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신난득 불법난봉이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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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에서는 인신난득 불법난봉이라고 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불법 만나기 어렵다는데 불법 만나기 어렵다는 건 이해가 될 것 같은데 사람 몸 받기 어렵다는 건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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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여러분, 잘 생각을 해 보십시오. 우리 인간 몸 탄 것이 얼마나 아픔을 견뎌 오면서 참고 참고 견뎌 왔는지를. 여러분은 살림을 하시고 그러니까 그런 생각도 해 볼 여지가 없었으리라고 믿습니다마는 나는 이런 생각을 가끔 해 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더러 “좀 쉬시죠. 어디 저런 데 좀 가십시다.” 이럽니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더 외려 쉬는 게 아닙니다, 고달픈 거지. 내가 여러분에게 이렇게 접근하다 보면 아주 나도 그 사람과 더불어 같이 답답하고, 그 사람과 더불어 같이 아프고 괴롭습니다. 그런 때가 있습니다. 많습니다.
그런 때는 한번 이렇게 검토합니다. 구경을 합니다. 과거로 한번 수억만 년 전으로 돌아가서 한번 거쳐 옵니다. 그러고선 바로 지금 현재 상황을 살피고 한번 나를 다시 봅니다. 이럴 때 나는 그 생각, 그렇게 구경을 하고 한번 돌아오는 고 한 순간의 생각에 나는 벌써 나도 모르게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흐릅니다. 그럴 때가 나는 제일 쉬는 겁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겪어 보지 않았고 또 실감 나지 않는 일이 돼서 모르시겠지마는 이런 걸 얘기로 한다고 해서 여러분이 실감 날 리는 없겠지요. 그러나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 증명이 되고 또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물속에도 그 돌에 있는 그 느끼, 또 흙의 느끼 그런 것만 걷어 먹고 남하고 싸움하기 싫고, 또 연쇄적으로 잡아먹어 가면서 먹기 위해서 사는 게 싫고 한 그 생물들이 있습니다. 그런 거는 돌 틈에 가서 살면서 그저 남을 피해서 그런 거라도 걷어 먹고 살다가, 천 년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사람 된 것도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해서 사람 된 게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 천 년을 지내고 난 뒤에야 바로 인생이라는 한 꺼풀을 쓰고 나옵니다. 이건 간단하게 그냥 얘기하는 겁니다. 그 과정은 말고도 말입니다.
그렇게 천 년을 견디면서 남하고 싸움하지 않고, 남에게 시비를 걸지 않고, 남을 해롭게 안 하고 그렇게 했건만 인간으로서의 한 꺼풀을 쓰고 나온 그 인간의 모습이 어땠던가? 한 나무의 수많은 이파리들이 그저 가을이 오면 바들바들 떨면서 단풍이 져서 어디로 흔적 없이 하나하나 날아 떨어지는 거와 같은 인생살이. 한번 생각해 보신 점이 있습니까?
또 한 가지는 동물들에 관한 건입니다. 동물들은 남들하고 또 싸움하기 싫어서 아주 인적이 없는 그런 곳에, 살 수도 없고 추기도 면할 수 없는 그런 곳에 그저 눈을 헤쳐 가면서 풀뿌리만 먹고 사는 그러한 동물들도 있습니다. 남을 해치지 않고 싸움도 하지 않고, 또는 동물들도 많이 오지 않는 그런 데에 가서 생명을 유지하고 사는 것들도 있습니다. 때에 따라서 위에서는 자기를 잡아먹으려고 그러고, 아래서는 추기가 오고 먹을 것은 별로 없고, 또 어느 때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면 산골짜기의 물이 흐르는 데서 일 년에 하나 얻어먹기 어려운 생물이 나오기를 지키고 있단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만약에 그런 데서 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거라고, 즉 말하자면 하나님이라면 기독교에서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로 뭉친 그 뜻을 말합니다. 물이 올라갔다 내려올 때 한번 요행히 하나 얻어서, 전에는 그런 것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산골짜기에도 많이 떨어졌습니다. 그런 거를 일 년에 몇 번 얻어먹기 어려웠고, 그렇게 살면서도 남한테 해롭지 않게 하면서 또 남하고 어울리지 않고 외롭게 이렇게 살면서도 그 천 년을 견뎌야 사람의 꺼풀을 쓰고 또 이 들에 내려옵니다.
그런 과정, 그 어려움을 겪으며 사람의 꺼풀을 썼는데, 그 사람의 꺼풀이 한갖 나무 이파리와 같단 말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이런 모두를 아신다면 목을 놓고 앉아서 울어도 시원치 않은 일입니다. 하늘을 보고 하루 종일 쳐다보고 껄껄대고 웃어도 시원치 않고 하루를 내려다보고 땅을 치고 울어도 시원치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그 인연들이 수없이, 겹겹이 쌓이고 쌓여서 우리는 또 어우러졌습니다. 인간의 한 이파리로 태어나서 그렇게 서로 어울려서 한 나무에 모두 있다가, 그저 하나 떨어지고 둘 떨어지면 울고들 합니다. 그러나 그 이파리는 또 떨어지면서 바로 간다는 얘기도 없고 온다는 얘기도 없고 그냥 떠나갑니다, 바람에 날려서. 그러나 거기 붙어 있는 것은 아직 붙어 있으니까 ‘너는 가면 어디로 가느냐’고 하면서 바로 친지처럼, 형제처럼, 부모처럼 같이 있다가 떨어지는 그 나무 이파리를 보고 애원합니다. 그런데 자기는 자기대로 얼마 안 있다가 또 그렇게 해서 바람에 날리거든요. 그런데 그 바람에 날리는 그 낙엽은 그래도 생명이 소중한 거라, 그 몸 하나하나를 아주 허탕 내버리지 않고 그 땅에 도로 거름이 돼 줍니다.
그 낙엽이 수많이 떨어졌어도 그 모든 사람들의 발밑에 밟히는 것은 인간의 거름이 돼 주려고 밟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이 사람의 썩은 물이 바로 사람을, 죽는 사람을 살린다고 합니다. 인간은 그렇게, 수없는 나날을 그렇게 걸어오면서 많은 것을 배워 왔고, 알아 왔고, 진화되어 왔습니다.
나는 때에 따라서 나무 밑을 걸으면서도 혼자 걷기 좋아하고, 비 맞고 걷기 좋아하고, 눈 맞고 걷기 좋아하고, 혼자 있기 좋아하고 그럽니다. 누가 있는 거 싫어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혼자 걸음을 걸을 때 혼자 걷는 게 아니라 나뭇잎 하나하나처럼, 길을 가다가도 나뭇잎이 떨어지면 ‘허, 또 하나 떨어졌군.’ 떨어졌으면 떨어진 대로 이렇게 한번 중얼중얼거리고 갑니다. ‘임이시여, 임이시여. 나는 간단 말 없이 가지마는 가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바로 당신 밑에 떨어져서 당신이 성장하기를 바라면서 손을 한데 모으고 거름이 돼 주렵니다. 당신이 추우면 추기를 면해 드리기 위해서 덮어 주렵니다. 봄이 올 때에 따뜻하면 나는 당신의 거름이 진짜 되렵니다.’ 하고 말이에요.
이 세상에는 모두가 다, 지금 현재에도 한 이파리에 지나지 않게 한 인생이 뜬구름처럼 그냥 그냥 훌쩍훌쩍, 훌쩍훌쩍 가 버립니다. 그렇게 바람과 구름같이 스쳐 가는 그러한 인생입니다. 또는 그렇게 스쳐 가는 그런 인생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바로 스쳐 가면 스쳐 가는 대로 다른 모습으로 또 옮겨 가고 했던 그 시절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이렇게 우리 이 사람사람이 살아가면서, 그렇게 겹겹이 겹쳐진 인생의 그 생로를 거쳐 오면서, 슬프게 아프게 거쳐 오면서도 그걸 이겨 나가고, 그 비호같은 살을 에어 내는 바람도 우리는 마다하지 않고 이렇게 겪어 나와서, 오늘날에 인간이 돼 가지고 그렇게 했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함께 공부를 하는 겁니다. 즉 말하자면 금방에 금이 모이듯이, 넝마전에 넝마가 모이듯이 우리는 예전에도 같이 한자리에서 그렇게 에이는 그 아픔을 서로 견뎠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몸 벗기 전에 정신 차려서 벗어나야 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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