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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법문-134_1992년 5월 3일 주인이면서 공(空)한 나의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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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정신계의 공부를 하시려고 노력하시는 분들에게 너무나 감개무량합니다. 우린 필연적으로 해야 할 문제지마는 모두 딴사람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잘 아시면서 이렇게 하시려고 애쓰는 도리. 우리가 인간으로 살면서 혼자 못 산다는 건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시죠모두가 인연에 따라서, 그것이 바로 망하기도 하고 흥하기도 하고 발전도 하고 창조도 하고 창조력을 기르기도 하고 이렇게 나가죠. 내가 왜 꼬집어서 이런 말만 하느냐 하면 근본, 최초의 근본이 바로 그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주고 받고 주고 받고 이렇게 돌아가는 것이 아마 법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런데 그 만법(萬法), 그 만법을 들이고 내는 데는 각자 여러분들이 없었다면 무효입니다. 각자 여러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인연에 따라서, 그 소치에 의해서 필연적으로 돌아가는 그 자체가 바로 진리라고도 하죠. 그 진리가 끝 간 데 없이 나로 인해서 돌아갑니다. 각자 여러분들 각자로 인해서 돌아갑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일체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느니라. 그런데 그 하나는 어딨는고?하고 물었다 하면 여러분들은 어딨다고 보겠습니까? 여러분 각자 여러분들의 마음에 있다고 하시겠죠?

 

그런데 여러분들 각자 마음에 있다는 조차도 모르는 분들이 있습니다. 내 마음으로 인해서 발전도 하고 여러 과목도 가져올 수 있고 또는 여러 과목의 발전도 할 수 있고. 이 생활이 그대로 과학입니다. 그러고 생활 자체가 그대로 참선입니다. 모든 우주의 근본, 모든 것을 갖다 끌어내려서 지금 얘기하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가 아니었더라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여튼! 만법의 근원은 어딨느냐? 내 마음에 있다. 그 마음, 참선은 어떤 것이 참선인가? 생활 참선! 여러 마디 거론되는 말이 쑥 빠지고 지금 얘깁니다. 그 근원이 어딨는가? 그러면 근원에서 들이고 내는 이 생활 속에서 '나의 주인공이다하는 것은 주인, 주인(主人)은 여러분들의 중심입니다. ()은 여러분들이 활용할 때에 돌아가는 그 자체입니다. 찰나찰나로 변해서 돌아가는 거요. 그렇기 때문에 주인, 공입니다. 그래서 그 주인공에다 모든 것을 되놓으라. 그것은 되놓고 침착하게 관찰하라. 그냥 일하면서도 앉았으면서도 섰으면서도 누워 있으면서도 항상 하는 게 참선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그러면서 진짜로 돌아가는 것은, 그렇게 놓고 안 되는 거는 ", 이것이 슬기롭게 돌아가게 하는 것도 여기다.하고 놨을 때에 그게 돌려놓는 겁니다. 됐을 땐 감사하게 놓고, 그러고 또는 진짜 나를, 진실한 나를 구할 때  "참나가 있다는 증명도 거기서만이 해줄 수 있다.라는 거, 그렇게 놓을 때 바로 관찰하면서 관()해 본다 그러죠? ? 관해 보면서 그거를 '관찰이라고 합시다. 관찰! 그리고서 또 실험하면서, 체험하면서 이렇게 진짜로 무조건 믿고 물러서지 않는 도리에 놓고 그렇게 체험하고 돌아가는 것이, 그것이 바로 '참선입니다. 틀고 앉았는 것이 참선이 아닙니다. 즉 관찰하면서 지켜보면서 실험하면서 체험하는 것이 진짜 요만한 것에서부터 큰 것까지, 큰 것에서부터 조그만 것까지 내 앞에 용도에 따라 닥치는 것대로 놓고 관찰하는 겁니다. 그게 참선입니다. 내가 느끼지 못하고 무조건 그렇게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이 한마음으로 돌아가는 게, 이게 뭣고?" 하고 열네 날 있어도 뭐는 뭡니까? 그냥 뭐지! 안 그렇습니까? 그래서 표현을, 전에 선지식들께서 수박을 놓고 아무리 이게 뭐냐고 돌려가면서 보고 아무리 봐도 맛은 나오지 못한다 이겁니다. 조그만 거든지 큰 거든지 내가 실험을 통해서 관찰하고 내가 체험을 해봐야 그 맛을 알 수 있다는 얘깁니다. 그것이 참선입니다. 앉으나 서나 누우나 일하나 요거를 와선, 입선, 좌선, 행선 이럽니다. 그것을 네 가지가 다 한꺼번에 돌아가는 것이 바로 생활입니다. 생활 참선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생활, 이 생활이 그대로 참선이자 이 세상 돌아가는 이 일체 만물만생이 다 공안이 될 수 있고 이 만물만생이 살고 있는 이 자체가 바로 도량이 될 수 있고 내 앉은 자리가 될 수 있다 이겁니다.

 

어디로 찾아다닌다 또는 내가 이거 모르는 게 있으면 경전을 들춰본다 이렇게 해선 안 됩니다. 모르든 알든 못났든 잘났든, 내가 길을 가다가 엎드러졌으면 길을 짚고 일어서야죠. 땅을 짚고 일어나야 됩니다. 그래야 다리 절름뱅이가 올바른 사람이 되는 거죠, 정상적인 사람이. 우리는 50%의 무()의 세계를 모르기 때문에 절름발입니다. 그래서 다리 한 짝을 마저 일으켜 세우는 도리를 공부하는 겁니다, 지금. 그러고 눈 애꾸입니다. 한 짝이 눈이 멀었습니다. 그래서 한 짝을 마저 띄우기 위해서 노력하는 겁니다, 지금. 그러니까 모든 것을 거기서만이, 이 마음자리에서만이 일체 만법이, 전체가 나가고 들고 나가고 들고 하는 거니까요. 그것을 지켜 관찰하면서 실험하면서 체험을 안 한다면 그건 참선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내 몸에서나, 내 몸으로나 가정으로써, 모든 것을 습득을 해서 모든 관습을 모두 놓고 실험을 하는 겁니다. 하나 하나. 알고 보면 상당히 쉬운 일인데도 자기를 자기가 못 믿기 때문에 문제는 일어나는 겁니다. 자기가 자기를 못 믿고 뭐가 그렇게 알아야 하고 따져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잘 배웠고 잘났고, 똑똑하고 못났고, 못하고 못 배웠고 이런 거를 몽땅 다 놓는 겁니다, 그래서. 놓는 거라고 하니까 놓는 거에서 또 걸리지 마십시오. 모든 거는 아, 일단 잘난 것도 바로 내 육체를 나라고 하거나, 내가 했다고 하거나, 내가 가졌다고 하거나 모든 걸 나라고 일으켜 세운다면, 모두 둘로 보이기 때문에, 상대로 보이기 때문에 잘했다 못했다가 연발로 꼬리를, 꼬리를, 꼬리로 물고 오는 겁니다. 그리고 업이 녹질 않아요. 자꾸 업은 지어서 입력이 돼서, 과거에 입력된 것이 살살 나오면서 이제 미래에 입력되는 거, 지금 입력되는 거는 미래에 가져올 것을 미리 그렇게 저장을 하는 거죠. 저장 아닌 저장이죠. 이거는 여러분들이 요걸 안 하려고, 그 업을 안 지려고 아무리 애써도 이건 자동적으로 되는 거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여튼 여러분들이 각자 여러분을 진짜로, 그래서 육신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신은 육을 끌고다닌다는 뜻입니다. 그래 내 신을 두고 남의 신을 찾고 믿어야 하겠습니까? 자신(自神)을 두고! 자신은 정신계에 속하고, 육은 현실계에 속하는 겁니다. 항상 육은 끌려다닙니다, 그놈의 마음의 주인한테. 그러니 잘못 돌아가는 거는 거기다 되놓고 잘 돌아가게 해서, 서로가 누가 높고 얕고 없이 상통하면서 이것이 같이 작용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본래는 같이 작용을 하는데 지금 유심에서는 도저히 그게 정신계와 물질계가 한데 작용을 하는 걸 모르기 때문에, 그걸 새삼스럽게 말하는 건 아니지만 현재 그렇게 가고 있으니 그걸 의심치 말고 믿어라.

 

 

이게 뭣고? 이것이 이렇게 되는 거지, 저렇게 되는 거지! 이게 틀리지, 이게 옳지!이런다면은 자기가 자길 어떻게 믿고 자기가 자길 어떻게 이끌어갑니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래도 따져야 하는 마음이 생기십니까? 자기한테다 자기가 따지는 겁니다. 아무리 따져봤자야. 그러니 어떻게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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