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내 맘이 내 맘대로 안 될까요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건전한 게시판 문화를 위하여 성격에 맞지 않는 게시물, 광고 등 유해성 글들은 관리자가 임의로 이동, 삭제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질문을 올리기 전에, 게시된 글들을 참고하시면 많은 도움이 됩니다.

왜 내 맘이 내 맘대로 안 될까요

본문

질문

다들 마음, 마음하는데 대체 마음이 무엇인지요. 알 듯 알 듯 모르겠습니다. 왜 내 마음이 내 맘대로 안 되는 것일까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본원관리자님의 댓글

본원관리자 작성일

이렇게 수많은 나날을 마음에 대해서 수만 가지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수만 가지 말을 했어도 말 한 사이가 없어요. 왜냐. 여러분들도 여직껏 마음을 쓰시고 살았는데 “마음 쓰신 것 있으면 내놔 보십시오.” 하면 어떻게 내놓으시겠습니까? 그래서 미묘한 법이라고 합니다. 그 마음은 아무리 써도 줄지도 않고, 아무리 써도 늘지도 않고 그냥 내가 쓸 때 되면 불쑥불쑥 다 나오니깐 말입니다.
 
그 얼마나 행복한 겁니까. 마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길래 그렇게 소중하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겠습니까. 그 마음을 여러분들한테 마음대로, 광대무변한 그 마음을 마음대로 쓰게끔 허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마음대로 쓰질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왜? 자기 뿌리를 자기가 못 믿으니까!
 
그래서 이런 두 가지가 있습니다. 생략해서 말하자면 “소를 한 마리 죽였어도 살생이 되지 않느니라.” 이런 거하고 “요만한 벌레 하나를 죽였는데도 살생이 되느니라.” 이 두 가질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둘로 보지 않고 자기로 봤기 때문에 그 영혼, 마음이 둘이 아니게 한데 합쳐지고, 그 살은 고기로다가, 약으로다가 모두 먹였단 말입니다. 약 아닌 게 어디 있습니까? 밥도 약이요, 반찬도 약이요, 약도 약이요, 전부 약이지 약 아닌 게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그러한 사람 앞에는, 이 마음공부 하는 사람 앞에는, 무슨 그냥 아무 때나 죽이는 게 아니라 꼭 필요해서 죽일 때, 그 소도 건지고 사람도 건지고, 양면을 다 건질 수 있는 거죠. 수만 개를 죽인다 하더라도 죽인 사이가 없다. 그대로, 그대로 여여하게 태어났으니까 말입니다. 

만약에 개를 기르는데 여러분 마음이 개의 마음하고 같이 하나가 됐다면 개도 없고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개도 없고 사람도 없는데 그럼 어디서 나오느냐. 그 불종자에서 바로 환생이 되는 거…, 꽃이 피는 거와 같이. 연꽃 피는 거와 같이. 그래서 넣어도 넣어도 두드러지지 않고 꺼내도 꺼내도 줄지 않는다.
 
연등부처가 부처님한테 “너는 이다음에 죽어서 다시 태어날 땐 석가모니로 태어나거라. 이름을 하라.” 이런 것도 자기 연등부처가 자기한테 말을 했기 때문에 받은 사이도 없고 준 사이도 없다는 격입니다. 수기를 내린 분도 없고 수기를 받은 분도 없다는 얘기죠. 그와 같이 여러분들도 진짜로 이 생명체가 모두 불쌍한 줄 아신다면 이 도리를 빨리 아셔야 합니다. 

그저 길을 지나가도 여러분들은 모르겠지만 ‘아이구’ 하고 그냥 불쌍하게 생각하고 이러면 벌써 그 영혼의 마음이 벌써 하나가 돼 버려요. 하나가 되고 그 물체는 그냥 어딘가 모르게 없어져 버립니다. 자기 눈으로 봐야만 없어지는 줄 아시겠습니까? 자기 눈으로 봐야만 태어나는 줄 아시겠습니까? 이렇게 전력이 들어오는데 들어오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전력이 없다고 하시겠습니까?

  이 마음 자체는 어떠한 짜증이 나는 마음이 생기고, 어떠한 부질없는 용도로써 내 앞에 닥치고, 어떠한 게 망하고 흥하고 이런 걸 떠나서, 내가 그러죠.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도 항상 거기다가 놓고, 자기는 자기가 사는 게 아니라 그 주인으로 인해서 심부름하고 이렇게 사는 거니까, 그대로 거기 놓고 편안하게 마음먹어라. 심부름하는 놈이 뭘 그렇게 주인이 하는 거를 참견을 하고 걱정을 하느냐.” 이러죠. 내 몸이 생각을 하고 그렇게 걱정을 해서 되는 게 아니에요. 거기다 믿고 거기다 놔 버려야 그냥 믿는다 안 믿는다도 없는 거죠. 본래 자기 뿌리니까, 그냥.
 
예를 들어서 ‘아 낼 비가 오면 안 되는데….’ 해도 그것이 그냥 재깍  통신이 되는 겁니다. 왜? 내 뿌리하고 나하곤 항상 통신이 되니깐 말입니다.  뿌리와 뿌리끼리 또 통신이 되고, 용신도 또 주산신도 모두, 보살들 부처님들 다 통신이 되니깐요. 사람의 마음이 생각을 해서 움죽거리는 게 용입니다, 용!  우리 마음이 움죽거리면 용이에요. 몸이 움죽거리면 바로 보신이자 화신이죠.  그게 행이죠. 즉 말하자면 공용의 행! 

우리는 항상 육체 속에도 생명체들이 많이 있어서 같은 의식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모두 씁니다. 그걸 같이하지 않는다면 바로 악과 선이, 즉 말하자면 이 양면이 생겨서 싸우게 되면 몸에 병이 생깁니다. 생명들이 이거는 아군이다 적군이다, 아이, 이게 생겨 가지고 말입니다, 싸움들을 하다가 만약에 아군이 이기든 적군이 이기든 간에, 이기면은 그냥 살이 굳어지거든요. 생명이 죽으니까. 그러니까 절대로 ‘이거는 나쁜 악신이다, 선신이다’ 이런 것도 따지지 마시고, ‘악한 것이 나한테 왔다’ 이런 것도 따지지 마시고, 선신 따로 찾고 악신 따로 물리치고 이러지 마시고, 모든 게 한 생각에 악신도 선신이 되고, 선신도 악신이 되는 겁니다, 한 생각 차이에. 선신은 선신대로만 있는 게 아니에요. 악신도 악신 대로만 있는 게 아닙니다. 

어느 사람이 어느 집에 강도 짓을 하러 들어갔는데, 무슨 부잔 줄 알고 들어갔는데 가난해서 사람 죽일 필요도 없더랍니다, 너무 찾아봐도 없어서.  그래서 사람도 죽이지 않고 가만히 빠져나오려고 그러는데 그 어머니라는 사람이 울면서 하는 소리, 혼자 자다 말고 벌떡 일어나서 하는 소리가 “낼 너희들 차비도 없으니 어떻게 학교를 가느냐. 쌀 한 톨도 없는데 어떻게 너희들을 굶겨 보내느냐.” 하면서 울더랍니다. 그걸 보고 그냥 훔쳐 가지고 왔던 거를 거기다 도로 놓고 그 사람네들한테 주고 돌아섰답니다. 

그러니까 악인도 때에 따라서는 선신이 되는 겁니다. 선신도 때에 따라서는 악인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선과 악을 다 놔라 이런 겁니다. 선도 놓고 악도 놓고 다 놔라. 놓는 그 가운데서 미묘한 바로 참마음이 생기느니라. 그게 바로 평등공법이며 그것이 바로 법신의 정신이다 이런 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마음을 이렇게 ‘아이구, 내가 이렇게 마음을 쓰지 말걸 또 이렇게 썼구나.’ 하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서 ‘이건 그릇된 일이지.’ 하고 그러지 마시고, 잘 썼든 못 썼든 다 거기에다가 그냥 일임해서 놓으세요, 그냥 여여하게.

가만히 보면, 어떤 분은 어떠한 게 닥쳐도 끄떡없이 가다가 그냥 그게 다 풀려서 “스님, 정말이지 이렇게 놀라운 법을 가르쳐 주셔서 저는 어떻게 이 은혜를, 죽어도 못 갚고 살아도 못 갚고 이걸 어떻게 갚아야 옳겠습니까?” 합니다. 그러나 내가 가르쳐 줘서만, 나의 힘으로만 그렇게 된 게 아닙니다. 그쪽에도 반, 이쪽에도 반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방황하고 그렇게 뛰는 것이 애석해서 아이, 제발 좀 그러지 마시고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그냥 주인공에다 맡기시고 그저 좋은 일이 생겼으면 감사하게 놓고, 언짢은 일이 생겼으면 ‘언짢은 일이 생긴 것도 당신만이 해결할 수 있어.’ 그러고 놓고 그냥 다 놓으라고, 그러고 마음을 편안히 둬야 방황하지 않는다고 이렇게 얘기하죠. 그런데도 그걸 놓지 못해요. 그냥 방방 뛰어요, 그냥. 그놈의 걸 붙잡고 늘어지니 슬며시 풀릴 수가 있나요? 옭매듭 쥔 거를 놓지 않고 쥐고 있으면 그 옭매듭이 풀려져요?

그래서 어떤 때는요, 참 딱할 때가 많아요. 나와 같이 사랑하기 때문에 어떤 땐 왜 그럭하라니깐 그러냐고 악도 쓸 때가 있어요. 대신 내가 해 줘도 된다고 여러분들은 생각하시겠지만 여러분들이 해야 나도 같이 해져요. 여러분들이 마음으로서 열질 않고 몰라라 한다면 나도 몰라라예요, 똑같이. 여러분들이 하면 나도 거기 같이 해지죠.
 
내가 옛날에 말했듯 임제 스님이 어떠한 선승한테 묻기를 이렇게 물었거든요. “네가 주장자가 있다면 내 주장자도 너에게 줄 것이로되 네 주장자가 없다면 내가 네 주장자를 오히려 뺏어올 것이니라.” 제가 제 주인을 챙기지 못하니까 집은 항상 비어서 벌레가 끼고, 그냥 오고 가는 행인들이든 벌레든 할 거 없이 빈집이니깐 들어와서 들고 나고 들고 나고 하니까 그 집은 망가지게 돼 있죠. 몸만 망가지는 게 아닙니다. 세세생생의 그 마음도 망가진 마음 그대로 차원이 아주 낮은 마음 그대로 있기 때문에 요다음에 태어날 때도 또 그 모습으로 태어나야 돼요.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근데 이게 그냥 ‘저 스님이 저 말로만 저러지.’ 그러지만, 이것을 당해 보고, 그렇게 해 보고 그렇게 모든 거를 본다면 아마 그렇게 말 못 할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 법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여러분들이 말하고 행하고 보고…. 그런데 옛날에 “뜰 앞의 잣나무니라.” 한 거 말입니다. 왜 잣나무만 부처겠습니까? 우리가 전체 어느 거 하나 공안 아닌 게 없고, 법안 아닌 게 없고, 부처님 아닌 게 없고, 생명 없는 게 하나도 없으니깐 말입니다.

그러니 모두가 우리가 우리의 스승이고, 그네들에게는 우리가 스승이고 서로서로의 스승이란 말입니다. 누가 더 높고 누가 더 얕고 이런 게 없습니다. 단 하나 여러분들이 이 도리를 모르면, 차원이 낮으면 낮은 모습으로 이 세상에 나오니까 그건 낮은 중생이라고 봅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에 따라서 모든 모습도 이 세상에 나오고 모든 모습이 행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만나는 것도 전부 거기에서 그 빛이 풍기는 겁니다.

목록

대한불교조계종 한마음선원(13908) 경기 안양시 만안구 경수대로 1282Tel. 031-470-3100Fax. 031-470-3116
Copyright (c) 2021 HANMAUM SEONWON. All Rights Reserved.
"이 제작물은 아모레퍼시픽의 아리따글꼴을 사용하여 디자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