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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법문_192-1992년 11월 22일 돌려놓으라고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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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반갑습니다, 스님. 저는 공부한 지 얼마 오래 되지도 않고 그래서 아직 여러 가지 너무 몰라가지고 스님 말씀하시는 것들도 전부 이해하고 이러지를 못하고 있는데, 제일 중요한 주인공 믿는 거를, 다 몰록 맡기고 무조건 믿고 맡겨라 이러시는데, 저는 병원 간호사거든요. 그래서 일하면서, 모든 환자들 간호하면서도 ‘그래 주인공! 저 사람들 얼른 낫게 해줘.’ 이러고 ‘당신이 낫게 해줘야 될 게 아냐?’ 이러는 방법이 옳은 건지 아니면 틀린 것 같기도 하고…. 

 

큰스님: 틀리지 않아. 

 

질문: 그 사람들하고 한마음이…. 

 

큰스님: ‘둘이 아니잖아! 너만이 이끌어 갈 수가 있고 낫게 할 수가 있어.’ 하는 것이 옳아. 

 

질문: 그러니까 그 사람들하고 한마음이 돼라 그런 뜻은 ‘나하고 저 사람이 둘이 아니다’ 이거를 정확하게 내가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큰스님: 응,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까지도 거기다 맡겨. 왜냐하면 우리가 모르니깐 지금 ‘맡겨라’ 뭐, ‘굴려라’ 이러지? 본래 알면 그냥 내가 보고 듣고 그냥 말하고, 이렇게 행하고 만나고 이러는 게 그대로 법이야. 이거 봐! 사람이 육신이 한데 만나는 게 문제가 아니거든. 마음이 서로 이렇게 통하는 게 문제지. 말을 해서 마음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면 행동으로 개시가 되지? 그러니까 마음, 이 마음이라는 이 문제가 참 묘한 것이야. 그렇기 땜에 그렇게 해 놓고서 실험을 통해서 체험을 해. 그러다 보면 공부가 잘될 거야. 

 

이 생활 속에서 모두가 공부하는 거지, 부처님 앞에 가서 떡을 해 놓고 밥을 해 놓고 빌면서 체험을 하는 거 없어. 좌선이라는 것도 마음이 안정돼야 좌선이지, 마음은 산란하고 육체만 깔고 앉았으면 그게 좌선이 아니야. 그렇기 때문에 참선이 될 수가 없다 이 소리야. 행선이나 와선이나 입선, 즉 말하자면 일하면서나 누워 있으면서나 앉아으면서나 서 있으면서도 다 이것이 참선이다 이거야, 생활이. 

 

“놓고 가라” “가라” 이렇게 말하는 것은 본래 우리가 고정됨이 없이 화해서 나투면서 돌아가고 있잖아? 아까도 얘기했지? 남편 노릇 할 때, 잠깐 남편 노릇 할 때 또 “아버지!” 하고 들어오면 그냥 아버지 노릇 하지? “얘, 아무개야!” 부르면 아들 노릇 하지? 또는 “형님!” 하고 부르면 형님 노릇 하지? “아우야!” 그러면 아우 노릇 하지? 장모 만나면 사위 노릇 하지? 이렇게 찰나찰나에 그냥 돌아가는 이 자체가 그대로, 그대로 여여하단 얘기야. 여여하게들 모두 하고 가는데 그 마음으로다 집착을 해 가지고 이건 못하느니 하느니 하고 야단법석이기 때문에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셈이야. 그러니까 그렇게 열심히 해요. 


질문: 그리고요, 일할 때 우리는 정말 열심히 그 사람을 위해서 간호를 하고 이러거든요. 


큰스님: 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야, 자기를 위해서지. 그 사람이라고 그러면 벌써 상대가 되지 않아? 그런데 이 모습은 둘이 있을지언정 어찌 마음이야 둘이겠느냐. 이 전구는 여러 개가 있지만 전력이야 어찌 둘이겠느냐 이거야. 안 그래? 그러니까 이 모습을 보지 말고 ‘너와 나와 둘이 아닌데 너만이 이끌어 줄 수 있잖아?’ 하면 되는 거지, 뭐가 그렇게 사단이 많아? 산란하게 사단을 하면 똑바로 집혀지지가 않아. 그러니까 빨리빨리 공부들 해요. 해봐, 한번! 생활 속에서 그대로 하는 거니까. 삼천 번을 절을 하라고 누가 그러나. 하게 되면 하는 거고 안 하게 되면 안 하는 거야. 이거 봐! 삼천 년 전도 오늘이요, 일 초야. 그런데 절을 삼천 번 했다고 해서, 그건 몸뚱이로 해, 고행을 하는 거지 마음으로써 한 찰나 넘어서는 것이 아니야. 부처님께서도 힌두교의 교인들을 가지고 말을 했듯이 말이야. 몸뚱이로 고행을 하다가 몸뚱이 떨어지면 말도 떨어지고 입도 떨어지고 다 떨어질 텐데 무얼 가지고서 근본을 삼으려느냐고 말이야. 


질문: 정말 너무 감사합니다.


큰스님: 그래. 여러 사람들 그렇게 해서 잘 체험해. 여기도 의사들, 박사들 많이 나오고, 산부인과 의사도 나오고 별사람 다 나오는데 다 체험을 하고 가는 거야. 이거는 자기가 안 그랬을 때와 그랬을 때와 그게 그냥 판이 달라지는 거야, 전부. 이 도리를 공부하면서 잘 실험을 통해서 체험을 해 봐. 얼마나 고귀하고 묘하고 광대무변한지 스스로 자기네들이 알게 돼. 


내가 왜 되돌려놓으라고 그러는 줄 알아? 이것은 그냥 현실에 그냥 떨어진 게 아니야. 과거로부터,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내가 그 차원을 가지고 나오는 거야. 그러면 그 차원에 의해서 그 업식이, 죽어도 업식은 꼭 따라 다니거든? 그 업식이 그만 조절이 돼 가지고는 지금 현재 사는 걸로 나오는 거야. 물질적인 컴퓨터는 입력을 해서 넣어서 빼 쓰지마는 이 자동적인 컴퓨터는 그냥 자동적으로 입력이 돼 버려. 그래서 입력된 거니까 지금 현실에 나오는 거야. 그래서 되돌려서 거기다가 입력을 한다면 앞서 입력이 없어질 것 아냐? 얼마나 쉽고 빠르고 그래. 


그러니까 그 입력되는 대로 자꾸 앞서의 한 거 없어지고, 또 우리가 걸음 걸을 때 한 발 딛고 한 발 없어지고, 한 발 딛고 한 발 없어지고 하듯이 말이야. 되돌려 자꾸 믿고 ‘아, 내가 하는 것 다 거기서 하는 거다.’ 이런다면 그냥 다 그냥, 들어가는 대로 다 그냥 앞서의 입력이 없어지면서 또 들어가고 또 없어지고 또 들어가고 없어지고, 그렇게 함으로써 홀연히 그릇이 비고…, 이름해서 그것도 그릇이라고 그러는 거야, 또 그릇이 있는 줄 알지 말고…. 그릇이 비고 그러면 홀연히 내가 나타난다 이 소리야. 


지금 우리가 젊은이들이, 늙었든 젊었든 애들이든 다 이 정신계의 50%를 충당해야 돼. 지금 여기서도 병원에 있다고 그랬지만 30, 내가 똑바로 얘기해서 한 35%밖에는 병원에서 고칠 수가 없어. 그럼 65%는 어디서 충당하지? 여러분들이 다 충당해야 돼. 그러나 그뿐이 아니야. 병 증세를 하나 연구해서 약을 발견하고 그것을 고친다 하더라도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업식을 제거 못 시키면 그것이 또 딴 걸로 화해 버려. 딴 걸로 화해서 재난이 돼 버려. 그리고 이건 학술적인 거하고 이론적인 거하고, 이 모든 것이 물질적인 의학이지, 즉 말하자면 심성의학이 아니란 말이야. 그렇기 때문에 어디에서 어떻게 돼서 이것이 왔느냐는 걸 모르기 때문에 100%를 못하는 것뿐이야. 


그러니까 내가 말하는 게 항상 이렇게 말하지. 당신네들 몸뚱이 속에 수십억의 생명과 의식과 모습들이 들어 있다. 그러면 내가 어디서 왔는지 증거이다. 증거다. 미생물에서부터 그냥 온 것이 증거고, 내 몸뚱이가 지수화풍이라는 것도 증거다. 그 증거가 바로 내 몸뚱이 속에 다 들어 있어. 그러면 그거에서, 그 모든 몸뚱이 속에서, 한 파워에서, 즉 말하자면 공장이라고 한다면 심장 공장이라든가 간장 공장이라든가 대장, 소장, 척수, 척추, 방광, 콩팥, 이 모든 공장들이 있지. 공장들에서 한 공장만 망해도 이 몸뚱이는 다 쓰러져 가. 


그러니까 이 중생들이, 아까 유마힐 거사가 얘기했듯이, 내 몸속의 중생들이 다 나아야 내가 건강하게 일어난다 이 소리야. 이 내 몸뚱이 속에 중생들이 그렇게 많은데, 이름도 가지고 있고, 다들 사람들이 이름을 지어놔서 이름도 가지고 있고 그런데, 내 아님이 하나나 있어? 보라고! 응? 위 공장도 자기 공장이요, 자기요. 세균 하나하나도 자기 아닌 게 없어. 그거를 알라고. 그 수많은 의식들이 털구멍을 통하면서 들고 나면서 파워를 일으키면 몸뚱이가 그대로 가 버려. 그러니깐 모든 걸 종합해서 이 몸뚱이 속의 수십억의 그 의식들을 내 한마음으로써 귀결을 지어라 이거야. 귀결지어서 돌아가는 것이 주인공이야. 그러니깐 이름들을 가지고 논의하지 말고 실천궁행하는 데에 노력을 해라 이거야. 그리고 실험을 통해서 체험해라. 


그리고 옆의 사람이 어떠한 문제가 있을 때 실험해 보기 똑참한 거라. 내 마음을 그리로 줘서, ‘참, 주인공! 저 사람하고 나하고 둘이 아닌데, 둘이 아니잖아? 네 몸 네가 이끌고 건강하게 끌고 가야잖아?’ 하고 던져 놓고 지켜본다면 거기서 알 바가 있다 이거야. 주는 방식과 나한테로 넣는 방식이 있어. 소들이나 짐승들이나 닭이나 이런 거를 모두 이렇게 할 때는 그냥 나한테다 전부 넣어 버리는 거지. 그게 모두, 즉 말하자면 모르니까. 그러나 사람들이 모르는 거하고 짐승이 모르는 거하곤 또 달라. 그냥 넣는 것이 넣을 자리가 있어서 넣는 게 아니라 주인공에다 맡기지마는, 때에 따라선 그 주인공에다 그냥 줘 버리는 거야. 둘이 아니니까. 이리로 가도 둘이 아니요, 이리로 와도 둘이 아니거든. 심려가 하나도 들어갈 게 없어요, 이 공부라는 게. 


남들은 삼천 배를 절을 하고 온통 갖다 놓고 두드리고 온통 빌고 온통 산 기도를 가고 온통 음식들을 조절하고 야단법석들이지. 식구들을 다 굶기고 말이야, 그냥 이러면서까지. 가정이 어떻게 되든지 말이야. 자기 깐에는 잘되겠다고 하는 건데도 자기 가정을 파괴시키는 짓들이라 이거야. 사람이 종종걸음으로 수천수만 번을 떼어 봤자 한생각에 한걸음에 뛰는 것만 못해. 


미국에서 전화가 오고, 또 미국에 가 있으면 여기 한국에서 전화를 하는데, 전화를 해서 그냥 내가 “알았다” “알았습니다” 하는 것이 왜 그런 대답만 하는데 성사가 되느냐 이 소리야. 그건 마음과 마음이야. 마음은 체가 없기 때문에 천 리도 바로 요 자리야, 만 리도 요 자리고. 이 생활 속에서 모두 그대로 그냥 생활 자체가, 용도에 따라서 닥치고 나가고 하는 그 자체가 바로 재료야. 공부할 수 있는 재료! 그러니까 고(苦)라고 생각을 하지 말라 이 소리야. ‘아이고, 이게 또 닥쳤구나! 아이고, 이걸 어떡하면 좋은가!’ 하고 그냥 벌렁 나가자빠지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몸뚱이는 몸뚱이 속에 있는 의식들이 다 그냥 벌렁 나가 자빠져. 자기 말대로, 생각대로. 그러면 병이 들게 돼 있어. 


그러면 내가 그걸 여여하게 ‘흥! 가져갈 것도 없고, 가져온 것도 없는데 뭘 그래? 너 알아서 네가 잘 끌고 다녀라. 네 심부름을 하다가 이렇게 됐으니까 네가 알아서 해!’ 하고 턱 맡기고, 여여하게 싱긋이 웃을 수 있는 그러한 사람이라야만이 여기 육체 속에서 의식들이 다 그런 마음으로 한번 굴려주는 거야. 그럼 병 안 드니 좋지, 가정 화목하니 좋지, 다시 일어나니 좋지. 아, 그건 재료가 되는 거야. 어떻게 사람으로 생겨서 들고 나는 걸 모르고, 높고 낮은 걸 모르고, 길고 짧은 걸 모른다면 100%를 할 수가 없거든. 그러니까 재료로 생각해라 이거야, 안 되고 되는 것도. 


부산을 갔으면 가는 것만 알지 말고 오는 것도 생각해라 이거야. 오는 것도 법이고 가는 것도 법이야. 그러니까 안 되는 것도 법, 되는 것도 법이다 이거야. 그렇게만 생각해서도 아니 돼, 또. ‘안 되는 것도 법이니까 되게 하는 것도 법 아냐?’ 하고 되돌려 놓는 것이 빨리, 급하니까 빨리 오는 거지. 우리가 급하면 부산을 갔다가도 아, 급한 일이 생겼다고 한다면 비행기를 타고라도, 차를 타고 갔다가도 비행기를 타고라도 빨리 올 수 있잖아? 그 마음의 굴림이라는 것이 그렇게 빠르냐 늦으냐 더디냐 하는 것도 자기에 따라서라 이거야. 될 때에 이렇게 되는 거를 체험을 했는데 아, 이제는 안되더라 이거야. 그러면 갔으면 오는 것도 알아야 될 것 아냐? 그럼 자기 마음에 따라서 굴림을 굴려야 될 거 아냐? 아, 이렇게 바쁜데 아니, ‘안 되게 하는 것도 너니까 되게 하는 것도 너 아니야?’ 하고 빨리 돌려야 빨리 부산에서 빨리 오는 거나 마찬가지라 이 소리야. 좀 힌트를 알겠어요,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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