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하고의 관계가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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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딸이 하나 있는데 영 자기 고집만 부리고 저 잘되라고 몇 마디 하면 며칠씩 친구 집에 가 버리는 등 정말 자식의 마음을 맞춰 주는 게 힘에 부칩니다. 자식과의 관계가 왜 이리 힘이 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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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여러분이 오시게 되면 어떠한 액난이나 어떠한 고난을 안고 옵니다. 그 안고 오는 고난 액난이 어디에서 있는가. 바로 내 한마음 속에서 악이 술술 풀려나오고, 액이 술술 풀려 나오고, 병고가 술술 풀려 나오고 모두 과거에 살던 인연에 따라서 업이 지어진 관계로 그렇게 풀려 나옵니다. 그렇게 나오는 것을 거기다가 되맡겨 놔야만 되입력이 돼서 앞의 것이 무너지고 새로이 입력된 게 현실로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왜 “나는 생각해 본 예도 없고, 말한 예도 없고, 행한 예도 없다.”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그 이치는 여러분이 여기에 오실 때 뭘 가져왔다면 마음으로 가져오시죠? 내게도 여러분과 똑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 마음과 마음이 한데 합쳐졌을 때 광력이 일어나게 돼 있습니다. 합쳐서 작용을 할 때에 나오는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의 마음과 내 마음의 양면이 합쳐지면 전자와 전자가 없어지고 그 에너지광만 나오게 돼 있죠. 그런 거와 마찬가지로 양면이 다 없어지고 불만 번쩍 일어나듯이 여러분이 가져온 재료에 성사가 일어난다 이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내가 했다고도 할 수 없고 여러분 중에 어떤 누가 했다고 할 수도 없는 겁니다. 이걸 좁게 보면 네가 하고 내가 했다 하겠지만, 넓게 본다면 네가 했다 내가 했다 할 수가 없는 겁니다. 모두가 공해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독불장군이 없이. 이렇게 돌아가기 때문에 엄마 아빠가 애를 낳아도, 아내 자식이라고만 할 수도 없고 남편 자식이라고만 할 수도 없습니다. 넓게 보면 모든 문제들이 네 자식 내 자식이 따로 없고, 네 부모 내 부모가 따로 없고, 네 형제 내 형제가 따로 없다는 그런 이치로 돌아가죠. 그럼으로써 ‘하지 않았다’도 아니고 ‘했다’도 아닙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했다 안 했다 이것이 없습니다. 네 자식이다 내 자식이다 그게 없습니다. 네가 했다 내가 했다 그게 없습니다.
전자와 전자가 한데 합일해서 돌아갈 때, 바로 두 전자는 그냥 없어지는 겁니다. 없어진다 하는 거는 하나로 몰입하기 때문에 없어진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광력만, 즉 에너지광만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아니 하면 성사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여기도 보면 참 유전성으로 오는 사람, 영계성으로 오는 사람, 세균성으로 오는 사람, 업보성으로 오는 사람, 윤회성으로 오는 사람 등 갖가지로 많습니다. 이런 거를 병원에서 100%를 다 해결한다고는 못 봅니다. 과거로부터 온 거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이 정신계의 발전을 아니 한다면 그걸 대처해 나갈 수가 없습니다. 65%든 60%든 대처해 나갈 수가 없는 겁니다. 그리고 첫째는 내 몸을 이끌어 나가지 못하며 내 가정도 이끌어 나가지 못합니다. 넓게 생각하세요. 좁게 개별적인 하나만 생각하지 말고 포괄적인 하나로 생각을 하세요. 한 가정이라면 한 방통 안이라고 봅니다.
내가 항상 “전력은 다 똑같습니다.”라고 얘기를 하죠, 방편으로. 전구는 많지만 전력은 똑같다 이겁니다. 그래서 남편이나 자식이 내 뒤를 따라 주지 않는다고 해서 싸우고 “왜 나는 나가는데 안 나가느냐?” 하고 온통 야단들을 하지 말고, 모든 것이 마음의 작용이니까 내 주인공에다가 ‘한마음 주인공! 주인공만이 나를 이끌어 줄 수 있고, 우리 식구를 다 이끌어 줄 수 있고, 내 몸을 이끌어 줄 수 있다. 성사가 되는 것도 거기요 성사가 안 되는 것도 거기니, 성사가 되게 하는 것이 거기밖에 없다.’ 이렇게 믿고 맡기고 놓았을 때 가정이 점점 마음이 밝아지게 돼 있습니다.
전등은 다 각각이지만 전력이 같으니까. 그러니 그렇게 밝아질 것을 나가서 안 들어오느니 나가서 무슨 짓을 하느니 하면서 잠도 못 자고 아등바등하면서 온통 애를 태우니 병은 병대로 나고, 가정은 가정대로 파괴가 되고, 화목지 못하고, 부드러운 말 나오지 못하고, 부드러운 행 나오지 못하고 이거는 모두가 악화가 되는 거죠. 너그럽게 생각을 하십시오, 너그럽게.
우리는 배낭을 짊어지고 나왔기 때문에 과거는 없다는 얘깁니다. 여러분의 몸속에 벌써 현실로 수억 개나 되는 악업 선업을 짊어지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과거가 어딨습니까? 미래는 또 아직 오지 않았으니깐 없고요. 그럼 그 배낭 속에, 이 몸을 배낭이라고 해도 됩니다. 배낭 속에 그렇게 수억겁을 거치면서 진화되면서 쫓고 쫓기면서, 인과를 짓고 업을 지은 이 악업 선업을 어떻게 해결을 하시렵니까?
모두 나오는 대로 용도에 따라서 거기다 맡겨 놓으신다면, 바로 앞서의 것은 무너져 없어지고 현실에 좋게 생각해서 새로 맡기는 것만이 풀려져 나오게 돼 있어요. 그거를 숙명통이라고 하죠. 비교한다면 지금 컴퓨터와 같은 거죠. 과거를 짊어지고 나오는 것은 컴퓨터에 입력이 되어서 나오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중에는 “나는 그렇게 해도 안 됩니다.” 이런 사람이 있거든요. 안 되긴 뭐가 안 됩니까? 생활이 그대로 부처님 법이자 우리들의 법인데. 모든 것이 여러분이 있으니까 상대가 있죠. 여러분이 없으면 상대가 있을 리가 있나요? 무효지. 여러분이 있기 때문에 바로 상대가 있고, 상대가 있기 때문에 부작용이 나고 모든 게 일어나는 거니까, 모든 것은 나로 인해서 상대가 있다는 걸 먼저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 여기서 나오는 거니까 여기에다가 모든 것을 맡겨 놓고 ‘거기서 액난이 다 나오는 거니까 액난을 다 없앨 수 있는 것도 그 자리밖에 없다.’ 하고 놓는 것이지 ‘나를 잘되게 해 주시오.’ 하고 비는 것이 아닙니다. 곧바로 믿고 그냥 직선으로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주인공! 한마음 주인공! 나를 이렇게 해 주시오.’ 이게 아닙니다. ‘해 주시오’가 어딨습니까, 둘이 아닌데. 유심과 무심이 어떻게 둘이 됩니까? 정신과 육체가 어떻게 둘이 됩니까?
그러니까 ‘해 주시오’가 아니라 ‘틀림없이 거기서만이 해결할 수 있다. 안 되는 것도 거기서 나오는 거니까 되게 하는 것도 거기다.’ 하고 놓는 겁니다. 이심전심으로써 수없이 통하고 돌아가는데 내 마음이 저쪽 마음으로 가서 해결을 하는 것도, 내 몸뚱이 속에 있는 중생들을 바로 보살로 화하게 만드는 작업입니다. 이 작업이 없이는 내 속에 있는 이 업보성을 전부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전부 보살로 만들 수 없습니다. 보살로 만들지 못하면 중용을 할 수 없습니다. 즉 무심의 중용, 보이는 데나 보이지 않는 데나 100%를 작용하면서 굴리는 것이 중용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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