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법문-110_1998년 8월 2일 너와 나, 모두를 살리는 공법
본문
질문자2(男): 우리가 생활과 불법이 따로 있지 않고 또 마음공부와 생활이 따로 있지 않는데 사실은 개인적인 뭐 가정일이나 또 일상적인 일은 마음공부 하기가 쉬운데요. 우리가 의식, 먹고 자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직업이 있어야 되는데요. 그 직업이라는 거는 좀, 혼자 하는 게 아니다 보니까 좀 문제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런 것인데요. 요즘 와서 직업이 갖는 가장 큰 특징이요, 경제의 논리와 경쟁의 논리가 있습니다. 경제의 논리는 조금 노력하고 많이 받아가는 게 첫째고요. 둘째는 남을 이기고 꼭 내가 이겨야 된다는 그런 뜻입니다. 고 두 가지를 잘해야 자기가 속해있는 직장에서도 잘하는 사람이고 자기가 하는 일도 잘하게 되는데, 사실 고거를 다 하다 보면 결국 우리가 하고자 하는 그 본래의 마음자리, 나와 내가 없고 너와 내가 없는, 그다음에 내가 나한테, 나 자신에 집착을 가지고 내가 성공하고자 하는 이런 마음이 없는 상태에서 마음에 놓으면 되겠지만 그렇게 하다 보니까 어떤 결과가 발생하느냐 하면요. 같은 직종에 있는 다른 분들이 볼 때 ‘저 사람이 아, 선원에 다니면서 직업에 대해서 좀 나태해졌다. 또는 자기 하는 일에 열심이 아니다.’ 이런 결과가 간혹 발생하는데 그거 어떻게 처리를 해야 되는지 말씀드립니다.
큰스님: 그건 마음이 지혜롭지 못해서 그렇죠. 그게 바깥으로 보입니까, 나태한 게. 허허허….
질문자2(男): 그게 아니구요. 모든 직장도 그렇지만 평가를 하게 됩니다. 일등 이등 삼등 이렇게 평가를 하게 되는데, 사실은 일등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가 노력한 것보다 많이 받아야 되고 또 기존에 일등 하는 사람을 반드시 누르고 자기가 일등이 되어야 되거든요. 근데 그런 이치하고….
큰스님: 그래요.
질문자2(男): 예.
큰스님: 그런데요, 그 일등을 하든 일등을 못 하든 그건 소관이 주인한테 있어요. 마음에 있단 말입니다. 아까 마음이 가니까 손이 갔지 마음이 안 가는데 어떻게 손이 갈 수 있느냐 그런 겁니다. 그러니까 댁은 하는 게 없어요. 그냥 마음이 가는 대로 그냥 악수만 하면 되니까. 그러니까 한 사이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누가 그럭하지 말라는 게 아니에요. 그렇게 하되 함이 없는 것이다 이거죠. 즉 말하자면 마음이 한 일이지 그 펜대를 쥔 손이 한 게 아니단 얘기죠.
질문자2(男): 그러면요, 차후에 이 공부를 열심히 하다 보면은 우리 선원 식구 중에서도 대통령도 나올 수 있고 또 위대한 어떤 인물도 나올 수 있어서, 물론 저는 우리 선원이 안양에 있고 우리 지원들이 좀 허름한 데 있는 것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선원이 때에 따라서는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또 나라의 대통령도 데려다가 공부도 같이 시키고, 이럴 수 있는 날이 와야 되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해서 말씀드렸습니다.
큰스님: 허허허, 그거는 사람들마다 다 자기 근기에 따라서 지금 학으로다가 경 이런 거를 많이 배우고, 학승들 또 학(學) 제자들이 많고 이렇게 하지 선(禪) 제자들은 드뭅니다. 이게 선방에 가도, 선방에 가서 ‘너만이 너가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어.’ 하고 관하는 게 아니구요. ‘이 뭣고? 이게 뭣고?’ 하고 또 인제 이런 관하는 사람이 있고 또 딴 간화선 하는 사람이 있고 이 여러 가지 있죠. 근데 우리가 볼 때 즉 말하자면 ‘선이다’ 그것도 이름이고, ‘자기 자신을 알라’ 하는 겁니다, 자기 자신을! 자신을 믿어라 이겁니다. 없어서 찾아라는 게 아니라 믿어라 이러는 겁니다, 본래 있으니까. 그러니까 자신은 체가 없습니다, 공정하게 합니다. 남을 해롭지 않게 공정하게, 자기도 밥줄 떨어지지 않게 공정하게 합니다. 그러니까 그 자기 주인한테다 맡겨놔라 이겁니다. 그걸 믿고, 공정하게 할 것을 믿고 말입니다.
그래서 즉 말하자면 그렇게 공부하는 사람 하나로 인해서 그 회사가 살 수 있는 겁니다. 그 사람 하나로 인해서, 그 요량 있게 잘하면은 하나로 인해서 다 살 수 있는 겁니다. 그래 적자만 나던 회사가 그 사람 하나가 거기 들어가고 나서 그게 흑자가 돼 버리니까, 흑자가 되니까 또 적자 나는 회사로 보내서, 또 그거 흑자가 나니까 또 적자 나는 회사로 또 보내는 거죠. 그러니까 그렇게 보물단지가 돼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는 소립니다. 그러니까 자기만 살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이게. 그래서 공법입니다. 이게 보이질, 여러분들 눈에는 보이지 않고 생각에서도 지혜롭게 생각이 안 나고 하니까 그렇지, 이 공부를 그래서 그냥 열심히, 그걸 믿고, 젖줄을 믿고 그것만 쥐고 ‘너만이 먹여 살릴 수가 있고, 너만이 해결할 수가 있고, 너만이….’ 모든 걸 거기다, 모든 걸 일거수일투족을 다 놓을 때 비로소…, 우리가 악수하는 것만 봐도 알잖아요. 손 하나가 마음에 따라서 이게 움죽거린다는 거를 알게 되면 보는 거, 듣는 거, 몸 움죽거리는 거 다 마음에 따라서 움죽거리는 게 아닙니까? 그러니까 심부름을 하되 그것은 보이지 않는 무(無)에서 이렇게 공정하게 이렇게 해나가야 되지 않는가.
이게 말로는 표현하기가 참, 내가 어려운 말을 하는 겁니다. 이거 속은 다 빼놓고 이렇게 겉더깽이만 얘기를 하니까 이 실천은 보여줄 수 없고 이렇게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실천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스스로서 알게 돼 있는 거니까 난 지금 겉더깽이만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손짓 발짓 해가면서. 허허허…. 그러니까 그런 것도 이걸 산산조각 내서 따지지 말고 1, 2등을 따지지 말고 그냥 ‘1, 2등을 하는 것도, 모두 포함해서 살리는 것도, 나를 밥줄을 떨어뜨리는 것도 떨어뜨리지 않는 것도 너한테 달려있어. 이건 흑자가 나야 살 테니까.’ 하고선 그냥 몰입을 해서 들어가면은 그건 누구든지 이 생활 속에서 하는 거기 때문에 어렵지 않다고 봅니다. 뭐 틀고 앉아서 누가 하래나요? 일할 때나 변소에 갈 때나 또는 길을 걸을 때나 앉았을 때나 섰을 때나 이렇게 그대로 하기 때문에 와선이다, 입선이다, 행선이다, 또는 좌선이다 하는 게 따로 없다는 얘기죠, 그러니까. 그게 전부 참선이 되는 거니까요.
질문자2(男): 예, 잘 알았습니다. 한 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저도 스님 친견을 많이 한 편에 속하는데요. 스님이 늘 말씀하시기를 찾아오는 분들에 대해서 그릇만큼 대해 주신다고 그러시는데요. 제가 옆에서 제삼자 입장에서 바라볼 때는 그릇의 크기보다도 어떤 그릇은 작은 데도 그릇을 좀 이뻐하는 그릇이 있고, 어떤 그릇은 좀 똑같은 그릇인데도 좀 찬물 담아주시고 그러는 그릇이 있는데 그거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 좀 궁금합니다.
큰스님: 그것은요, 댁의 마음이 이만하대면 내 마음도 이만하고, 똑같이 그렇습니다. 댁의 마음이 바다와 같다면 나도 바다와 같은 거다. 그러니까 이게 고정되게 있지 않다. 여러분들의 마음에 따라서 크고 작은 거지 누구가 크게 해주고 작게 해주는 게 아니다라는 얘기죠. 그러니까 즉 말하자면 여러분들이 이런 마음을 내면은 아, 그냥 왜 이렇게 마음은 체가 없으니까 이게 사람이 사는 도리에서 이게 ‘아, 이건 넘어 뛸 수가 없어.’ 하는 관습 있지 않습니까? 그 관습을 뛰어넘으라는 얘기죠. 관습은 없다. 즉 말하자면 습도 없고 번뇌도 없다, 붙을 자리가 없다, 체가 없다. 그냥 점프해서 뛰어넘어도 그거는 뛰어넘는 사이가 없다. 이 사람은 요렇게 요 계단이 딱딱 져 있지만, 계단이 있는데 올라오셨죠. 계단이 딱딱 있어서 딛고 올라와야 올라오죠. 그런데 몸이 없는, 체가 없는 마음은 계단을 점프해서 올라와도 올라오죠. 바다를 건너가려도 바다를 건너가죠. 바닷속을 들여다보려도 들여다보죠. 은산 철벽을 뚫고 나가려도 뚫고 나가죠. 이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묘하고 광대한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음을, 모든 걸 몰입을 해서 거기다 한데, 한데 항상 같이 놔야 된다는 얘기죠. 놔서 그것이 완전히 그게 보림이 됐을 때 이 모든 중생들도 다 화해서 다, 즉 말하자면 공생이 되는 거죠. 공생 공체가 되는 거예요. 우리가 공생 공심 공체 공용 공식이 되는 거예요, 전부. 그러니까 생각해 보세요. 마음으로는 어디는 못 가겠어요? 가고 싶은데 다 가지. 근데 여러분들이 그 이론은 알았는데 진짜 보면은 보이질 않는다는 얘깁니다. 그러니까 여길 통해야 보이는데 여길 통하지 못하니까 못 보는 거 아닙니까? 한군데밖엔 없어요. 이승 저승 볼 수 있고 멀고 가까운 데 없이 볼 수 있는 것은…, 그것도 도는 아니지만 도와 겸해서 이게 돌아가는 거니까요. 이것이 아니다 할 수도 없고 기다 할 수도 없는 거죠. 그래서 오신통도 누진통으로 합해야 이게 도다 이런 말이죠.
질문자2(男): 잘 알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건방진 얘기지만요, 스님의 일등 제자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큰스님: 그래요. 하려고 하기만 한다면 왜 못하겠소, 응? 어차피 탤런트들인데 어차피 끝나면, 막 내리면 그뿐인데 그까짓 것 뭐, 던져버리지 그거 뭐, 뭐 때문에 그렇게 그냥 달랑달랑하우,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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