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법문-104_1997년 12월 7일 뿌리와 뿌리가 통하는 마음
본문
질문: 요즘 국가 경제가 매우 어렵다고 합니다. 적어도 일, 이년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고생을 해야 된다라고 얘길 하는데 저희 한마음선원 신도분들께서는 국가적 위기조차도 공부의 재료, 또는 수행의 방편으로 삼아서 열심히 정진하리라고 생각합니다마는 다시 한번 저희들 불자, 또는 국한시키면 한마음선원 신도들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되는지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십시오.
큰스님: 그거는…, 나는 말을 만들어서 할 줄을 모르거든요. 그것도 걱정할 게 없죠. 힘이 있는 사람이라면 걱정할 게 없어요. “이태를 간다, 오 년을 간다” 이래도 “빚을 어떻게 갚나.” 이러지마는 그거는 사람 자기가 하는 대로 자기를 알게 하고 깨우치게 하고 그러기 위해서 부처님은 이 세상에 모두 출현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하는 대로 살게끔 돼 있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부처님의 마음이 하나도 도움을 주지 않느냐 하면 그게 아니죠. 마음이 착하고 제대로 자기와 더불어 같이 위하는 사람, 남을 위해서 내가 희생하라고 그러는 게 아니라 더불어 같이 살 수 있는 사람의 마음이라면 이태 동안에 될 것 일 년에 되고, 일 년에 될 것 석 달에 되고, 이렇게도 될 수 있는 건데요, 뭐. 그러니까 그런 힘이 있는 사람이면 걱정을 할 게 없다 이런 소립니다. 그러니까 걱정이 되는 거를 어떻게 걱정을 안 하느냐, 이러는 것이 사람이 살아오면서, 모두 살아온 그 관습에 의해서 집착을 갖는 거지, 자기가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 같으면 그까짓 거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런 소리죠. 걱정할 게 하나도 없어요.
내가 어떤 때는 애들이 학교 다니다가 그냥 나가서 안 들어오고 그런다고 그러는데, 그럼 들어오게 되면 절대로 욕하고 때리고 또 말로 그냥 “죽을 놈 살릴 놈” 하고 그러지 말라고…. “어디 가서 자는데 괴롭지나 않았니.” “굶고 다니지는 않았니.” 이렇게 따뜻하게 말해주고…. 이 안으로 관(觀)해야, 뿌리가 뿌리끼리 통해야…, 뿌리는 뿌리끼리 통하는 거고 사람들은 말로 통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뿌리와 뿌리끼리 통하면 그건 마음이, 첫째 집으로 들어오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그냥 들어오는 거지, 마음이 나가고 싶으니까 나간 거거든요. 그러니까 말로 해서 될 일이 아니다라는 얘기죠.
그래 그걸 가르쳐서 얘길 해주면, 줄창 얘길 하죠. 그러니까 전화를 해서 ????들어왔어요, 스님. 감사합니다.” 그러고선 전화를 끊어요. 그때 또 한마디 해줍니다. ????이거 봐. 들어왔다고 마음 턱 놓지 말고 마음에다가 관하고 부드럽게 해주고 부드러운 행동해줘. 남편도 그렇고 자식도 그렇고 다 그런 거야. 남이 나를 잘해줄 거만 생각하지 말고 내가 다 줄 수 있는 거를 생각한다면 그건 행복한 사람이다." 라고요.
질문: 감사합니다. 큰스님, 오래오래 만수무강하시구요. 저도 저를 죽여서 진짜 나를 발견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큰스님: 우리가 지금, 생각을 한찰나 생각을 해보시오. 죽으러 가는 길로 지금 가고 있잖아요. 죽으러 가고 있다고! 고정된 게 하나도 없이 그냥 빙글빙글 돌아서 그냥 죽으러 가고 있는데 뭘 더 죽겠다 덜 죽겠다 하느냐고….
질문: 큰스님의 말씀이 제 가슴에 너무나 닿아서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또, “그래서 너는 죽은 거다.” 그래서 그렇게 생활을 하다 보니까 극락의 문턱까지는 온 거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그런데 도반들하고 서로 얘기를 하다 보니까요, ‘이 공부를 그냥 이 세상에서도 할 수 있는 거냐 아니면 산으로 들어가야 되느냐’ 이런 문제가 서로 대두가 돼 가지고 어떻게 하면 더 큰 법을 알 수가 있겠느냐. 그래서 큰스님이 그 전에 공부하실 때를 한번 여쭈어보고 싶습니다. 부산에 계시다가 거기서 식당 같은 것도 하시다 버리시고 산으로 들어가셨다고 했는데 왜 그렇게 하셨는지, 그게 궁금해서 나왔습니다.
큰스님: 나도 모르죠, 그것은. 나 아닌 나가 아마 자기 몸뚱이를 형성시켜 가지고 끌고 돌아다녔는지 그거는 모르죠. 그 과정도 부처님께서는 그 과정을 다, 나시기 이전에 다 하시고, 나셔서 부처님이 되셔서 또 그렇게 했어요. 그건 왜냐?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타의의 나를 위해서. 내 아님이 하나도 없는데, 알고 보니까 내 아님이 하나도 없는데 그들이 바로 나의 입장이니까 그냥 모두 가르치기 위해서 또 그 고행을 이차적으로 했다는 얘기죠.
그리고 지금 말씀이라고 하는 겁니까, 그게? 예를 들어서 그러면 그냥 아수라장이라고 듣기 싫고 고달프고 그래서 산으로 떠난다 한다면, 먹지도 말고 입지도 말고 따뜻하게 때지도 말고, 모든 거를 더불어 같이 사는 건데, 더불어 같이 사는 도리를 알아야 할 텐데 더불어 사는 도리를 다 내버리고 산으로 올라간다면 그럼, 아예 다 그냥 벗고 먹지 말고 살 테면 사세요.
그렇게 산으로 다니다 보니까요. 왜 산으로 다녔느냐 하는 거를 내 그때 생각을 하니까 물러서지 않는 패기, 두려움 없는 패기, 그리고 둘로 안 보는 패기! 모두를 기르기 위해서 그믐밤을 그냥 산에 어디든지 두려움 없이 다니게 됐더라 이거예요. 그래서 나는 내가 그렇게 걸어보니까, 길을 걸어보니까 길도 없고 도도 없고 아무것도 없더라. 그러니 이렇게 하는 것이 진짜 지금 정상이다 이러는 거죠, 지금. 꼭 그렇게 하려면 미쳤다는 소릴 한번 들어야 하니까, 미쳤다는 소리 안 듣고도 할 수 있는데 왜 그러냐 이거죠.
질문: 분명히 미쳤다 소리 안 듣고서도 해탈을 할 수가 있는 거죠?
큰스님: 할 수 있죠, 예.
질문: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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