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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법문-34_1993년 7월 4일 경전을 대하는 마음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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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한마음요전과 마음공부에 대해서 여쭙겠습니다. 요전이 간행된 지 한 삼 개월 가량 되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많은 신도들이 한 권씩 구입해서 공부에 참구하고 있는 줄 압니다. 그런데 듣자 하니 어떤 분은 하루에 몇 구절씩 읽고 있다고 합니다. 또 어떤 분은 평소에 큰스님의 법문을 많이 듣다 보니까 이제는 요전을 보지 않아도 내용을 다 안다, 심지어는 읽지 않아도 된다고 말합니다. 제 생각에는 어느 분이 옳고 어느 분이 그르다 하는 말을 하기보다는 마음공부하는 과정에서 경전의 중요성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지 하는 점이 더 궁금합니다. 한마음요전, 평소에 경전을 어떠한 마음의 자세로 대해야 하며, 특히 한마음요전을 어떻게 참구해야 하는지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큰스님: 부처님께서는 사십구년을 설하고 경전을 편집해서 냈어도 이날까지도 그 마음을 모두 모르고, 모르면서 그 마음을 움죽거리고 있죠. 그런데 말입니다. 나로서는 경전을 봐야 옳다, 경전을 안 봐야 옳다 이런 말을 할 수가 없죠. 왜냐하면 이 오장육부 속에도 천차만별의 모습들도 다르고 행도 다르고 모두 다르듯이 이 세상 만사의 모든 마음 내는 그릇은, 마음 자체는 다 똑같지만 마음 내는 자체는 다 다른데, 천차만별로 다른데, 그건 그릇대로 자기의 생각대로 할 뿐이지 누구가 봐야 옳다, 안 봐야 옳다 할 수는 없죠.

그러나 우리가 참고적으로 생각을 해보세요. 경전을 써놨어도 풀이를 해 놨어도 기복으로 풀이를 많이 해놨습니다. 그런데 이거는 기복으로 써놓은 게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참고적으로 우리는 지혜를 넓혀가고 마음을 계발하려면, 마음이 지혜롭게 발전을 하려면 자기가 어떤 땐 모르는 게 있으면 한 번 보고 넘어가는 것도 좋은 일이죠. 그래서 목차목차대로 있으니까 자기가 아쉬운 대로 한 번 넘겨서 볼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됐으면 좋겠구요.

우리가 보고 듣지 않으면 이름도 몰라서 생각도 안 납니다. 우리 먹는 것도 그렇죠. 우리가 먹고 싶은 것이 있는 것은 우리가 먹어 봤으니까 먹고 싶은 생각이 나는 거지, 보지도 못하고 먹어 보지도 못하고 맛도 모르는데 어떻게 먹고 싶은 생각이 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참고적으로 길잡이로서 꼭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 책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모두 불교 자체에서 개선할 게 너무도 많은데 그 책을 만약에 습득해서 잘 보고 넘어간다면 그 책은 산 겁니다.

 

어떤 돌부처가 말입니다. 옮겨놓으려고 하니까 꿈에 ????나는 가기 싫다.???? 꿈에 그러더랍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다시 모셔놨답니다. 그와 같이, 이 돌 하나도 생명이 없는 게 없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그 책에 말입니다, 일체제불의 마음이 다 들어 있는 겁니다. 내가 한 게 아닙니다, 그리고 딴 사람이 한 게 아닙니다. 다 한마음으로써 다 같이 한 겁니다, 그게. 이 세상의 진리이자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그대로 그냥 글귀로 해놨을 뿐이지 모두 여러분들과 더불어 같이 해놓은 겁니다, 그게. 그러니까 누가 했다, 누가 안 했다 이럴 수가 없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건 참고적으로 우리가 보고 알아야 되지 않나. 그래야 마음의 발전이 되면서 먹고 싶은 게 생각이 나죠. 먹고 싶은 게 생각이 날 때는 가차없이 갖다가 먹을 수 있죠.

 

그런데, 예를 들어서 ????, 그 사람이 만날 얘기하는 게 만날 그 얘기가 그 얘기야. 그런데 뭘 그래????? 이게 글을 외워서 배우라는 게 아니거든요. 외워가지고 그 외운 거를 다 버리더라도 그 뜻을, 진짜 내가 갖다 먹을 수 있는 행을 중용으로 해라. 정신계와 물질계를 중용으로 해라, 이런 뜻이 담겨있는 거지, 그걸 외워서 읽으라고 해놓은 게 아니거든요? 읽더라도 무뜩무뜩 생각이, 읽다 보면 때에 따라서 어떠한 환경의 지배를 받게 되면 생각이 나거든요?

생각이 날 때는 하다못해 얼른 비교해서 말할 때 차 사고가 날 일이 생겨도 그걸로 생각을 했기 때문에 차 사고가 안 날 수도 있는 거거든요. 이 보이지 않는 데 이 우주 자체 허공에 말입니다, 이 생명들이 꽉 차서 있어요. 그러니까 어느 때 어떻게 부딪쳐서 일이 생길지 모르거든요. 그래서 몸뚱이나 혹성 이 자체도 이 대기에서, 다 대기권에서 이게 다 밀치고 다 이렇게 들일 건 들이고, 통신은 들일 건 들이고 버릴 건 버리고 대치할 건 대치하고 이렇게, 사람이 다니게끔 돼 있거든요? 보이지 않는 데 다 그렇게 꽉 차 있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무뜩무뜩 자기가 생각날 수 있는 그런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서 그게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내가 그러는 줄도 알아요. ????그 사람은 뭐 만날 해봤자야 그 말, 그 말, 만날 그 말만 되풀이하는 그 사람!???? 이러겠지만 말이 문제가 아니에요. 말을 내가 백 마디를 했다 하더라도, 똑같은 말을 백 마디를 했다고 하더라도, 구저 스님이 손 하나, 그저 평생을 손가락 하나만 들었어요. 그거는 왜 그랬을까 의문도 나지 않습니까? 그런데 나는 그래도 이리저리 이럭저럭 다 이렇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반찬 갖춰서.

 

질문: , 더우신데 오늘 좋은 가르침을 이렇게 긴 시간 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가슴 깊이 새기고 공부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큰스님: 그렇게 하셔야죠.

 

질문: .

 

 

큰스님: 그렇게 해서 누구 줍니까? 자기 갖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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