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으면 한 물건도 없는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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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공부하시는 분들 중에서도 돈오점수에 대해서 아직까지 미심쩍어 하는 분들이 있는데, 깨닫고 난 뒤에는 한 물건도 없다고 하는 그 의미와 깨닫고 난 뒤에는 보임을 잘해야 된다는 그 의미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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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깨닫고 나서 보임을 잘해야 한다는 것도 맞고, 깨닫고 나면 아무것도 건덕지도 없다 하는 말도 맞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자성 부(父)와 자성 자(子)가 한데 합쳐지면 깨닫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한데 합쳐졌을 뿐이지, 즉 자기가 씨를 심어서 싹이 났을 뿐이지 자란 것은 아닙니다. 예? 자라려면 그만큼 수행이 뒤따라야 합니다. 이 머리 깎은 사람들이나 머리 안 깎은 사람들이나 입산을 할 때는 '이 무명초를 다 끊어 버리겠습니다.' 하고선 다짐을 하고 끊어 버렸습니다, 아주 애당초에. 그랬는데 이게 형식적으로만 끊어 버렸지 수행해 나가는 데 진실하게 무명초 하나하나를 끊어 버린 게 아닙니다. 이 마음을, 모든 것을 거기다 모아서 놓는 데에 이 무명초가 다 끊어지는 겁니다.
그런 반면에 지금 점수(漸修)다 하는 거는, 그런 수행을 하는 나를 발견했으면, 보림이라고 해도 좋고 보임이라고 해도 됩니다. 즉, 남의 탓을 하지 말고 남을 원망하지 말고 어떤 게 있어도 내 탓으로 돌리고 나로 밀어 넣고, 나한테 그냥 놓고 또 돌아가야 합니다. 그게 보임입니다. 모든 것이 거기서 나온 거니까 거기다가 놓고 가야 합니다. 악이든지 선이든지 다 말입니다. 그래서 잘되는 거 감사하게 놓고, 안되는 거는 ‘안되는 것도 거기서 나온 거니까 되게 하는 것도 거기다.’ 하고 놓고, 이렇게 해서 둘 아닌 도리를 또 두 번째 깨달아야 합니다.
또 세 번째 가서는 둘 아닌 도리를 탁 알았는데 나투는 도리를 몰라. 전깃줄과 전깃줄을 대어 주고 떼어 주고 대어주고 떼어 주고 하는 도리를 모른다면은 모두 일체 여래라고 할 수가 없다. 또 일체 중생이 나 아님이 없다 하는 것을 말할 수가 없다 이렇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나투는 데, 즉 아버지가 됐다가 남편이 됐다가 이렇게 나툴 줄을 모른다 이럴 때는 그 나투는 방법을 알기 위해서 세 번째 깨달음이 있어야 된다 이런 겁니다.
그런데 세 번째 깨달음이 있어서 만약에 나툼의 도리를 안다면 일체가 나 아님이 없이 모두가 난데, 자기가 자기 꺾는 법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자기가 화해서 자꾸자꾸 돌아가는데, 어떤 거 됐을 때 내가 됐다고 하고 내가 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수행을 할 땐 점수(漸修)라고 해도 맞고, 그게 끝났을 때는 ‘아, 너도 나도 다 둘 아니게 돌아가는데 이거는 하나도 없다.’ 하는 소리도 맞고, 둘이 다 맞으니까 둘이 다 둘이 아니다 이겁니다.
절대적으로 이 도리를 물렁물렁하게 봐서는 아니 됩니다. 형상을 보고 무시하거나 그래서도 아니 됩니다. 이거는 형상을 배우는 게 아니라 형상과 정신과 둘 아니게 작용하는 도리를 배우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크고 작고도 없고 일체 만물만생이 생명 없는 것이 하나도 없고 전력이 똑같듯 생명은 다 똑같은 것입니다. 그거를 알려면 모두 하나도 버림이 없어야 되고 버림이 없어야 항복을 받고, 항복을 받아야 하나도 버릴 게 없는 도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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