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법문-135_1992년 5월 3일 모두 한솥에서 나오는 팥죽방울
본문
질문: 항시 둘 아닌 도리를 되새기고자 애쓰면서 무언의 대화를 해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는 중에 특히 '나'라는 생각이 불현듯 고개를 들고 일어나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러할 때면 그것도 내 속에서 나온 습인 줄 알고 슬며시 놓아버립니다. 그렇게 해서 비교적 편안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습니다만 어떤 때는 격한 감정이 솟구치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자신도 모르게 저 잘난 소리를 마구 늘어놓다가 한순간에 나도 모르게 '아이쿠!'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스님께서는 늘 되입력하는 도리를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만 이렇게 먼저 입력된 것이 잘 지워지지 않는 경우란, 말하자면 습이 워낙 중한 까닭인지요? 아니면 되입력하는 마음의 힘이 약한 때문인지요? 놓고 또 놓는다고 하면서 되나오고 되나오니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큰스님: 그건 입력이 안 됐기 때문에 되나오고 그렇죠. 그것이 말입니다, 자기한테 자기가 자꾸 따지는 버릇을 그걸 갖는다면 습입니다, 그게. 자기한테만 따지는 게 아니라 상대방한테도 따지죠, 일일이. 그, 왜냐하면요, 여러분들 몸속에 '과거는 지나갔으니까 없다.' 합니다. 그런데 자기가 다 짊어지고 나왔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과거는 없다.' 합니다. 그러면 지금 이 몸속에 전부, 전부 들어있습니다, 지금. 들어있는데 말입니다. 거기서 솔솔, 그저 이때 한 거는 이때 나오고, 저 때 한 거는 저 때 나오고 아주 그냥 입력된 대로 순서대로 착착 나옵니다. 이거 거짓말 아닙니다. 착착 나오는데 그 나오는 것은 어디서…, 이 의식들이 수가 없습니다. 그 의식들이 입력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이게 자꾸자꾸 그저 거기서 나오는 대로 나오지, 그것만 알지 잘되고 잘못되는 거를 모르는 중생들입니다, 이게 업식이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거기서 나오는 대로 이게 모두 그놈도 거기서 나온 거 그놈도 거기서 나온 거 그놈도 거기서 나온 거….
옛날에 어느 수좌가 동짓날 팥죽을 큰 솥에다 쑤는데 팥죽이 부글부글 끓어서 팥죽 방울이 수없이 나오거든요? 수없이 나오니까 퍼뜩 그 생각을 한 겁니다. '아, 우리 몸뚱이 속에 있는 팥죽 방울이 이렇게 나오는구나. 그러니 여기에 속았다가는 안 되는구나. 방울대로 따로따로 있는 줄 알고 했는데 아이구, 한 팥죽 솥에서 나오는구나!' 이제 아시겠죠? 그래서 한 팥죽 솥에서 방울이 나오는 거지 팥죽 솥이 따로 있어서 방울이 나오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요것도 문수! 요것도….' 자기 법이란 얘기죠. 법신(法身)! '요것도 법신! 요것도 법신!' 하고는 주걱으로 그저 때렸단 말입니다. '이것도 문수! 저것도 문수!' 그저 때렸단 말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스스로 익는다면, 우리가 공부가 스스로 익는다면, 벌써 팥죽은 다 익었으니까 열기가 더 오르지도 않고 더 내리지도 않고 아주 평상시에 가듯이 뜨듯하고 따듯하기만 하게 가거든요. 그러니까 팥죽 방울이 올라오지 않죠. 모두가 하나가 돼버렸으니까, 그냥 모두가 팥죽이 돼버렸으니까 말입니다.
그렇듯이 이것이 모든 것을 거기서 어떠한 불따구가 나오든지, 또 자기가 누가 되게끔 또 생각이 나오든지, 또 집안 식구들한테 그냥 짜증이 나든지, 또 자식이 잘못해서 속이 상하든지, 이런 거든지, 모든 것이 거기다가, ‘그것도 거기서 나오는 거’ ‘그것도 거기서 나오는 거’ 모든 거, 자식의 일이든지 뭐든지 다 거기다가 맡겨놓으셔야 됩니다. 그리고 만약에 그거를 그렇게 나오는 걸 거기다가 맡겨놓을 때, 동시에 생각에 ????흥, 이렇게 나오는 거라면 잘 돌아서 나오게도 할 수 있잖어!???? 이게 아주 필연적으로 따라다니지 않습니까? '이렇게 안 되는 일도 거기서 나오는 거라면 되게 할 수 있는 일도 거기서 나올 수 있잖아?' 하고 돌려놓는 겁니다.
속도 이렇게 불따구니가 날 때 '아니, 이렇게 불이 일어나게끔 나올 때는 불을 가라앉힐 수도 있는 것이 바로 거기 아닌가!' 이럴 때는 아주, 아주 선선하고 이 마음이 곧바로 화해가지고는 그냥 아주 좋게 나옵니다. 즐겁게 나옵니다. 웃음도 깔깔 대고 웃다가 '아이고, 이거 안됐잖어?' 하는 생각을 하면 웃음이 '뚝' 멎죠? 그렇게만 하신다면 모든 게 아주 더함도 덜함도 없는 잘 익은 팥죽이 돼서 맛있게 맛을 볼 것입니다.
질문: 고맙습니다. 여기 모이신 법형제 형제분의 가슴에 좋은 말씀이 하나하나가 전부 약이 되고 덕이 되고 모든 공부하는 데….
큰스님: 그냥, 공덕이라고만 하세요.
질문: 예, 공덕이 돼가지고 모든 공부하는 데 도움이 크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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