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법문_163-1997년 7월 6일 전체에 회향을 하려면
본문
질문: 스님, 감사합니다. 항상 마음을 밝혀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애쓰시는 스님 모습을 보면서 항상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저는 스님께 회향법에 대해서 질문드릴까 합니다. 저희가 어느 행위를 했을 때나 어느 일이 닥쳤을 때 분명히, 분명히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러는데 저는 부처님께 회향하고 또 큰스님께 회향하고 모든 스님께 회향한다고 이렇게 항상 마음을 냈었거든요. 근데 뭔가 분명히 아쉬웠던 것이 남아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왜 그럴까, 그랬더니 진짜 본연의 자기 자신한테는 회향하지 않고 일단 부처님과 스님한테 생각과 말로만 회향했던 것이구나. 왜 그러냐 하면 제 자신이 있기 때문에 모든 일들은 발생했던 것이고 모든 일들은 성사됐던 것인데 내 진짜 자신한테는 회향할 줄 모르고 더불어서 이렇게 부처님과 스님께 생각과 말로만 했다는 생각이 들기에 어느 땐가 진정으로 ‘너 자신이 행한 모든 일들은 너로 인해서 벌어졌던 것이고 너로 인해서 발생됐던 것이니까 너 자신에 스스로 진정으로 회향하면 모든 것이 다 하나로 돌아갈 텐데’ 이런 생각이 들기에 감히 스님께 질문드립니다.
큰스님: 아유, 잘 생각했어요. 정말이지…, 보세요. 자기가 똥 누고 자기가 밑을 씻고 “아이구, 시원하다.” 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스님이 거기 왜 끼어들어 갑니까, 응? 그러니까 모두 배우는 사람들이 “부처님 부처님” 하다 보니까 자기는 그냥 망쳐지고 말았죠. 부처님이 대신 똥 눠 줘요? 회향이란 거 다른 게 아니에요. 조그맣든 크든 내가 똥 누고 밑을 씻는 것도, 깨끗하게 씻는 것도 회향이에요. 밥을 먹고 소화가 잘된 것도 회향이에요. 크고 작은 게 따로 없어요. 일을 하고 아주 잘 정돈하고, 줄 거 주고 빚진 거 없이, 고마움을 그저 고맙다고 해서 끝을 맺고 이러는 게 바로 회향이죠. 그래서 부모에게 제사를 지내고도 그 은혜를 바깥으로 돌릴 게 아니라 그 은혜를 갚게, 그렇게 하게 해준 주인공한테 감사하고 주인공에, 내 주인공에 모두, 체가 없는 영령의 조상들이니까 자기 주인공에 한자리를 하고 있는 거예요. 종자가 이 허공 안에 꽉 찼다 하더라도 바로 한 종자지 두 종자가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한 군데다가 하면 다 하게 되는 거죠. 지금 스님네들을 불렀는데 댁의 주인공에다 하면 내 주인공도 둘이 아닌 까닭에 전부 회향이 되는 거죠. 스님은 빼놓고 회향한 게 아니에요. 거기에다가 더불어 일체제불까지요.
질문: 진정으로 제 자신께 회향을 하니까 더불어서 스님께 진정한 존경심이 생기기에 제가 이렇게 질문드렸습니다. 다시 한번 또 질문드리겠습니다. 아까 스님께서 설산에 대해서 설명해 주신 그 마음 법을 저희가 이미 따르지 못하기에 예를 들어서 같이 공부하는 도반이 됐든 동료가 됐든 간에 그분들이 병원에 입원하셨다든지 예를 들어서 집에서 수행하고 계실 때 저희는 굳이 찾아가 가지고 뭐, 격려할 필요가 있냐 이런 생각을 간혹 갖고 있을 때가 있거든요. 전에는 한 사람의 장본인인 저도 그랬었으니까요. 왜 그러냐 하면 굳이 쫓아가면서까지 이렇게 할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자리에 앉아서 마음으로 돌려주면 되는데, 저도 그랬었거든요. 그랬는데 지금은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왜 그러냐 하면 그러다 보니까 정이 메말라지고 우리가 갈 수 없을 때는 불가피하게 그렇게 해야 되지만 찾아갈 수 있다면 정도 주고 정담도 나누고 마음도 서로 나누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만일 꼭 굳이, 스스로 일어나야지 꼭 쫓아가 가지고 그렇게까지 해야 되나 이런 분분한 생각이 오고 가기에 스님께 질문 또 드립니다.
큰스님: 그런데요, 그렇기에 물질세계와 정신세계가 같이 저울에 달아도 기울도 틀도 않아야 된다 이런 말이죠. 그러면 내가 가야 그쪽도 댁이 온 줄 알죠?
온 줄 아는 그, 같이 만남이 전깃줄과 전깃줄이 같이 붙어서 불이 들어오게 돼 있거든요. 그쪽에서 도통을 해서 드러누워 있다면 왜 댁이 가고 오고 해야 돼요? 그러니까 서로 만나야 마음이 붙게 돼 있거든요. 그러니까 물질세계도 버려서 되는 게 아니고, 즉 말하자면 육신을 버리면 공부 못해요. 육신도 소중하고 정신계로 인해서 육신이 생긴 거니깐 둘이 아니다. 이건 콤비다. 정신계로 인해서 육신이 형성됐고 형성된 자체를 끌고 다니는 정신계의 주인공이 바로 콤비가 돼서 돌아가는 그 이치를 아시면 그대로 그냥, 그대로 아주 왔다예요. 속담의 말로 말이에요.
그리고 사람들이 부처님을 모셔놨으니까 ‘아이구, 부처님도 나보다 더 귀중하고 나보다 더 위대하지.’ 이러지마는요, 저 부처님을 저렇게 겉에다가 내놓고 다니는 게 아니라 우리는 마음 속에다가 아주 모시고 다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가죽 속에다 넣고 다니지 왜 바깥으로 들고 다니느냐고 원효대사가 말했듯이, 그렇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배우는 사람들이 아무것도 없으면 배우질 못하니까 방편으로다가 해서 이끌어가면서 마음을 깨우쳐주려고 했던 거죠. 그리고 자기를, 절하는 데 겸손하게 만들기 위한 방편이기도 해요. 여러 가지가지요.
질문: 감사합니다.
큰스님: 지금 보니까 모두 공부들 잘하고 계신데요. 정말 첨단의 원리까지 아시겠어요,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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