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결정짓는 장본인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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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결정짓는 장본인

본문

질문

스님께서는 ‘내 앞에 닥치는 모든 것이 내 탓이니, 모든 것을 내 안의 근본에 맡기라’ 하십니다. 그렇다면 내 안에 모든 인생의 실마리가 다 내재되어 있다는 말씀인 것 같은데 제 인생을 결정짓는 그 장본인이자 실체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사람은 어디까지나 이 세상에 나올 때에 내가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알아야 공부하기가 쉽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공부라기보다도 인생관에 대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지수화풍을 근원으로 해서, 또는 우리 미생물로 하여금, 그 인연에 따라서, 인과로 인해서 정자와 난자의 뜻을 받아서 살과 몸과 피와 뼈를 빌려서 인간이 된 것입니다. 그거는 여러분이 더 잘 아시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이런 고통 속에서, 고통이라고 하기보다 인간  되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알면 인간이 돼 가지고도 고통스럽다고 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 앞에 다가오는 것이 왜 그렇게 각본대로 나오는가? 인간은 왜 돈 가지고도 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일이 있는가? 왜 우리 마음대로 살 수 없고, 왜 마음대로 되질 않는가? 이런 것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했던 말 되한다고 섭섭하게 생각할는진 모르지만 진리가 그러합니다.

우리가 인연에 따라서, 인과로 인해서 몸을 받았다면 엄마 아빠라는 인연도 여러분 차원에 따라, 여러분과 똑같은 차원으로 인해서 모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뿐이 아닙니다. 우리 몸속에 든 중생들도 수십억 마리가 여러분의 인연에 따라서, 인과로 인해서 여러분 몸속에 작은 별들처럼 회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작은 생명들이 회전을 해 주기 때문에 이 몸뚱이가 움죽거리는가 하면, 회전을 하는 그 생명들이 있기 때문에 이 집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 집이 누구의 집이냐. 바로 그 생명들의 집이죠. 그런데 그 생명들이 한데 모여서 마음을 내고, 마음을 내기 이전이 있는가 하면, 마음을 내며 회전을 하는 삼합이 바로 공(空)해서 돌아가기 때문에 그 마음들이 천차만별로 여러분의 머리를 때리고 나옵니다.

그전에 부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죠. “팔만 사천 번뇌가 들락거린다.”라고요. 여러분이 한 생각을 제대로 못하면 악의 인연으로 하여금 바로 팔만 사천 번뇌가 털구멍을 통해서 들락거리고, 여러분의 한 생각이 그 지혜로운 마음으로 이루어져 자유스럽고 여여하다면 바로 그 털구멍을 통해서 팔만 사천의 부처가 들락날락한단 말입니다. 여러분의 그 마음이 얼마나 귀중한지 또 자유스러운지 여러분은 모르실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시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가 이 몸뚱이 속에 어째서 그렇게 많은 생명들이 모여서 회전을 하고 있는지…. 또는 역력하게 우리 마음으로부터 머리로, 두뇌로부터 사대(四大)로 각각 알려 주는 통신! 그 통신도 눈이 있고 귀가 있고, 마음 내는 게 있고 감각, 촉각, 시각 이런 여러 가지가 다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다 알게 되는 겁니다. 왜 그런가. 우리는 다 같이 미생물에서부터 모습을 바꿔 가면서 진화돼서 이렇게 인간까지 오게 된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그 쫓고 쫓기고, 부모를 잃고 울고, 자식을 잃고 울고, 서로 울며불며 다지고 쫓기며 인간까지 됐으니 감사하게 생각해야죠.

그런데 수억겁의 생을 거쳐 오면서 살아나오던 습의 인과가 바로 여러분의 몸뚱이 속에 인연을 따라서 모두 들어 있으니 고(苦)가 있다고 ‘나는 피해야겠다.’ 이럴 생각은 아예 마세요. 왜? 그런 사람들은 참 어리석습니다. 그 몸뚱이 속에 들어 있는 것이 어디로 피해서 갑니까? 여러분이 가는 데마다 인연에 따라서, 만약에 악조건의 인연이라면 그 악의 무리의 생각이 떠올라서 그대로 악조건으로 길을 갈 것이고, 선의 조건이 삼분의 이가 된다면 바로 선의 조건으로 여러분의 두뇌를 통해서 갈 것입니다.

그러니 천차만별 인연의 소치가 바로 여러분이 지금 살아나가는 데에 각본대로 솔솔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각본대로 짊어지고 나온 이 몸뚱이가 인연의 소치라면 어떻게 해야만이 그것을 벗어날 수가 있는가. 그전에도 얘기했지만 수많은 인연의 소치는 자동적인 컴퓨터와 같습니다. 여러분이 살고 생각하고 행한 그 자체가 각본대로 바로 자동적인 컴퓨터에 감겨서 현실에 자꾸자꾸 나오는 것이죠. 그리고 지금 행동하고 가는 것은 미래에 나올 것이고요.

그런데 우리가 지금 공부하는 데 “과거는 지나갔으니 없고, 미래도 오지 않았으니 없고, 현실도 공해서 없다.” 이렇게 항상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 몸속에 수없는 자연인으로서 갖가지로 저지른 그 인연의 소치가 지금 생동력을 가지고 있다는 얘깁니다. 그러면 그 마음들이 바로 여러분이 마음 쓴 대로 인연에 따라서 나한테 온 것이니까 그 마음밖에 더 나오겠습니까? 그러니 “모든 것을 다 녹여라. 거기에 끄달리지 말아라.” 이러는 겁니다. 여러분이 거기에 끄달린다면 그 인과 속에서는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여러분 몸뚱이 속에 다 가지각색으로, 각본대로, 자기 한 대로, 저지른 대로, 그 의식대로 감추어진 것이 그대로 그냥 나온단 말입니다.

그러니 생각해 보세요. 바른쪽 발은 이만하고 (양 팔을 벌려 보이시며) 왼발은 요만하다면 어떻게 걸음을 걷고 다니시렵니까? 우리가 똑같으니까 이렇게 걸어 다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한쪽 다리는 길고 한쪽 다리는 아주 짧은 그런 형국이요, 눈도 한쪽 눈은 뜨고 한쪽 눈은 감긴 모습이란 말입니다. 그리고 귀도 한쪽 귀만 있지 다른 한쪽 귀는 없으니 여러분이 얼마나 살기가 고통스럽겠습니까?

그래서 모든 것은, 선과 악이 모조리 내 몸 안에 들어 있어서 그 안에서 나오는 것이니까 나온 데다가 되놓으면, 맡겨 놓으면 바로 그것은 카세트에 앞서 감긴 것이 다 지워지고 현재에 넣는 것만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연방 고정된 관념이 없고 고정된 행이 없고 생각도 고정된 게 없으니, 생각나는 대로 거기 놓게 되면 담겼다 없어졌다 담겼다 없어졌다 하니 항상 그릇은 비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것도 방편입니다. 모든 게 ‘공했다’고 말을 하지마는 우리는 실지다, 실지가 아니다 이걸 떠나서 우리 사는 자체가 그대로 실지입니다. 이렇게 간곡히 말씀을 드려도 이해가 안 가실지 모르겠지만, 이해가 가야만이 기계를 돌려도 그렇고, 맷돌질을 해도 그렇고, 의정을 내도 그렇고 헛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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