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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법문_208-1997년 10월 05일 모나지 않은 둥근 마음의 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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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다름이 아니고 제가 독일 땅에서, 문화적으로 언어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나라인데, 거기에서 저희 한국 신도와 독일 신도가 있는데 그 독일 신도분들께서 언어 문제나 요런 것 때문에 굉장히 공부하시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계시거든요. 그래서 거기에서 저희들이, 한국 신도가 독일 신도분들과 어떠한 마음으로 공부를 해야만이 앞으로 독일 땅에 많은 불법을 전할 수 있을지 큰스님께서 오늘 같은 날 좋은 법문을 설해 가르침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큰스님: 그게 그렇게 된다면 연기법이 들어갑니다. 왜냐하면 독일 신도와 이 지금 한국 신도가 말이 이어지질 않아서 못 할 때는 바로 이 상대방하고 이거 하고 주인공을 둘 아니라는 것을 알고 관(觀)하시고 하시면 저쪽의 주인공이 이쪽의 주인공으로 합해져서 왔다 갔다 하는 거기 때문에 빨리빨리 터득이 됩니다. 모르세요? 


그러면 영혼의 근본이라고 그러죠. 어떤 신도들의 따님이 저기 호주에 가서 공부를 하는데 도무지 무슨 말이 무슨 말인지 몰라서 여기에다가 관하고 너만이 빨리하게 할 수 있다고 하니까 그냥 그대로 그렇게 잘, 자기도 깜짝깜짝 놀라리만큼 영어라든가 뭐 또 중국어라든가 이런 게 딱딱 와서 대학을 다니고 또 중국으로 가서 다니고 한답니다, 지금. 그런데 그 영혼끼리, 이게 뜻은 영혼끼리 아는 겁니다. 말은 보는 사람들끼리 하지만 뜻은 자기 영혼과 그쪽 영혼과, 영혼이 같이 말을 하기 때문에, 둘 아니게 알기 때문에 그냥 빨리 알아지죠. 


그래서 모든 것을…, 말은 못 하더라도 그 외국 사람들의 마음은 다 알고 있는 거죠. 또 외국 사람도 그렇게 공부한 사람들은 이쪽 상대방의 마음을 알고.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자기 마음의 그 분신을 이름을 다 지어서 이렇게 해서 내놨죠. 너희들 나가서 둘 아니게, 네가 개구리다 할지라도 네가 개구리가 돼서 개구리를 건져라. 그러니까 천차만별을 다 또 장엄하시고, 또 천차만별의 생명들을 다…, 장엄했다는 거는 흡수했다는 얘기죠. 그렇게 하고 ‘일대사의 인연을 다 지으셨으니’ 이런 거는 천체, 과거 미래 현재 또는 우주 삼세 대천세계의 모두를 한데 합쳐서 내가 아님이 하나도 없고 내 도량 아님이 하나도 없고 내 아픔 아님이 하나도 없고 내 모습 아님이 하나도 없고 내 부모 아님이 하나도 없고 내 자식 아님이 하나도 없고 내 형제들 아님이 하나도 없느니라. 그러니 무엇을 내세워서 내가 했다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러니까 부처는 없는 게 부처니라. 


그러니깐 비디오 법회 하실 때에 빠지지 말고 들으시고요. 나름대로 생각을 둥글게만 하세요. 모가 나게 하지 마시고요. 그 위력은, 둥근 그 가운데 위력은 쓸 만합니다. 말이 너무 깊어서 그냥 이렇게 “쓸 만합니다.” 이러는 겁니다. 너무 깊어서 말이 끝이 안 나는 말이거든요. 


질문: 네, 큰스님 감사합니다. 항상, 먼 독일 땅이지만 큰스님이 항상 옆에 하신다는 생각으로 공부에 정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큰스님: 그러면요. 제가요, 찰나찰나, 이렇게 생각날 때는 찰나에 하나가 돼주거든요. 이 세상 사람이 다 한대도 다 그렇게 해줄 수가 있어요. 그래서 일체제불도 우리들 마음에, 우리들 근본에 직결돼 있다고 그러죠. 그 얘기도 했죠?  직결되고, 이 세상 일체 생명들의 그 모두도, 근본도 가설이 돼 있다고요. 그러니까 이리로 통해서 이리로 가는 길밖엔 없거든요. 자기 통로가 아니라면 남의 통로는 없어요. 근본은 자기한테 있는 거지 딴 사람한테 있는 거는 아니니깐요, 각자 모두. 그래서 자성을 깨우친다 이런 말이죠. 


우리들이 지금 살아나가는 것이 저 모자라는 저런 일체 만물이 없다면 내가 어찌 그걸 보지 않고 깨우치겠습니까? 그러니 모두가 우리와 더불어 같이 돌 하나라도 즉 말하자면 ‘내 스승 아닌 게 하나도 없다’ 이렇게 될 땐 더불어 같이 살아나가는 거고 배워나가는 거고 그렇죠. 그러니까 하나도 미움도 없고 또 고와질 것도 없고 나와 더불어 둘 아니게 항상 즐기게끔 돼 있거든요. 얼마나 재밌는 줄 아세요? 


사람이, 모르는 사람이 팔자 운명이다 고(苦)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팔자다 운명이다 고다, 이런 소리 안 해요. 집착만 없다면 고도 없고, 집착이 없는데 내가 없는데 멸함이 어딨고 도가 어딨습니까? 그대로 내가 움죽거리는 자체, 사는 자체가 바로 도예요. 하여튼 반가워요. 


질문: 그렇지 않아도 스님 가르침대로 저희들이 공부를 하다 보니까 저 나름대로도 스스로 많은 조그만 체험들을 하게 됩니다. 독일에서 불사를 하면서 거기 전의 법당이 좁아 가지고 저희들이 그 수영장을 개조를 해서 불사를 하였는데요. 그때마다 어려운 일이 닥칠 때에 아주 좋은 인연들이 자주, 가끔 나타나 가지고 그렇게 저희를 돕는 걸 보고 ‘아! 이게 바로 한마음에서 나오는 그런 일들이로구나! 참, 신묘하구나!’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지내왔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저도 여러 가지로 간염으로 해서 고생도 하고 그랬었는데 스님의 가르침대로 주인공 자리에 놓고 스님 말씀 믿고 그대로 그 뒤를 따라가다 보니까 하루하루가 이렇게 즐겁고 굉장히 좋은 나날인 것 같습니다. 스님, 정말 감사합니다. 


큰스님: 그래서 이 지금…, 지금 그렇게 말씀하셨죠? 그 법당을 꾸미는 데 스스로서 누가 와서 돌본다고요. 그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요, 부처님의 마음이 분신으로 하여금 그쪽 사람들, 할 만한 사람이라면 거기에 첨보가 됩니다. 그러니깐 십 리 밖이라도 쫓아오는 거죠. 그러니깐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하는 겁니다. 그런 사람이 공부를 해서 그 도리를 안다면 더더욱 좋을 거고요. 


질문: 네, 그런 인연들이 저희 선원과 인연이 돼 가지고 지금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영국분도 계시고요, 독일분들도 많이 계시고 한국분들도 계시고 그럽니다. 불사라는 게 스님 말씀마따나 여러 가지로 그, 공부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저희들이 그걸 깊이 깊이 느끼고 그걸로 인해서 공부를 많이 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큰스님: 그래도 독일에서 오신 분이니까 내가 이런 말 하나 하죠. 그,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려다 잊어버렸지? 금방 잊어버렸어. 내가 무슨 말을 하려다 잊어버렸나. 꼭 필요한 말인데…. 댁에서 지금 뭐라고 그러셨죠?


질문: 독일 불자들이 그 인연으로 인해서 공부들 열심히 하고 있다는 그런 말씀 드렸었습니다.


큰스님: 그래서 그 말은 잊어버리고요. 아주 필요한 말이 돼서 내가 하려고 했는데…. 그런데 그렇게 관하고 이렇게 생활을 하는 것도요, 우리가 음…, 이 말이구나. 불교라는 말 있죠? 불교라는 말도 있고 불법이라는 말도 있고요. 근데 불법은 상대성 원리로서의 불법이라고 했고요. 또 불교라는 것은 바로 생명과 삶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금방 아는 게 아니라 길러져 가지고서 어른이 돼서 삶을 알고 사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나 가톨릭교나 어떠한 교를 떠나서, 이게 국한돼 있는 불교가 아니라, 불교라는 것은, 불은 일체 생명의 근본을 불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교는 이 생활입니다. 생활이기 때문에 그 생활에서 살면서 배우고 지혜로움을 느끼고 잘못되고 잘되고를 알게 되고 이렇게 자꾸 배우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입니다.


그런데 따로따로 있는 줄 알고, 우리 배우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우리는 지구라는 공기주머니 안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고 있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 지구 안에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그 안에서 돌아가는 게 모두 불교로 돌아가는 거죠. 그러니까 어느 한군데 따로따로 있는 게 아니죠. 그러니깐 어느 종교든 막론하고 종교가 없든 있든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그대로 필연적으로 이 공부는 해야 된다는 얘기죠. 그럼 됐어요. 감사해요. 


사무장: 오늘 질문 두 분밖에 없습니다. 


큰스님: 두 분밖에 안 계셨습니까? 예. 하여튼 우리가 부처님 자리에 모든 제자들이 한자리를 하게 된 것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린 모두가 주머니 속에 한자리를 지금 하고 이렇게 공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리로 이사를 갔다 그래서 한자리가 아니고 저 외국으로 떠났다 그래서 한자리가 아닌 것이 아닙니다. 전부 동서남북으로 다 헤어졌어도 한 주머니입니다, 한 주머니! 한 주머니인 까닭에 모두 살기 위하고 보기 위하고 배우기 위해서 이쪽으로도 가고 저쪽으로도 가고 저쪽으로도 가지만, 우리는 그 주머니, 한 주머니 속에서 내가 자유자재권을 얻고 활딱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니깐요. 


그런데 우리들 공부하는 게 지금 활딱 벗어나, 살아생전에 생사윤회를 만약에 가늠할 수 있어야지 죽어서 열반을 가늠하는 게 아닙니다. 그렇듯이 살아서 벗어날 수 있어야지, 벗어나기만 해도 안 되고 벗어나고도 들고 날 때에 자유롭게 들고 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살아서. 마음이 우주에도 가고 이리로 지구로 다시 찰나에 들고 또 달로도 가고 찰나에 들고 이럴 수 있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말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어야 내가 옷을 벗고도 그, 즉 말하자면 용도에 따라서 또는 그 차원에 따라서 모두 소임을 맡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시는 이 중세계에 모습으로서 그 고통스러운 거를 느끼고 알고 그렇게 하다가 또 죽지 않도록 열심히 하세요. 


그럼, 인제 내려갈까요? 아까 제일 처음에 말씀해드린 거 잘 인식하시겠죠? 바깥으로 끄달리지 않는 것이 바로 업사상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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