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층탑에 대해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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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층탑에 대해

본문

질문

한마음선원은 다른 절과 달리 대웅전 지붕에 둥근 탑이 올려져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안양 본원에는 칠층으로 탑이 올라가 있는데요, 그 뜻이 궁금해서 질문 올립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본원관리자님의 댓글

본원관리자 작성일

예. 칠탑이든 구탑이든 말입니다, 칠탑도 여러분들의 몸과 같은 겁니다. 왜 사람이 죽으면 칠성판을 깔죠? 허허허. 육 속에 진짜 주장자가, 자기가 있기 때문에 그거를 하나 세우고, 그래서 칠성판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그래 칠탑이라고 그러는 것도 여기다 대도 맞고 저기다 대도 맞습니다만, 칠탑도 없고 칠탑이 한 탑이요, 한 탑이 칠탑입니다. 따로따로 있는 게 아닌데 이것을 우리 사람이 살아나가는 데에 이 모든 것을 맞게, 전부 살아나가는 그 모두를 질서 정연하게 만들어 놓고 그런 것이지, 이 마음의 도리로서는 칠탑도 없고 한 탑도 없습니다. 너무 많아서, 너무 탑이 많아서 ‘칠탑이 있다, 한 탑이 있다’ 이러지 않습니다. ‘삼탑이 있다’ 이러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둥근 탑을 갖다가 이게 칠탑으로 올린 것은요, 우리 여러분들이 다 요만한 분도 빼놓지 않고 다 성취하라고 방편으로서 그렇게 세운 겁니다.  방편 아닌 방편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여러분들의 마음이 동시에 같이, 모두 응신으로서 거기 같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두 응신이 되고 보현신이 되고 법신이 되고 부처님이 되고….

가만히 있으면 그 탑도요, 칠탑도 따로 없고 또 모든 사람들이 마음을 내면 칠탑이 있고, 또 둘 아닌 마음으로써 공부하시는 분들에게는 전부 그것이, 보현신도 거기 계실 거고, 부처님도 계실 거고, 또 법신도 거기 계실 거고 다 그냥 이 허공에 다 계신 분들 하나도 빼놓지 않고 거기 다 운집해서 계실 겁니다. 그러니까 항상 마음공부 하는 분들은 그저 거기에, 때에 따라선 거기에 계시고, 때에 따라선 여기에 계시고, 때에 따라선 부처님한테 계시고 그런 겁니다.
 
지난번에 스승의 날이랬나? 그날 신도님들이 많이 오셨는데 법당으로 몰았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처음에 배울 땐 형상이라고 배웁니다. 나도 그렇게 가르쳤고요. 형상이라고 배우지만 나중엔 말 없는 그 무심으로써, 연기법으로, 그냥 공법으로 하시는 부처님이 돼 버리죠. 그래서 여러분들의 몸도 이 형상하고 똑같고요. 여러분들의 몸도 형상 아닙니까? 저 모습도 똑같고 마음도 똑같고, 생명도 똑같으니 너무 높이 보지도 말고 너무 얕이 보지도 말고 그냥 항상 둥글게 삼배를 극진히 올리고, 자기 주인공을 다 거기다 몰아넣고 삼배를 올린다면, 자기가 그냥 색경을 보고 자기한테 절할 수도 없는 거니까  여기다가 다 이렇게 한데 주인공과 더불어 같이, 부처님의 주인공과 같이 해 놓으시고 삼배를 올리시면 그 스승의 날 아주 멋지게 보내시는 거죠. 그러니깐 이 마음공부 하는 사람들은 말로 알려고 하지 마시고요, 그 뜻으로 알려고 하세요.

이 마음, 정신계와 물질계가 둘 아니게 쓰는 마음은 지혜롭고 그거를 정신계와 물질계를 같이 쓰지 못하고, 즉 말하자면 물질계에서만 쓰게 되면 그것이 지혜롭지 못하다 이런 말이죠. 그래서 이 정신계와 물질계가 둘 아니게 쓰는 사람들은 공덕이 있지만 그냥 육안으로 쓰는 사람은 공덕이 하나도 없다. 이 물질만 보고, 내 물질이 물질만 보고 기도를 하거나 그런다면 그건 상대를 보고 기도를 하기 때문에 내 마음이 한마음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공덕이 될 수가 없죠. 

모두가 한마음으로서, 한 개체로서 이 몸뚱이 하나를 가지고도 이것이 공체입니다. 공체인데 항상 자기가 생각할 때는 나라고 생각을 합니다. ‘나는 내 몸뚱이 하나다.’ 이렇게요. ‘내 몸뚱이 하나고 나뿐이다. 외롭다.’ 그러지요.  그런데 외롭지 않아요. 이 몸뚱이 하나 속에도 생명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그래서 바로 공체죠. 그리고 또 공체로서 움죽거린다면 공용이지 어떻게 자기가 개별적으로 하나가 움죽거리는 겁니까? 그러니까 더불어 같이 움죽거리기 때문에 공용이죠. 그리고 공식이고. 그래서 공생, 공심, 공체, 공용, 공식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지혜로운 거는 공심으로서 쓰는 것이 지혜고. 공심이 아닌 개별적으로 내가 이렇게 나대로 그냥 마구 말하는 걸 지혜롭지 못하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항상 ‘이 몸뚱이도 공체고 혼자 사는 게 아니고 더불어 같이 사는 거구나. 더불어 같이 움죽거리는 거구나. 더불어 같이 보는 거로구나.  더불어 같이 먹는 거로구나. 더불어 같이 생각하고 사는 거로구나. 그러니 나라고 세울 게 뭐 있겠나. 내가 혼자 했다고 할 게 뭐 있겠나. 내가 혼자 봤다고 할 게 뭐 있겠나. 혼자 들었다고 할 게 뭐 있나. 내가 산다고 할 것도 없다. 나를 세울 게 하나도 없구나.’ 이렇게 생각하신다면 이 세상이 모두 공해서 초월해서 돌아간다는 걸 알 수 있으실 겁니다. 

그래서 우리 지붕에 칠탑을 해 놓은 것도 바로 여러분들의 몸과 같이 생각하면 됩니다. 공체인 몸, 공심인 마음, 공생인 생명, 공식으로서 모두가 같이, 더불어 같이하고 있는 우주 삼천대천세계를 같이 돌고 있는 그런 모습을 우리가 상징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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