일러 주는 사람도 있거니와 어떤 때는 터무니없이 “아이고, 스님!” 시골 참, 저런 데서 와 가지고서 지금 간질을 앓아서 죽게 됐다고, 무슨 그것만 있는 겁니까? “이것도 이렇게 있고 그렇습니다.”그러면 “예, 알았습니다.” 이거는 외려 모르는 사람 앞에는 꼼짝 못하게 돼 있어요, 내가. 그냥 “네에.” 하고 심부름꾼이 돼야 되죠. 그 사람이 모르니까 내가 심부름꾼이 돼야 되는 겁니다. 그 사람 앞에는 뭐 정성이고 나발이고 그런 것도 없어요. 그냥 ‘이분이라면 내가 가서 얘기만 하면 된다.’라는 그것만 하나 가지고 오는 거니까. 그럼 일가 집까지, 저 마을의 동네까지 가지고 와요. 그러면 "안 해 주시면 어떻게 해요? 그래도 스님이 꼭 해 주실 거라고 믿는데….” 이런다면 어떻게 해요. 그땐 “알았어요.” 이 대답밖에는 없어요. 그거는 어떤 일로 인해서 그 사람들 나름대로…. 그러면 쳐다보고 “네, 알았어요.” 그러고 웃을 수밖엔 없는 거죠.

웃는 그 마음! 그 마음이 언제나 제일 아래, 하에 있는 사람, 제일 하에 있는 그 계발되지 않은 마음. 그런 마음이 오히려 진실한 건 더 가지고 있다는 얘깁니다. 진실한 거. 요리 생각 조리 생각 하지 않고, 방황하지 않고 그저 미련스럽게 그냥 뚫는, 그런 마음만 가지고 있단 얘기죠. 그럼 심부름하긴 쉬워요. 이것도 여러분과 나와, 그분과 나와 그럭할 때 마음이 둘이 아니기 때문에 벌써 그이는 그 마음을 가지고 갔기 때문에 벌써 된 거예요. 얼마나 그 사람의 믿음이 돈독하면 그렇게, 얼마나 자기를 믿고 둘이 아니라고 믿었으면 왔다가 얘기만 하고 쏜살같이 가겠습니까. 그렇게 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러니까 가지각색이에요.

꼬투리 잡으려면…. 육조 스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것도 “테가 없는데 뭐, 거울이 어디 있고 거울이 없는데 먼지 앉을 게 어디 있느냐?” 이렇게 막 해 버리는 것도 거기까지 가야, 그렇게 물질로 나오는 사람 앞에는 그렇게 무찔러 주고, 또 그 공부를 웬만치 해 간 사람 앞에는 “그것도 아니다.” 이렇게 나와야 되는 거죠. 그때 환경에서는 육조 스님이 그렇게 대답 안 할 수가 없었겠죠. 그러니까 하여튼 사람에 따라서, 근기에 따라서 맞추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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