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한번 죽어 보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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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주관이 강해서 남들과 타협하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절 항상 어려워합니다. 죽어야 나른 본다고 하셨는데 제 갈길은 너무나 멀게 느껴집니다. 그렇지만 저도 살아서 한번 확실하게 죽어 보고 싶습니다. 한 말씀 내려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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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여러분은 이래도 한 철 저래도 한 철,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어요, 한 번은. 그러니 이왕 죽을 거라면 아예 죽든 말든 다 그냥 오로지 버리는 게 좋지 않겠어요? 그런데 버리고 버리지 않고 그걸 떠나서 우리는 그냥 공했습니다. 그냥 찰나찰나 우리가 여기 발 디뎌 놓고 떼어 놓는 거와 같아요. 하나하나 없어지고 하나 떼면 하나 없어지고, 이거 보면 이거 없어지고 저거 보면 저거 없어지고, 이 사람 만나면 저 사람 없어지고 저 사람 만나면 이 사람 없어지고, 이거 먹으면 저거 없어지고, 이렇게 모두가 죄 없어지는데 그 없어지는 거를 왜 붙들고 늘어지십니까.
그래서 나는 그래요. 긴 사람을 보면 길게 그냥 한마음으로 돼 주고 짧은 사람을 보면 짧게 그냥 한마음으로 돼 주고 둥근 사람을 보면 둥글게 그냥 한마음으로 돼 주라고 말입니다. 정말 누구 말마따나 접시가 종지라고 우기더라도 “아이, 종지가 맞아요.” 이렇게 그냥 해 준단 말입니다. 그런데 모두들 무슨 이유가 그렇게 많고 이론이 그렇게 붙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틀리다 어쩐다 이런 이론을 거기다 붙이면 진짜 공부 못 해요.
여러분은 똥 누러 가는 데도 이유가 붙고 배고파서 밥 먹는 데도 이유가 붙습니까? 주무시는 데도 이유가 붙습니까? 그렇진 않겠죠? 졸리니까 그냥 잘 뿐이지, 고렇게 이유가 붙지 않습니다. 우리 지금 살아 나가는 데에 말입니다, 이유가 하나도 붙지 않습니다. 내가 하고 싶으니까 하는 거고, 사랑하고 싶으니까 하는 거고, 내가 가고 싶으니까 가는 거고, 오고 감이 없이 말입니다. 함이 없이 그대로 하는 겁니다. 그거 이유가 붙지 않아요. 그런데도 여러분은 무슨 생각을 하거나 사는 데 뭐, 저거 하면 거기 이유가 꼭 붙습니다. 그건 여러분이 창살 없는 창살을 만들어 놓고 바로 그 창살을 넘나들지 못하는 이유죠.
만약에 누가 틀리면 전자에 그렇게 틀렸을 때 내 모습으로만 보면 얼마나 좋습니까? 모자라는 것도 ‘아이, 내가 전자에 모자랄 때 모습이로구나!’ 하고 마음을 쓰면 공부도 좀 유순해지고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이거는 하나 보면 하나 끄집고 둘 보면 둘 끄집고 이렇게 하니, 아니 지금 시공을 초월해서 그냥 찰나에 들어가는 이런 공부인데 그냥 이것 말하고 저것 탓하고 이거 하고 저거 하고, 언제 저승에 들어가서 저승 공부를 하렵니까?
살아서 열반을 못 한다면 죽어서도 열반이 아니 되죠. 경전을 통해서 통달을 한다 하더라도 그거는 이론에 불과하지 실천을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심성 해탈이라야 그게 통할 수 있겠죠. 그리고 자유롭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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