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교회에 다녀도 되는지요?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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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교회에 다녀도 되는지요?

본문

질문

저는 미국의 한국계 회사에 인턴으로 취직하게 된 불자입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교회에 다니지 않고 절에 다닌다는 것이 너무 버겁습니다. 저를 제외한 대부분이 일요일에 교회에 가는데 정직원도 아닌 제가 혼자만 절에 다닌다고 하니 바라보는 시선도 따갑고, 나이 드신 분들이나 다니는 곳에 다닌다면서 같이 교회에 자가고 회유를 많이 합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 스님의 법문 중에 피치 못하게 교회에 가더라도 남들이 주(主)를 찾을 때, 내 안의 주인인 심주(心主)를 찾기만 한다면 된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심주를 찾으면서 계속 교회에 다녀도 되는지 궁금합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여러분! 이렇게 발전된 세상에 자기를 이끌어 가는 정신계의 영원한 자기의 신을 모르고, 나부터 알아야 하는데도 그것을 모르고 간다면 안 되죠. 이렇게 말한다고 “그러면 부처님한테 갈 필요도 없겠네요.” 이러겠지요. 그게 아닙니다. 가톨릭교나 기독교를 믿고 성당이나 교회에 가더라도 주처는 바로 자기한테 있는 겁니다, 자기한테! 그런데도 어느 종교를 막론해 놓고 기복 아닌 게 없어요. 이러니 이거 보람 있게 살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림을 보거나 형상을 보고도 그러면 안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면 부처님 믿으러 갈 게 없지, 형상을 믿지 말라니까." 이러겠지만 그것도 아닙니다. 당신들의 몸도 형상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의 몸과 내 몸이 둘이 아닙니다. 이 도리를 아주 한생각을 돌려서 잘 믿는 데 달려 있는 겁니다. 법당에 가더라도, 만 불(萬佛)이 놓여 있더라도 내 한마음의 일 불(一佛)입니다. 만 불도 일 불이요 일 불도 만 불입니다. 이 도리를 꼭 알아 둬야 되겠습니다.

칠성이니 관세음이니 지장이니 약사니 아촉이니 아미타니 미륵이니, 다 이름을 가지고 그렇게 하시는데 이름은 여러분도 각자 얼마나 많이 가지고 계십니까? 어머니라는 이름, 딸이라는 이름, 며느리라는 이름, 할머니라는 이름, 아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고, 여러 가지 이름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에 그 이름대로 여러분이 지금 “아버지!” 하면 아버지가 되고 “여보!” 하면 남편이 되는데, 남편 따로 아버지 따로 이름을 각각 꼬리표 붙여 놓듯이 해 놓고 거기다가 따로따로 하면서 믿어서야 되겠습니까? 그거와 똑같은 겁니다. 만 명이 깨쳤다 하더라도 한 부처님이지 만 명이 따로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몸 속에 헤아릴 수 없는 중생들이 들어 있어도 한 분이지 그 만 분을 따로따로 이름 부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병이 들고 그래서 병원에 가거나 그러면 뭐 여러 가지 이름이 따로 있죠. 따로 있긴 하나 한 분입니다. 여러분 하나로 부르는 한 이름입니다. 천차만별의 이름이 있지만 한 분입니다. 한 몸, 한 분입니다. 그와 같이 부처님의 마음도 몸도 그래서 ‘한 분, 한 마음, 한 생명’ 그렇게 따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대로 공했다고 하셨고 그래서 부처님의 몸은 아주 크다고 그랬습니다. 광대하고 무변하고 묘하다고 그런 말씀을 하셨죠.

여러분이 따로따로, 약사 따로 미륵 따로 아촉 따로 관세음 따로 지장 따로, 이렇게 따로따로 생각을 하고 따로따로 부른다면 그냥 생활을 하면서 찰나찰나 앞에 닥치고 찰나찰나 안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어떻게 다 대치를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기복이 되는 거예요. 이거 놓고 빌어야 하고 여기다가 빌어야 하고 저기다가 빌어야 하고 정신없죠, 뭐. 닥치는 대로 말입니다.

한 분의 이름만 불러도 만약에 그 마음만 내 마음과 둘이 아니게끔 한다면 거기에 통신이 돼서 대뇌로 해서 중뇌에서 책정을 내리면 사대로 통신이 돼요. 그래서 안에 있는 그 의식들이 다 알고 한마음으로 따라 줘요. 이것은 심성의학일 수도 있고 심성과학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무시하고 자기를 이끌어 가는 정신계를 무시하면 물질적인 이 육신은 뭐가 됩니까? 그러니 어디가 어떻게 쓰러진다 하더라도 대치를 할 수가 없죠.

내 한마음의 한생각의 통신이면 사대로 통신이 돼서 이 안에서 다 알고 작용을 해 줄 텐데 통신이 안되니까 대치할 수가 없는 거죠. 바깥으로만, 안의 자기는 쑥 빼 놓고 바깥으로, 부처님이 높이 앉아 계신 줄 알고 ‘부처님, 부처님! 나를 잘살게 해 주세요. 잘되게 해 주세요. 삼재 없이 해 주세요. 번뇌가 끊어지게 해 주세요.’ 별 타령이 다 많지만 절대로 대신 해 줄 수 없습니다. 부처님이 여기 계신다 해도 대신 똥 눠 줄 수도 없을 것이고 밥 먹어 줄 수도 없을 것이고, 잠자 줄 수도 없을 것이고 아파 줄 수도 없을 것이고, 죽어 줄 수도 없을 것이고 깨치게 해 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좀 현 시대에, 이렇게 밝게 돌아가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밝게 마음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밝게 마음을 발전시켜서 위로는 조상들과 아래로는 내 몸속에 있는 자생중생들도 더불어 같이 한마음으로 빈손이 되고 빈발이 돼서, 가고 옴이 없이 가고 올 수 있고 보는 사이 없이 볼 수 있고, 듣는 사이 없이 들을 수 있고 함이 없으면서도 할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할 줄 알아야 여러분의 이세, 그 낳아 놓은 자손들을 세세생생에 멋진 사람으로서 빛이 되게 할 수 있거든요. 이거는 이론이 아니고 실천입니다. 학식이나 이런 걸로다가 사는 게 아니라 못났든 잘났든 못 배웠든 잘 배웠든 진실된 실천을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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