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심과 보리심이 둘이 아닌지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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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심과 보리심이 둘이 아닌지

본문

질문

한생각 일어났다 없어졌다 하는 그 마음을 이름 붙여서 생멸심이라고 한다면은 그 생멸심과 적멸심이 둘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번뇌심과 보리심이 둘이 아니라고 이렇게 이해를 하면 되겠습니까?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그 관습에 의해서 본래심이 번뇌심과 다르다고 생각을 하지 마세요. 우리가 이 생각 저 생각이 나지 않으면 광대하게 발전을 할 수가 없어요. 고정된 마음이 있다면 어떻게 돌아갑니까? 이 마음 저 마음, 이 생각 저 생각이 나기 때문에 광대하게 부처를 이룰 수도 있고 광대하게 창조를 해낼 수도 있고, 창조력을 기를 수도 있고 계발을 할 수도 있고 발전을 할 수도 있는 겁니다. 선도 있고 악도 있고요. 그러니까 번뇌가 아니라 그냥 내 마음에서 그냥 그저 수행하는 데 발전하게 하기 위한 재료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재료. 나를 발전시키기 위한 재료.

항상 내가 그런 말을 하죠. 귀가 아프도록 들었을 겁니다. 동짓날 팥죽을 쑤는데 팥죽 방울이 수없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렇죠? 주걱으로다가 요것도 문수! 요것도 문수! 요것도 문수! 하고 쳤더라. 이건 무슨 까닭인가 했더란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말로만 그렇게 하지 그 까닭을 모른단 말입니다. 내 몸뚱이가 팥죽 솥이라면 팥죽 방울이 일어나는 대로 그걸 번뇌라고 하는데, 번뇌라고 하기 이전에 모든 게 그 속에서, 한 속에서 화해서 나오는 업식에 속합니다. 그러니까 그걸 재료로 알아야죠.

속지 말고 모든 건 한군데서 나온 거 한군데에 제대로 되놔라 하는 소립니다, 그게. 이것도 문수, 이것도 문수 하고 친 게 자기 마음의 주장자로서 자기한테서 나오는 것마다 거기다가 놓으라고 그런 방편을 쓴 거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중생도 없고 부처도 없는 자리이며 일어나는 그 마음 번뇌도 망상도, 또는 도라는 이름도 없는 겁니다. 아무것도 없이 그대로 여여하게 걸어오듯이, 그대로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걸어오듯이 왔습니다. 그것이 바로 수레공법이죠. 우리 마음과 마음이 서로 합해서 불이 들어와서 가정이 밝게 살고 사회가 밝게 살 수 있는 것이니 바로 한마음에 밝게 불이 켜졌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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