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신기하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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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일전에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여쭈었던 사람인데, 요즘은 예전보다 주인공에 대한 믿음이 좀 더 간절합니다. ''나''가 없다면 이렇게 딱 벌어진 일체경계가 무의미하다는 스님의 말씀을 곱씹으면서 이렇게 딱 벌어진 모든 상황속에서 ''나''라는 생각을 슬그머니 한번 빼봅니다. 그러면 그렇게 시끄럽게 돌아가던 세상이 금방이라도 멎고 ''있는 그대로''가 되어버립니다. 일견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참으로 신기하게 생각됩니다. 물론 여태 내가 지녀오던 습, 업들이 모두 녹아 내렸다는 말은 아니지만 크고 작은 생활의 변화를 느낍니다. 계속해서 정진하고 싶습니다. 힘이 될 수 있는 말씀을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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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우리가 생활하는 것이 그대로 참선이라고 말은 그렇게 하지만, 공부해나가는 과정에 계단 없는 계단이 있다고 봐요. 그런데 색이자 공이고, 공이자 색이라고 했으니, 나와 더불어 모든 게, 일체 처(處)가 다 공했습니다. 삼세심이 다 공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 과정 속에서 이곳 저곳 바깥에서 구함이 없이 처음에 공부할 때는 모든 것을 내 안의 근본에 맡겨놓고 무조건 들어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내 마음이 편안해졌을 때, 결국은 그때에 진짜 관(觀)해야 됩니다. 편안해졌을 때,“주인공 당신이 있다면 증명해.” “당신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관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렇게 하느냐? 가만히 앉아서 좌선을 해서 편안해졌다고 한다면, 편안한 것이 공부라면 영 발전이 없습니다. 좌선을 해서 편안하다고 그것에 그냥 머물러서“아, 이만하면 족한 것을….” 한다면 그걸로만 그냥 족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내 마음을 발견했을 때, 내 안의 내 대답을 내가 들었을 때, 그때는 앞서의 그 습을 다 놨기 때문에 미비한 점이 없는 거죠. 그래서 일단계는 ''무조건 다 놔야 된다'' 그러고 나서 그 다음에 편안해지면 ''나를 발견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공부를 열정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근본을 바깥에서 알려고 하지 말고 안으로 자꾸 밀치고 들어가야 알려고 하는 동안에 자기가 오히려 밝아지게끔 되는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자기를 알고자 자꾸 문을 두드리다 보면, 문은 두드려야 열리지 두드리지 않는 문이 어떻게 열리겠어요? 가만 놔두는데 어떻게 열리겠어요. 허구장창 일하면서도 그냥 그 마음을 한 번 꽝 치고선 또 일하고, 잊고서 가다가 생각나면 또 한 번 꽝 치고 일을 하고, 이래야 그 문이 나중엔 부서지든지 그냥 열어지든지 어떻게 되지 가만히 둔다면 영 열리지 않아요. 그러니 이 공부를 지극하게 해서 이 생에 벗어나십시오. 세세생생을 전전긍긍하며 이리 저리 끄달리며 살게 된다면 그 얼마나 괴로운 일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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