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법문_181-1992년 11월 22일 조건 없는 사랑이 자비
본문
질문: 스님,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제가 생각하는 진정한 사랑이란 건 자비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자비를 실천하기가 무척이나 힘들고 현대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다 자기애, 즉 이기적인 사랑입니다. 이기적 사랑이든 자기애적 사랑이든 다 사랑이란 말로 통하고 있고,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해서 매도할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큰스님: 자식이 물에 빠질 때 부모가 그 자식을 위해서 뛰어드는 그런 마음이라야 돼. 조건 없는 사랑! 즉 말하자면 아내가 남편을 사랑한다든가 남편이 아내를 사랑한다든가, 사랑도 가지가지 여러 가지 사랑이 있지? 부부의 사랑, 형제의 사랑 또는 부모 자식지간의 사랑, 사랑도 사랑, 사랑, 사랑도 많지, 왜? 그런데 이런 말이 있지. 남편이 싫다고 한다면 사랑을 하걸랑은 놔 줘라. 이런 말 있지? 또 여자가 싫다 한다 하더라도 조건을 잘 만들어서, 싫다 하는 걸 붙들고 생전 살아봤자야 그 타령이니까 사랑하면 놔 줘라. 이런 말도 있지. 그러나 그러한 것이 꼭 자비만은 아니야. 이 사랑, 사랑이라고 한다면 아까 말마따나 이기적인 사랑이요, 조건 있는 사랑이야, 모두가.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조건 없는 사랑을 자비라고 그랬거든. 자비라는 것은 아무나 쓸 수가 없어. 말이 중요한 게 아니라 행이 중요해. 예를 들어서 누가 차비가 없다고 그러는데 그냥 조건 없이 차비를 주는 게 자비야. 또 셋방을 얻을 돈이 없어 거리로 나앉았을 때 누가 조건 없이 줬을 때 그게 자비야. 조건 있는 거는 자비가 못돼. 그런 말로만 ‘사랑, 사랑’ 하지, 진짜 사랑들을 몰라서 그래. 진짜 사랑이라는 것은 자비를 말하지,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거. 그리고 지금 어떤 부모들은 이상스런 부모들도 또 많더군 그래. 물론 굴림을 어떻게, 마음을 어떻게 돌리질 못해서 자식들한테 해가 가게끔 하는 수도 많지. 그런데 몰라서 그렇지 그것이 자식을 망하게 하려고 그러는 건 아니지.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그 마음이나, 부처님들이 모두 뭇 중생들을 나 아님이 없다고 사랑하는 거나 똑같이 작고 크고 이것뿐이지 아마 그것이 자비일 거야.
그런데 부모로 살고, 이렇게 부모자식지간에 사는 거는 그거는 진짜 자비가 못돼, 아무리 자식을 사랑한대도. 자식을 사랑하되 조건 있는 것을 만날 붙이거든. 뭘 바라고, 뭘 기대고 ‘저놈이 잘돼야 내가 저거 할 텐데’ 하고 이렇게 기대는 거기 때문에 자비가 못 되지. 부처님께서는 하다못해 기어가는 벌레라도 나 아님이 없다고 그랬어. 달마대사가 구렁이 속에 들어가서 길을 비켜서 딴 데다 갖다 놓고 자기가 나왔다는 얘기가 있지?
그러니까 이 몸뚱이 속의 모든 중생들을 천백억화신으로 화하게 만들어서, 즉 말하자면 이 공부가 그 공부야. 내 마음을 한마음으로 따라 줄 수 있는 그런 천백억화신으로 화해서 모든, 벌레가 울든 짐승이 울든 어떠한 생명들이 다 용도에 따라서 청하면 청하는 대로 응해 주셔. 그러니까 응신이 돼서, 천백억화신이라고 해도 천백억화신으로만이 그 숫자가 돼 있는 게 아니야. 천백억이라면 숫자 없는 숫자를 말하는 거지. 그러니까 그 한생각에서 수만이 일어나기도 하고, 생기기도 하고, 작용도 하고 그러다가 하나로 합쳐지기도 해.
이 모두 청년들이니까 다 잘 알겠지만 사랑이라는 게 그렇게 내 아님이 없이, 내 아픔 아님이 없이, 내 자리 아님이 없이, 내가 높다는 생각도 없이, 모두가 나 아님이 없다고 생각을 했을 때 진짜 자비야. 그것은 아무나 할 수가 없잖아? 이 도리를 공부하기 이전에는 할 수가 없어. 그건 왜냐? 수억 겁 광년으로 거치면서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 도리를, 하나로 들고나는 그 도리를 알고…. 이게 알려면 모든 게 복잡하니까 모든 거를, 그 자동적인 컴퓨터에다가 모든 거를 놔라. 거기다 맡겨 놓고 거기서만이 진행되는 걸 지켜봐라. 그리고 그렇게 되면 실험이 되고 체험을 하게 된다. 체험을 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참선의 직속 길이다 이거야.
그러니까 사랑이라는 것은 진짜 우리가 말로 “사랑, 사랑” 하는 이름이 사랑이 아니라, 진짜 자비를 행하는 그런 사랑이 진짜 사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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