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법문-103_1993년 11월 7일 내가 지금 벗어나지 않는다면
본문
질문: 제가 질문드리고 싶은 것은 견성에 대해서 좀 여쭈어보고 싶습니다. 달마조사 혈맥론에 의하면 부처를 찾고자 하면 반드시 우리가 견성을 해야 된다고 이렇게 말씀을 하셨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염불을 하거나 또 경을 외우거나 계를 지켜도 별로 이익이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경을 외우면 총명을 얻고, 계를 지키면 천상에 태어나는 과보를 받고, 보시를 하면 우리가 복된 과보를 받되 부처는 될 수가 없다고 이렇게 말씀을 하셨거든요. 그렇다면 우리 수행하는 불자들이 반드시 견성을 해야 된다고 생각이 되는데, 본래 스님께서 말씀하셨지만 마음이라는 것은 체가 없고 모양도 빛깔도 없어서 우리가 볼 수가 없는데 단순히 작용하는 거는 우리가 이렇게 말하고 보고 듣고 하는 걸로 알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저 같은 경우는 제 주인이 마음이고, 또 저를 지금까지 형성시켜온 것이 그 마음이라고 이렇게 알고 있거든요. 근데 이렇게 알고 수행하는 자체가 견성인지 아니면 저희들이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그 어떠한 다른 경계가 있어서 말씀을 하신 건지 그 점이 상당히 궁금해서 스님께 가르침을 구하고 있습니다.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큰스님: 그렇게 잘 알면 성불을 오히려 못 하죠. 잘 아는 것이 앞을 막아서요. 또 몰라도 안되고요. 그러니깐요, 자기가 지금 이렇게 움죽거리게 된 사실을…, 그 자기가 과거에 살던 자기이기 때문에 부(父)죠? 부가 되죠. 그래서 지금 현재에 형성된 자기는 자(子)가 되죠. 그래서 부(父)는 가만히 있으면 부가 저절로 되고, 자(子)는 생각을 냈다 하면 자가 되는 거죠. 그런데 그냥 자동적으로 가만 있으면 부가 되고, 자동적으로 생각을 냈다 하면 그냥 자가 되는데, 그러면 가만히 있으면 자가 부로 하나가 되고, 또 생각을 냈다 하면 부가 자로 와서 하나가 되고, 그러니 부다 자다 할 것도 없는 자기 주인공을 진실히 믿는 데에 있는 겁니다. 진실히 믿고 잘하든 못하든, 알든 모르든, 경을 보든 안 보든…. 즉 말하자면 경을 보면 '아, 이건 부처님이 이렇게 말씀해 놓으신 거지!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또 따로가 되죠. 따로가 되죠!
그런데 내가 말하는 것은, 삼천년 전 부처님이 말씀해 놓으신 거든, 현재에 말씀한 거든,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다 소용이 없어. 나로부터 있는 거니까. 그러니까 내가 있기 때문에 책을 볼 수도 있고, 내가 있기 때문에 말을 할 수도 있고 이렇게 천차만별의 작용을 하면서 살고 있구나. 그러면 나, 그렇게 작용하는 나를 누가 형성시켰나. 그 바로 자기란 놈이 형성시켜 놨잖아요. 그렇죠?
자기란 놈이 형성시켜 놨으니까, 그 자기란 놈이, 형성시킨 그놈이 바로 부(父)가 되는 겁니다. 자기, 참자기가 되고. 그런 거니까 형성된 자(子)의 마음은 바로 부의 마음과 둘이 아닌 까닭에, 꼭 나무는 제 뿌리를 믿어야 한다 이런 겁니다. 나무가 제 뿌리하고 떼려야 뗄 수가 없습니다. 그걸 무명이라고 합니다. 흙이 덮여서 그 나무가 제 뿌리를 못 보게 된 것을 무명이 덮였다고 합니다. 우리 인간도 영혼의 근본 뿌리를 못 보는 것은 바로 무명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 뿌리를 자기가 못 본다 이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잘 알고 모르고 그걸 떠나서 진실하게, 물러서지 않는 마음으로써 믿음을 가질 수 있다면, 그리고 그 나온 자리에다 모든 거를, 지금 현실의 모든 일체 작용할 것이 나오는 자리에다가 모든 걸 되 맡겨놓으면, 바로 입력이 된 데다가 다시 맡겨놓으면 입력이 없어지고 새 물로 대치해서 쓸 수 있는 그런 입력이 되죠.
질문: 스님, 두 번째로 그러면 제가 선원에 나오기 시작해 가지고 지금까지 그 느낀 점과 체험한 것을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지금 선원에 나오기 시작한 지가 약 5년여 되거든요. 스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주인공을 믿고 오로지 그 자리에다 맡기는 공부를 하다 보니까 아까 스님 법문에도 말씀하셨지만, 과거의 나쁜 습관으로 인해 가지고 처음에는 참 공부가 안 돼요. 왜냐하면 욕심도 나고, 미워하기도 하고, 시기하기도 하고, 질투도 나고, 그냥 음란한 생각도 들어가고, 어리석은 마음도 나오고 이래서 참 어려웠어요.
그런데 그래도 제 생각에는 이 공부는 제가 사람 몸 받았을 때 반드시 하고 가야 된다는 그 생각에 의해서 한번 꾸준히 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그러한 생각에서 벗어나고 그 생각이 점점점점 적어져요. 그러면서 그 마음이 상당히, 말하자면 편안한 상태가 이렇게 사실 왔거든요. 그러면서 제가 5년여 동안 이 선원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치과 치료를 위해서 치과에 몇 번을 갔지, 몸이 아프거나 그래가지고 병원이나 약국을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선원에 나오기 시작해서 한 7개월 정도 됐을 때 제 엉덩이에 종기가 밤알만 한 게 아마 10개 이상 났었습니다, 사실. 그래서 이것이 나를 공부시키는 기회구나 하고서 밀어붙였어요, 사실. ????주인공! 당신 몸이니까 당신이 낫게 해야지.???? 하고 사실 병원에도 안 가고, 그전에 같았으면 제가 아마 병원에 가서 마이신을 맞는다, 뭐 한다 난리를 쳤을 텐데 그 자리에다 맡겨놓고 그냥 밀어붙였어요. 그랬더니 이상하게 종기가 그렇게 크면서도 아픔이 없어요. 그런데 그렇게 한 십여 일을 지나더니 그냥 스스로 나았거든요. 그 뒤로는 뭐 몸이 좀 어디 좀 아프거나 하면 그냥 주인공 자리에다가 이렇게 맡기면 스스로 낫기 때문에 병원에 사실 갈 필요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 법이 좋다는 것을 저는 아주 누구보다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런데 습이 너무 많아 가지고 지금도 가끔 삼독심이, 미워하고 시기하고 욕심내고 이런 마음이 저도 모르게 제 마음자리를 비집고 들어와요. 그럴 때는 저 혼자 저 자신을 돌아보면서, 5년여 동안 네가 뭘 공부했느냐?' 이런 자책감도 가고 그러는데 그럴 때마다 제가 주인공 자리에다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야! 너 5년 전하고 지금하고 한번 비교를 해봐! 그때하고 너하고 지금 얼마나 다르냐? 그러면 네가 공부가 된 게 아니냐?' 이렇게 제가 제 자신에게 말하면서 제 몸을 밝게 끌고 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고 가는 게 큰스님이 가르쳐주신 그 올바른 법을 제가 누구 말대로 쉽게, 소고삐를 올바로 잡고 끌고 가는 것인지, 큰스님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큰스님: 올바르게 이끌어 가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발광을 하고 습성이 나올 때에 그거 왜 거슬립니까? 으응, 그러고 한번 비죽이 웃어보세요. ‘너….’ 그 어떠한 생각이 나오든지 거기서 나오는 줄 알면 그냥 웃어버릴 수가 있고 또 그렇게 '나는 그렇게 해도 속지 않아! 너 그 주인공에서 화(化)해서….' 화해서 변해서 모습을 바꿔 가지고 자꾸 진드기를 놓는 겁니다. 이게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자꾸 건이 생기죠. 그런 거를 가지고 거기에 끄달리면 어떡합니까? 끄달리면 속는 거지. 예를 들어서 팥죽 얘기를 가끔 하는데요. 팥죽 솥에 팥죽이 끓는데 방울방울이 따로따로 있습니까? 한솥의 죽방울이지. 그러니까 ‘그 죽방울은 그 죽 솥에서 나오는 거니까, 뭐 다른 데서 들어오는 것도 없고 나갈 것도 없으니까!’ 하는 생각을 하면 비죽이 웃음이 날 것 아닙니까? 그러니 걱정될 게 하나도 없죠, 뭐!
그러니까 어떠한 거든지…, 예를 들어서 아주 묘법이라는 것은 ‘내가 있기 때문에 모든 그런 게 닥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그놈이 일거일동 하는 거기 때문에 나는 걱정할 게 없어요. 즉 말하자면 모든 중생들을 커버하고, 모(두) 이끌어가지고 가는 어떠한 회사의 중역일 뿐이지, 그 회사의 건은 그 회사의 주인이 다 하는 거기 때문에 그 회사의 중역이 이끌어가는 소임을 맡았다고 그래서 전체 회사를 걱정할 필요는 없죠.
그런데 왜 걱정을 합니까? 나 할 일만 하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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