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다운 인생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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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까지 마음공부를 모르고 인생을 방황하며 살다가 이제 마음 도리를 조금씩 공부해 나가면서 다시 태어나는 느낌입니다. 이제 더 이상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참다운 인생을 살고 싶은데 그 길을 일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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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죽을 때면 벌써 공부한 사람하고 안 한 사람하고 다릅니다. 공부한 사람은 그렇게 고통을 받지 않고 하면서도, 고통을 받는다 하더라도 간단하게, 간편하게 받고, 이 도리를 모르는 사람, 자기가 마음으로 업을 지어 놓고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놓은 사람은 무지하게 고생을 하죠. 모두가 자기 마음으로 지은 것이, 이 모든 생명들이 자기한테 붙어서 떠나질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생명이 있는 이상 자기는 생명이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모두 자기가 만들어 놓고 그렇게 받는 것인데,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증오하고 누구에게 기대고 누구를 믿고 그러겠습니까.
진정한 사랑을 알려면, 진정한 자비를 알려면 이 도리부터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그냥 인간으로 태어나서 하룻밤 사이에 죽어가고 하룻밤 사이에 태어나고 이러는 거, 우리 삶도 그렇습니다. 이렇게 살면서 그저 “내가 잘 먹고, 잘 입고, 야, 오늘은 예쁘게 차리고 오늘은 누구하고 만나고, 또 오늘은 돈을 얼마를 벌고, 오늘은 이렇게 식구들끼리 이렇게 앉아서 또 저거 하고, 어디 가서 술 먹고, 어디 가서 또 만나고, 또 살고 재미있게 지내면 이게 사는 보람이지.” 이러지마는 천만의 말씀입니다. 사람은 죽을 먹더라도 진실하고 올바르게 나갈 수 있는 그러한 꿋꿋한 자기 중심이, 바로 분수를 지키면서 언제나 항상 인간의 도리를 다할 수 있는 그러한 행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어떠한 것을 할 때에 자기라고 할 수 있으며, 어떠한 사람을 만날 때 자기가 만났다고 할 수 있으랴.’ 하는 것을 생각해서 자기는 종이라고 자기를 내세울 수 없는 게 공이 아닌가. 그거를 안다면 이 우주 전체가, 즉 말하자면 원료를 튼튼하게 우리는 공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누구한테 받습니까? 내가 그 원료를 갖다 쓰려면 갖다 쓰는 거지, 어디고 나 아님이 없고 내 마음 아님이 없기 때문에 내가 바로 한생각을 내면 전체가 한생각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그대로 자유스럽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굼벵이가 매미만 되라는 법도 없습니다. 사람이 또 이런 게 있지요? 요걸 한 가지로 표현하겠습니다. 사람도 똑같습니다. 굼벵이가 벌써 떨어질 때는 생각이 있어서 떨어진다 이겁니다. 굼벵이가 떨어지기 전에 생각을 했습니다. 뭐, 굼벵이 껍질 이 자체가 굼벵이가 아닙니다. 굼벵이의 마음도 생각이 있으니까, 자기가 날 것을 미리 해 놓고서 또 날 때가 되면 바로 여기에서 떨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몸뚱이는 없어지자마자 벌써 여기에서는 매미로 탄생이 된다는 뜻입니다. 사람도 역시 만 9개월이 되는데, 사람도 벌써 여기에서 이게 ‘내가 벌써 간다’ 그러면 어디로 갈 거를 벌써 정망해 놓고, 여기에서 정망해서 아홉 달이 돼서 날 때에 벌써 여기에서는 생명이 끊어지고 저기에서는 탄생을 찰나에 하는 겁니다.
이렇게 묘한 인간의 법칙과 더불어 우주의 법칙이 동시에 같이 한 찰나 한 찰나 이렇게 돌아가는 이치를 여러분들은 뭐, 이렇고 저렇고 이렇고 저렇고 하는데, 그러면 우리는 그 원료를 지속하게 쓸 수가 없죠. 모르면 지속시킬 수가 없는 겁니다. 지속시킬 수 없다면 내 집도 망가지거니와, 내 집을 바꿔서 좋은 집으로다가 옮길 수도 없거니와, 자유자재할 수 없거니와, 이 지구의 집도 내가 지속시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한 점의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러분들이 깨닫고 알아야 합니다. 마음들을 올바로 써야지 마음들을 올바로 쓰지 않으면서, 진실치 못하면서 내가 잘살겠다 못산다 뭐, 어쩐다 이런 말들은 다 핑계, 좋은 이런 말이 못 됩니다. 내가 하나를 알면 전체, 뿌리 하나만 싱싱하면 이파리고 뭐고 가장구도 다 싱싱하듯이 내 중심이 완벽하다면 모든 게, 가환, 우환 이런 모든 그 액난이 다 거기서 녹아 버리고 마는 겁니다. 그런데 뭐가 필요합니까? 뭐 걱정될 게 있습니까?
어느 분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아니, 바쁘니깐 스님 설법도 잘 못 듣고 그랬으나 내가 스님한테 와서 서너 번 말씀을 듣고 보니까, 꼭 그 내 주인공에 딱 맡겨 놓는 그 순간 벌써 한마음으로 돌아간다는 뜻을 제가 알았습니다.” 그러면서 “아주 지금 당장 위급해서 이 집을 그냥 다 파산하고 다 몰아갈 상황인데 아, 그날 저녁에 이것이 해결이 됐습니다.” 이러는 겁니다. 누가 와서 그냥 이걸 사자고 하더랍니다. 그러니깐 팔아서 그거 갚고 나서 반이 남더랍니다. 그러니 살았지 않습니까?
그것이 왜 그렇게 됐느냐. ‘에라, 내일 아침이면 벌써 이걸 다 뺏기고 다 거지가 될 텐데 에라, 거지가 되든지 말든지 당신 알아서 하시오.’ 그러곤 아예 편안하게 ‘내일 죽을 테니까 아예 가서 잠이나 자야겠다.’ 이러고선 가서 잠을 자는데, 죽든지 살든지 편안하더랍니다. 그 이튿날 아침에 전화가 오기를 “야, 여기 집 살 사람이 여기 왔습니다. 빨리 나오시오.” 하더랍니다. 그래서 팔고 거지가 안 됐더랍니다.
사람이 어떠한 급한 일이다 할지라도 자기가 믿음이 진실하다면 죽으나 사나지, 자기를 안 믿어 봤자죠. 그럼 누굴 믿습니까? 자기로부터 이 세상에 나왔는데, 자기를 억겁 년 전서부터 참 이렇게 끌고 진화시키고 창조를 하고 이렇게 해서 형성시킨 이 몸뚱이가 누구로 인해서 이렇게 살고 있습니까. 지금도 현재 여러분들이 자기 마음에 의해서 자기 마음이 운전수가 돼 가지고 자기 몸뚱이가 움죽거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마음을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 인간이라면 상식과 교양 모두 잘못되고 잘된 거를 알기 때문에 그 말을 안 해도 인간은 인간답게 알고 있으니까 그것을, 만약에 나쁜 일을 이렇게 한다 하고 생각이 났더라도 자기 마음이 자기를, 바로 자기 몸뚱이를 리드해 나가고, 또 자기 몸뚱이는 마음이 잘못되면 ‘이건 안 된다’ 하고 주인공에 맡겨 놓고, ‘이건 된다’ 할 때는 주인공에 감사하게 놓아야 합니다. ‘모든 게, 내가 움죽거리는 것이 바로 나의 성품으로부터 나온 것이니까 그 성품 자체가 고정됨이 없으니 공이 아닌가. 모든 것은 공이면서도 소소영영하게 이렇게 아프면 만져 주고, 또 아프면 금방 통신이 오게 하고, 이렇게 하는 당신이 얼마나 고마우랴.’ 이렇게 자기 주인공을 생각하면서 여러분이 살아나간다면 억만금을 줘도 바꾸지 않을 자기 보배를 자기가 모두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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