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법을 수련하는 것과 불법 공부와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본문
질문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수행법 중에는 몸의 기를 다스리는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전통적인 기공법을 수련하는 것과 불법 공부와는 어떠한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여쭙고자 합니다. ‘기’란 무엇이며 불법 공부와는 어떠한 관계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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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기’라는 건 옛날에도 그렇고, 스님네들 아니더라도 학자들이나 이런 분들은 기를 가지고 몸을 다스렸습니다. 몸을 다스리는 거는 기를 단전으로 해서 기를 이렇게 모아서 풀어냅니다. 그런데 왜 그것이 지금 세상에 어려우냐. 지금 단전을 하고 기를 모아서 제대로 하질 못했기 때문에 병이 든 사람이 무지하게 옵니다. 머리로 기가 그냥 올라가서 영 일을 못하고 그러는 사람이 없나, 몸이 비틀리는 사람이 없나, 그냥 별 사람이 다 있습니다. 귀로다가 그냥 그 뜨거운 게 그냥 막 쏟아져 나온답니다, 또.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게 됐고 가정에 아주 파탄이 오게 되는 사실도 많이 봤습니다.
그런 것은 왜냐하면 몸의 기를 다스리기 때문에 그 몸의 기를 잘 다스리려면, 정돈을 하고 다스리려면 바로 몸에 들어 있는 의식들이 작용을 해 주어야 합니다. 여기서 관법(觀法)입니다. 그거는 몸을 다스리는 거지 마음을 다스리는 게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몸에 든 그 의식들, 생명들 그것들이 아랑곳이 없습니다. 같이 동일하게 작용을 해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마음으로써 내가 꼭 ‘너만이 알아.’ 할 때에 ‘아, 너고 나고 없구나. 모두 나야!’ 하고 작용을 하게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마음에다 놓으면 이 누진(漏盡), 머리로다가 통신이 돼서 그 머리로 통신이 되면 하달이 돼 가지고 사대(四大)로 통신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자동적으로 육신이 작용이 됩니다.
그런데 왜 믿을 만하냐. 이거는 그 속에서 이 주인공 자체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디가 잘못됐는지 그것을 잘 알기 때문에 그걸 작용을 해 주는 거죠. 저기서 모자라면 여기서 보태고, 여기서 모자라면 저기서 보태고 그렇게 해서 작용을 해 주는 거죠. 그러니깐 몸을 건강하게 다룰 수가 있고, 예를 들어서 살이 쪘으면 살을 뺄 수도 있고, 살을 찌게 할 수도 있고 그건 자기 마음대로입니다.
그런데 이 기만 가지고 하다가 보면 잘못되는 일이 많죠. 그러니까 몸뚱이 떨어지면 그거는 아무것도 아니죠. 몸이 떨어지고 말 떨어지고 행 떨어지면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그러나 이 마음이라는 건 영원한 겁니다. 그래서 마음과 마음이 전달이 돼서 나무, 즉 무정물들도 또는 저런 과일 나무들도 서로 마음과 마음이 전달이 돼 가지고 사랑을 하면서 열매를 맺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런 거와 같이 이 마음도 마음과 마음이 전달이 돼서 사랑하면서 서로 도와 가면서 작용을 하는 거니까, 그게 중용이죠. 그러니 몸도 얼마든지 자재로이 할 수가 있다 이 소립니다. 모두 잠재의식이 관습에 의해서 돼 있고, 그거를 못 믿기 때문에 못하는 거지 진짜로 믿는다면 죽고 사는 것도 다 그냥, 그냥 탁 맡길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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