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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법문_191-1996년 9월 1일 받은 사이도 준 사이도 없는 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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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믿음이 약한 탓인지 자꾸 의심이 생겨서 자성본래불을 외우면서 주인공을 관해 보았습니다. 마음이 적연해지면서 모든 삼세가 내 한생각 가운데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또 일체 만물이 마음을 근거해서 가상으로 존재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하루종일 마음이 우뚝 서서 아주 당당하다는 기분이 듭니다. 염불하면서 관하는 것도 한 가지 방편이 될 수 있는지요?


큰스님: 그렇게 될 수는 있죠. 허나 바깥으로 끄달리지만 않는다면 그렇게 될 수는 있으나 버스 지나간 뒤에 버스를 타려고 하는 것과 같은 겁니다. 왜냐하면 아까 얘기했듯이, 옛날에 자기 자신이 “주인공!” 하고 불렀습니다. 불렀을 때에 “너 아침 공양했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을 때 자신이 또 되대답을 했습니다. “식기 닦았습니다.” 하구요. 그러니 그게 무슨 말이겠습니까? 우리가 한 발 떼어놓고 한 발 없어졌는데, 한 발 떼어놓고서 한 발이 없어졌는데 “밥을 먹었느냐?” 하니까 “벌써 식기 닦았습니다.” 이거예요. 벌써 한 발 떼어놓고…. 

 

그런데 염불하는 그, 그거를 염불하는 사람은 그걸 길다고 염불을 한다고 생각을 하고 하는 거거든요. 염불을 한다고 생각을 안 한다면은 물론 짧고 길고가 시간이 초월이 돼서 없다고 하지만, 염불을 해서라도 그것을 할 양으로 애를 쓰는 사람이라면 그건 더디다 이거죠. 벌써 밥을 먹고 식기를 닦았는데, 식기를 닦은 뒤에 밥을 먹었느냐 하는 격이니 그렇게, 그러니까 버스 타고 간 뒤에 버스 찾는 격이다 이런 문제죠. 


질문: 감사합니다. 질문 또 올리겠습니다. 미국의 한 기독교 종파에서 실험해 본 결과로 순수 채식만 하는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전체 인구의 평균 수명보다 10년가량 더 길어진다고 하였습니다. 건강을 생각해서 육식을 허용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 아닌지요. 철저히 채식을 하는 종교 집단도 많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한 말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큰스님: 그것이 틀리다고는 안 합니다. 두 가지 요건이 있습니다. 옛날에 선지식들이 길을 걸을 때 발 밑에서 벌레가 하나 죽어도 그냥 환생한다고 했습니다. 그 뜻을 아시겠습니까? 발밑에서 벌레가 죽을까 봐, 그래서 그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은 짚신에다가 방울을 안 달아도 됐고, 자격이 없는 사람은 짚신에다가 방울을 달았다 합니다. “이 방울 소리를 듣고 비켜나가라. 비켜나지 않는다면 살생이 되느니라.”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자격 있는 사람은 그냥 걸었다는 얘깁니다, 주장자만 들고 휘휘 헤치면서. 그거는 왜냐? 

 

두 가지 여건이 있죠. 한 가지는 자기만 알고 어떡하든지 그 제도를 깨지 않고 계율을 지키려고 하는 그런 제도고, 짐승도 둘이 아닐지언댄 그 자격 있는 사람이  그 한 점만 먹어줘도, 발가락 밑에서 한 번 눌려서 죽어도 환생이 되는데 그 한 점을 집어 먹어준다면 그 소의 모습은 간 곳이 없어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되기를 빌고 빌고 천년이 가도 그것을, 그때를 바라고 오는 짐승이 얼마나 많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건 어떻게 생각합니까? 

 

질문: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큰스님: 어떻게…, 채소도 생명이 있는 겁니다. 우리가 채소나 이런 거를 볼 때도 말을 합니다. ‘나는 배가 고파.’ 그것도 옛날 얘깁니다마는 배가 고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물을 퍼다가 줬습니다. 물을 퍼다가 주니까 얼마 안 있더니 그냥 이렇게 살아납디다. 그런데 하물며 어떻게 동물만 생명이 있고 식물은 생명이 없다는 겁니까? 식물을 먹었다고…. 아니, 식물을 먹었다고 해서 그게 계율이 깨지지를 않고, 동물을 먹으면은 그 계율이 깨진다고 해선 안 됩니다. 그거는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동물을, 동물로 보이면은 못 먹는 겁니다. 동물이 동물로 보이면 못 먹고, 동물이 자기와 같이 둘로 보지 않게 되면은 먹는 겁니다. 그것이 자격이 있고 없는 데 달려 있는 거지, 계율에 달려 있는 게 아닙니다. 

 

하여튼 이 마음공부 하시는 분들, 때에 따라서는 깨우쳤다고 해서 그것이 환생이 되는 게 아니라, 정말 반야줄을 그냥 잡고 진짜로 믿고, 자기 뿌릴 믿고 진짜로 가는 분에 한해서는 어떤 뭐, 결례될지는 모르지만 어떤 가정에서 어떻게 부득한 사(정으)로 닭을 잡는다든가, 뭐 돼지를 잡는다든가, 소를 잡는다든가 이런 문제가 생길 때에는 반드시 거기다가 관하고선 한다면 그것은 그 모습이 싹 없어질 수도 있고, 그  믿고 관하는 사람에 따라서 반만 벗겨지는 수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때에 따라서 어떤 때는 소가 끌려갈 때 그 큰 눈을 껌벅껌벅하고 갈 때 말입니다. 눈물이 글썽글썽했을 때 똑 내 눈에서 눈물이 글썽글썽한 것 같습디다.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나와 둘이 아닌데 저걸 도살장에 끌려가서 차라리 죽는 이 모습을 헐어 간다면은 아프지 않게 그냥 헐어 갔으면 좋겠는데 그냥 때리고 그렇게 해서 죽는다. 사람도 그렇지 않습니까? 지겹게 그냥 살을 칼로 도려서 죽이는 것보다 총으로 팍 쏴서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난 이런 생각 많이 해요. 그런데 그거를 그렇게 죽이는 법이 없거든요. 애를 쓰고 죽게 만든단 말입니다. 

 

그러니깐 두 가지를, 세 가지를 다 해야 돼요. 아프지 않게 죽게 한다. 그 모습을 해탈을 시킨다. 그리고 어디다가 그 종자를 심어서 싹이 나오게 하는가, 이거. 이게 모두 쉬운 것은 아닙니다마는 눈물이 겨운 얘깁니다. 눈물겨운 얘기죠. 사람이나 짐승이나 모든 미생물에서까지 말입니다. 기가 막힌 일입니다. 기가 막힌 일인데, 그래서 “기가 막힌 일이 되기 때문에 낙도 아니고 고도 아니니라.” 이랬거든요. 

 

그러니 때로는 좋은 게 뭐 있겠습니까? 나 혼자만 깨달아서 낙이라고 생각한다면 즐겁겠지마는 나가 아닌 나가, 전체가 나 아님이 없는데 어찌 낙이라고 하겠습니까? 낙이 있다면 반드시 또 고가 따라붙을 텐데…. 그러니 여러분들 덥다 춥다 그거를 생각 마시고 항상, 변소에 똥 누러 갔다가도 ‘야, 우리가 먹고는 싸지 않으면 안 되는 이치구나. 우리가 많이 먹으면 많이 먹어서 체해서 똥을 못 누고 온통 야단하는 거보다, 조금 덜 먹고 똥을 잘 소화를 시켜서 잘 내리는 것이 맘 편안하고 몸도 괴롭지 않고 좋지 않은가?’ 이것이 모두 평균 살아나가는 생활 속에서 있는 겁니다. 

 

그러니 어떤 스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죠. “나는 내가 쓸 돈이 하나도 없다. 너희들이 다 나대신 쓰지 않느냐. 너희들이 나를 주는 돈이라고 하지만 너희들이 나를 주는 돈은 없느니라. 또 너한테 그 대신 받은 예도 없느니라.” 그 도리가 아까, 둘이 아닌 까닭에 내가 줬다,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준 거고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 내가 받은 것이 되지 않습니까? 내가 없는 사람들은 내가 받은 사이가 없고, 내가 없는 사람들은 준 사이도 없단 얘기죠. 그런 사람들에 한해서는 항상 먹을 게 있고 항상 돈이 있고 항상 거룩하죠. 아웅다웅하고 살지 않아도 될 수 있게끔 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게. 모두 그리로 모이니까. 또 질문할 분 없습니까? 

 

아니 오늘은 질문을 세 가지, ‘염불을 해서도 할 수 있습니까’ 그게 극치적인 질문입니다. 또 한 가지는 싸움을 하고 그런데 그거 살생을 하는 게 아닙니까 하는 뜻인데, 그것도 그렇고요. 모두가 내가 공했다면 그 싸운 사람과 죽은 사람도 공해버렸죠. 하여튼 그것 질문을 하신 분에 대해선 좀 생각을 해봐야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 시간 됐는데 그만둘까요, 더 할까요? 

 

우리가 찬불가도 선불가로 하기 때문에 공부하면서 공부하는 도리를 그냥 이게 노래로 짓기 때문에요, 그것도 사실은 설법입니다, 그것도. 이거 내가 여러분들한테 이렇게 이날까지 했어도 내가 한 바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거를 아셨으면 됩니다. 우리가 때에 따라서는 부처님을 신격화하고 때에 따라서는 아주 보통 우리네들 사람들처럼 생각하시는데 그것이 틀립니다. 처음에는 형상으로 봤다가 나중에는 부처님으로 진짜 봤다가 나중엔 공심인 공법으로써 용무를 하시는 진짜 부처로 보게 됩니다. 우리는 가만히 앉았어도 천차만별의 용무를 하고 있으니깐요. 

 

그러니까 그런 심부름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너무도 자유인이죠. 너무도 자유스럽고 너무도 세세생생을 정말 증명할 수 있는 분들이 되는 겁니다. 우리가 자유인이라면 너무도 좋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육통 안에서 이 몸 안에서 마음이 벗어난다면, 이 육통 안에 있는 그 모든 생명체들하고 공심이 된다면 바로 누진으로 벗어나서, 이 정수에는 이 오신통을 그냥, 육체를 굴리는 선장이 되는 거니깐요, 누진이. 선장이 되는 거니까 그 선장한테는 뭐가 있느냐면 컴퓨터가 있거든요, 자동적인 컴퓨터. 그래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입력이 저절로 되게끔 되는 거거든요. 

 

그러니 자기 혼자도 거짓말을 할 수가 없는 거죠. 취직을 시켜달라고 돈을 갖다가 매 주니까 “누가 보면 어쩌나?” 이러니깐 “누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아, 여기 이 방도 있고, 허공이 그냥 내려다보는데 어떻게 그걸 그렇게 없다고 하나? 도로 가져가게.” 그러더란 얘깁니다. 그런 거와 같이 우리가 한 사람도 없고 나만 안다고 해도 그것은 거짓을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여기 컴퓨터에 입력이 되는걸요. 입력이 돼서 현실로 나오는 걸 어떡합니까? 그러니까 이렇게 생략하고 또 아주 여러 가지에 휩쓸리지 않고 공부하게끔 이렇게 얘기해드리는 거라고 믿고 열심히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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