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과 한마음과의 상관관계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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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과 한마음과의 상관관계

본문

질문

현대 물리학에서 가장 큰 줄기는 시간과 공간에 관한 상대성 이론과 그의 내실을 밝힌 양자역학을 들 수 있는데, 우리가 예를 들어서 한 물체를 분석해 보더라도 자꾸만 쪼개 나가면 분자, 원자, 나중엔 소립자, 즉 극미립자의 세계까지 볼 수가 있습니다. 그 극미립자의 세계는 입자의 나타남과 없어짐 즉, 생멸의 세계가 아주 무상합니다. 현대의 물리학에서 양자역학의 결론은 그런 시간과 공간 속에서 그 입자의 나타남과 없어짐의 근거를 부여하는 것이 장이라고 불리어지는데, 반야심경에서 나온 내용과 같이 공생·공심·공용·공체·공식 하고 고정됨이 없이 찰나찰나 돌아가는 이 한마음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지 않나 그래서 질문드려 봅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네, 그것이 상관이 있고말고요.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물리학이나 과학적으로 그런 입자, 소립자까지…, 지금 살림하는 데도 조그마한 데까지도 우리는 지금 하고 가고 있죠. 그렇듯이 그러한 것이 나타나는 것은 지금 근본적인 지수화풍으로 일체가 다 뭉쳐져 있기 때문입니다. 지수화풍이 아니라면 그런 맨 끄트머리의 소립자까지도 있을 리가 없죠.

그래서 핵이 있으면 바로 전자가 있고 전자가 있으면 전자가 바로 핵이 되고, 핵을 보호하고 있고 이런 문제가 있는 거죠. 그러나 물질하고는 정반대로 우리가 그런 거를 연구하려면, 한마디로 말해서 망원경으로 본다 하더라도 어떤 한계를 두고 봅니다. 그러나 심안이라는 것은 어디가 멀다, 수천, 수만억 광년이다 할지라도 내가 요기 보는 거와 같은 겁니다. 이것이 둘이 아닙니다. 시간과 공간이 초월돼서 둘이 아니게 보는 거죠. 그러면 그것을 가서 보느냐? 그게 아니죠. 자기의 마음의 그 밝은, 면경과 같은 밝은 마음으로 본다면 앉아서 그 모든 것을, 천체를 볼 수 있고, 반을 볼 수가 있고, 어떤 부분적인 걸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것을 불가에선 천안통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천체망원경이라고 비유를 했습니다.

그러면 심성이 아니고는 절대로 다 볼 수가 없다는 얘깁니다. 이게 그래서 무위심, 즉 말하자면 무심과 유심이 같이 혼합이 돼서 행을 할 수 있는 그 봉을 본다면 과학자들도, 천문학자들도 진짜 그 이름 없는 천문학이 되지 않을까 이렇게 보죠. 이름만 천문학이 돼서 되는 게 아니라, 정말이지 천 가지의 그 뜻이 다, 내가 보는 눈이 그대로 문이 돼서 벽도 없고 걸림 없이 내가 볼 수 있다면 연구를 하면서도 자기가 자재할 수 있는 문제죠. 그래서 “보기만 해도 도가 아니니라” 이랬거든요. 본다고만 해서 무슨 이익이 있어야지. 또 듣는다고만 해서도 이익이 없고, 남의 속을 안다고만 해서도 이익이 없고, 또 남이 어디서 어떻게 왔다는 걸 안다고 해도 이익이 없단 말입니다. 그건 왜? 잘 들으세요, 이걸. 그게 왜 이익이 없느냐? 무꾸리를 하러 가니까 “새 달에 너는 죽을 운수다.” 하고 이걸 무꾸리장이가 안다고 합시다. 족집게처럼 안다고 합시다. 그러면 죽을 운수만 알았지, 남의 속만 알았지 그것을 자유스럽게, 죽을 거를 이렇게 갖다 놓고 저렇게 갖다 놓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러한 자력이 없기 때문에 그것은 도가 아니라는 얘기죠.

그러니 그 다섯 가지로 인해서, 누진을 통해서 지리학이나 이러한 것도 그냥 자유자재죠. 이 지역이 좋다, 여기가 좋다 이러한 문제도 자유스럽죠. 이것이 좋은 것도 아니고 언짢은 것도 아니니 그것은 무엇이겠느냐 하는 그런 문제도 있는 거죠. 그러면 그건 내가 정하는 대로 그냥 법이에요. 힘이 없는 사람이 그렇게 하면 오히려 흉내가 되지만, 이 마음의 도리를 길러서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그게 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의 말을, 경을 만약에 흉내를 낸다면 자기 몸이 해쳐지고, 즉 말하자면 “야호!” 하면 안으로 들듯이 흉내 내는 그 말이 자기한테 그냥 반영이 돼서 자기가 좋지 않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중생의 흉내 내는 그런 모순된 일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러니까 그러한 것을 진짜로 아시려면 잘 공부하세요. 젊은이니까 앞으로 창창하지 않소? 그러니 잘 공부를 하면 보는 것도, 듣는 것도, 아는 것도 참, 모두를 알아도 그것을 누가 안다고 하지 않고, 말없이 그대로 길을 지나가다가도 건질 수 있고, 길을 가다가도 오다가도 건질 수 있는 겁니다, 그것은.

 예전에도 얘기했지만, “나무 한 동 가지고 은혜를 갚을 수 있겠냐?” 하는 그 소리를 듣고 그분이 ‘아이고! 알았다.’ 하고서 그때 나무를 동댕이치고선 그냥 그 자리에 앉아서 은사 스님한테 절을 삼배를 올리고 “감사합니다.” 했거든. 그래서 “뭐가 감사하냐?” 하니까 그냥 가만히 합장을 하고 싱긋이 웃고 앉아 있거든요. “아하! 그러면 부처님의 골수를 얻어서 너는 오늘 그 집의 물 한 그릇의 그 이치를 알겠구나!” 하고선 비켜나셨대요. 그래서 그분은 그렇게 어려운 집을 그 해에 마름을 받게 하고 자연히 보리쌀 뜨물을 안 먹고 쌀밥을 먹게 하더랍니다. 그러더니 그 동네 일판에서 둘째 가라면 섧게 먹고살기가 훌륭하게 됐더랍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해마다 공양을 잘 올리고 그 집의 자손들이 불가에 또 인연을 맺고 그래서 크게 부처님의 뜻을 이루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렇듯이 여러분이 남의 흉 볼 사이가 어디 있습니까? 남을 원망할 사이가 어디 있습니까? 지금 나 가기도 바쁜데, 지금 얼마나 남았습니까? 가을이 돌아 닥치면 어떡합니까? 그러니 내 마음에 봄이 오도록 해야겠습니다.

옛날에도 이런 말이 있었죠. 요거 한마디만 하고 끝내죠. 어떤 스님이 아주 영하다고, 정말 제일이라고 하는 스님이 계셨답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마적, 도둑이 많았죠. 그러한 산도둑이 떼로 몰려서 얘기를 했습니다. “저 스님이 그렇게 유명하다니 내가 한번 만나 보리라.” 그래서 칼을 들고서 그 스님이 오시는 길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스님이 오시니까 하는 소립니다. 자기 속말로 ‘흥, 저렇게 묘하다는 스님이 내가 여기서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것도 모르고 그냥 와, 저렇게.’ 하고 아주 방탕한 웃음을 웃었죠.

그런데 스님이 오시니까 도둑은 거기서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당신이 아무리 유명해 봤던들 당신 가슴에는 뭐, 철판을 깔았기에 칼이 안 들어가겠느냐? 당신이 아무리 유명하다 할지라도 이 칼은 사정없이 당신의 가슴을 찌를 수 있고, 가슴을 찔러서 뭐가 그렇게 유명한 게 있나 한번 째 보고 싶다.” 이랬거든요. 그러니까 그 스님이 있다 하는 소리예요. 껄껄 웃으면서 “추운 겨울에 고목을 자른들 꽃이 나오겠나? 봄이 오면 스스로 이 고목에서도 꽃이 피고 스스로 열매가 열릴 것을 말이야. 그러니 그 뜻을 알게.” 하시더랍니다. 그래도 수십 년을 마적으로 다녔으니 경험도 있고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그만 그 소릴 듣고 칼을 뚝 떨어뜨리면서 거기서 그냥 삼배를 올리고 그 도둑들, 꼬마 도둑들도 다 그 스님의 제자가 됐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물론 나한도 다 그렇게 해서 제자가 된 그런 이치도 있지만 이러한 일로 인해서 제자가 된 분들도 여러 분이 그 당시에 있었다 합니다.

내 마음의 봄은 항상 봄이지 사계절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마음속에 봄이 와서 물이 흐르고 그 물맛이 좋고, 열매가 열려서 수많은 맛을 낼 수 있는 그런 열매를 무르익히신다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을 겁니다. 그러니 그 만 가지 열매의 만 가지 맛을 낼 수 있는 그런 여러분의 마음 가짐가짐을 가지시고 봄의 마음을 가지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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