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멸심과 적멸심의 관계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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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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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멸심과 적멸심의 관계

본문

질문

우리의 마음은 일순간도 쉬지 않고 찰나에 일어났다가 찰나에 없어졌다 또 찰나에 일어났다가 없어졌다가 하는 그런 작용이 끊임없이 지속이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 말씀 중에는 한생각 일어났다가 한생각 없어지는 그 생멸심이 곧 멸하면은, 그것이 쉽게 말해 본래 마음이다. 즉 불성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그 고요한 적멸심의 자리와 끊임없이 일순간도 쉬지 않고 일어났다가 없어졌다가 하는 그 생멸심과의 관계는 어떠한 것인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우리가 여기 걸어올 때에 한 발 떼었다 한 발 놓고, 한 발 떼었다 한 발 놓고, 이게 생멸입니다. 이게 일어났다 가라앉았다, 일어났다 가라앉았다 하는 거와 같은 겁니다, 우리가 알려고 말로 표현을 하자면. 안 그렇습니까? 일어났다 또는 가라앉았다 이게, 마음이 이렇다는 것과 한 발 떼어 놓고 한 발 놓고, 한 발 떼어 놓고 한 발 놓고 하는 것이 뭐가 다릅니까? 이게 어떻게 둘이겠습니까? 한 발 떼어 놓고 한 발 놓고 한 발 떼어 놓고 한 발 놓고 하는 작용이 없으면 우리가 걸어 다니지 못합니다. 안 그런가요? 일어났다 가라앉고 하는 그 마음이 없다면 성불이라는 말도 없을 거고 중생이라는 말도 없을 겁니다. 이해가 갑니까?

한번 방편으로 얘기해 볼까요? 아버지 노릇 하다가 남편 노릇 하다가 또는 형님 노릇 하다가 자식 노릇 하다가 이렇게 자동적으로 돌아가는 거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금방 일어났는데 금방 딴 걸로 돌아갔어요. 금방 딴 걸로 돌아가고 딴 걸로 돌아가고, 이렇게 일어났다 놓았다가 일어났다 놓았다 해도 그냥 여여하게 그냥 돌아갈 뿐입니다. 그러니 그것이 바로 둘이 아닌 것입니다. 둘이 아닌 까닭에 그냥 “여보!” 하면은 “왜 그래?” 하고 일어나는 마음, 그 일어나는 마음은 찰나에 일어나는 마음입니다. 악으로나 선으로나, 일어나는 마음을 잘 응용을 하면은 선이 되고 잘 응용하지 못하면 악이 됩니다. 싸움을 할래도 “여보!” 할 테고, 좋은 말을 할래도 “여보!” 할 겁니다. 그런 걸 대치를 해서 잘 응용한다면 바로 그것이 부처님의 법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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