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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법문-54_1995년 7월 2일 한마음으로 세우는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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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저는 평범한, 월급을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인데, 옛날에는 월급을 받으면 좀 금액이 적으면 '내가 열심히 일했는데 왜 이거밖에 안 주냐.'  이런 생각이 들고, 또 금액이 좀 흡족하면 '내가 잘했으니까 이 정도 받아도 되지.'  또 세금을 많이 뗄 경우에는 우리나라의 조세 제도에 대해서 원망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스님이 말씀하신 것 가운데 돈을 벌어도 내가 번 것이 아니다.” 그런 말씀을 듣고 난 다음부터는 같은 월급을 받더라도 ', 이것은 내가 번 것이 아니라 내 동료들과 내 선배 후배 직장동료들, 그리고 내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같이 돈을 벌었구나.' 해서 주위 사람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먼저 가지게 되는 큰 변화를 제가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생활하면서 여러 가지 부딪치는 문제에 대해서 마음에 원()을 내고 주인공에 맡기는 작업을 사소한 것에서부터 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것이 실천이 되는 것에 대해서 제 자신도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었어요. 최근에는 제가 해외 연수를 상당히 마음을 내고 원을 했는데, 그게 저도 모르게 진행이 돼가지고 회사에서 잠시 공부하고 오라고 3개월 간 가게 됐습니다. 내일 출국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저는 가면서도 왜 이렇게 잘 실천이 되는 건가, 스님의 선법가의 맛을 보는 듯한 이런 느낌도 제가 들었어요. 제가 연수에서 공부하러 갈 때에도 비록 스님 말씀 들을 기회나 법회에 참석할 기회는 몇 개월 동안 없지만 책을 통해서, 또는 마음의 원을 내어서 항상 실천하려고 하고, 그 다음에 건강하고 또 지혜롭게 연수 효과를 충분히 발휘해서 저 자신과 회사에 많은 도움이 되기를 원을 내고 있습니다그런데 원을 내면서 혼란스러울 때가 가끔 있는 것이, 기복 신앙이라는 데 대해서 상당히 혼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저희 지원장 스님께서도 기복에 대해서는 상당히 조심하라고 말씀하신 걸로 제가 기억이 나는데요. 제가 원하는 것이 과연 진짜 자성불에서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기 잘되게 해달라고 기복으로써 그냥 원하고 자성불한테 얘기하고 하는 것인지 가르침을 주십시오.

 

큰스님: 이 원이라는 건 둥근 것이 원이죠? 그래서 원심을 낸 거죠. 한마음이 된 거죠. 한마음으로 구성해서 통신이 된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보통 그냥 이렇게 공부하는 거 같지만 이거는 심성의학이기도 하고, 과학이기도 하고, 천문학이기도 하고, 천체물리학이기도 합니다. 그건 왜냐? 내가 전체의 그 몸속에 있는 의식과 모든 걸 한마음을 냈습니다, 한마음으로. 원이라는 그 말이 한마음이란 뜻입니다. 그래 한마음을 냈는데, 한마음으로 내가지고 보니까 바깥 경계도 한마음으로 되돌아가더란 얘기죠. 안에서 한마음이 다 이렇게 한다고 말을 할 땐 내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원자에서 입자로 화()해서 다 조절을 한다, 한마음으로.” 이렇게 하는 겁니다. 이건 사실이에요.

 

그러니까 내가 한마음을 냈는데 그것이 어떻게 비는 겁니까? 이 내 마음 속으로 하는 거는 비는 게 아니라 바깥으로 찾는 게 비는 거고 기복입니다. 내 안의 주인공한테 찾는 거는 한마음으로써 그 원을, 중심에 원을 세운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원을 세운 그 마음 한생각이 입자로 화해서, 즉 말하자면 통신이 되면 첫째 한찰나에 대뇌를 통해서 중뇌에서 책정을 합니다. 그래 사대로 통신이 되면 그 모든 입자들이 다 한마음으로 구성이 돼서 제각기 또 벌어집니다. 여기는 이렇게 돼야 하고, 즉 말하자면 제각기 말입니다. 똑같은 일에, 일을 하러 가는 게 아니라 일을 한다면, 요거는 말을 해서 될 일이고, 요거는 또 사람의 마음을 움죽거려야 될 일이면 전부 각각, 이렇게 각각 나가서 소임을 마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생각한다면 우리가 천부적인 모든 일체를 다 구족하게 가졌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겁니다. 우리 여러분들이 다 구족하게 가지고 있단 얘깁니다. 내가 그렇게 잘 해서가 아니라 내가 구족한 것을 알고서 여러분들한테 일러드리는 겁니다. 당신네들한테 구족하게 다 그렇게 있으니까 그렇게 통신이 되게 해서 그렇게 해라.’ 이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게 안 되고 배깁니까? 그러니 딴 사람이 지금 속마음으로 '저 사람을 한번 죽여버려야겠다.' 이런다면 벌써 이쪽에서는 '!' 콧방귀 탁 뀌고 '니가 날 죽여' 집이는 모르지. 본래 자기, 자기는 몰라도 자기 속에서는 벌써 알고 '! 날 죽여' 그러고선 외려 댑다 그리로 몽둥이가 들어가죠. 그러는 수도 있지만 이쪽에서 또 그걸 알고 자비스러우면 몽둥이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그냥 자기가 조금 그런 데 실의에 빠져서, 외려 되빠져가지고 그런 마음을 버리고 다시 올라오게 만드는 그런 자비를 베풀죠

 

그러니까 그 도리를 완벽하게 알기 위해서는 자기가 조금씩 조금씩 그렇게 실천을 옮겨 보면서, 실험을 해 가면서, 체험을 해 가면서 이렇게 자꾸자꾸 끝없는 길을 걸어야죠. 그러다 보면 어떤 사람은, 예를 들어서 이건 몇 년이나 해야 되겠습니까?’ 이런 게 없어요. 몇 년을 해도 안 되는 사람이 있고 몇 달을 해도 되는 사람이 있으니까 말입니다. 이건 드레가 없는 겁니다. 자기 자신의 그릇에 따라서, 지혜에 따라서, 선천적인 자기의, 가진 그 착한 마음으로부터 생기는 거니까요.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해 보십시오. 이 모습을 가지고 몇 알갱이나 살겠습니까? 요 사는 동안에 우리가 세세생생을 살게 하느냐, 아예 그냥 구덩이에 빠지게 하느냐, 여기에 달려 있는 겁니다. 세세생생을 살게 하느냐, 내 한생각을 잘해서 부모를 건지고 자식을 건지고 세세생생에 건질 수 있다면, 자기뿐만 아니라. 그거는 우리가 정말 똥을 누나, 잠을 자나, 밥을 먹을 때나 항상 주인공 생각만 나면 거기다 놓는 작업을 아니 하고는 아니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외려 내가 삼천배를 올리고 기도를 하고 정성을 들이고, 또는 몇 며칠을 목욕재계를 하고 정성을 들여라 이런 말 합디까?

 

여러분들 사는 생활이 그대로 여여하고, 그대로 공부할 수 있는 재료고, 여러분들이 부처고, 여러분들이 중생이니까  '한생각을 잘 내면 부처고 한생각을 못 내면 중생이다. 그러니 잘 해봐라.' 이거죠. '삼보에 귀의한다' 이런 것도 자생 삼보에 귀의할 줄 알아야 우리가 불 법 승에게 귀의할 줄도 안다. 즉 말하자면 자생 중생에, 자생 부처에, 이에 자생 삼보에 귀의할 줄 알아야 한다. 자기 과거에 살던 자기와 현재의 자기 한생각과, 또는 자기가 한생각에 움죽거림과, 이 자생 삼보입니다, 그게. 가만히 있는 자기 무심과, 생각을 내는 마음과, 생각을 내면 몸이 움죽거리는 것과 그것이 바로 삼합이 한데 합쳐서 돌아가니까 그게 자생 삼보에 귀의한다.

 

그 자생 삼보에 귀의하면 진짜로 귀의해서 그 도리를 알면 바로, ()도 자기하고 생명이 둘이 아니죠. 불이 생명이니까. 생명의 근본이 불이에요. ()는 우리가 살면서 배우는 게 교구요. 그렇기 때문에 불교라는 것은 우리 머리 깎은 사람만 믿게끔 되는 게 불교가 아니죠. 그냥 진리예요. 그러니까 불, , 이거는 한생각. 또는 승, 스님네들. 이것이 다 불과 법, 승이 다 한데 합쳐서 내 자생 삼보와 둘이 아니다라는 얘깁니다. 둘이 아니죠. 생명도 둘이 아니요, 몸도 둘이 아니요, 만약에 생각도 둘이 아니라 하면 그냥 모두가 삼보에 귀의했다 이러면, 자생이다 뭐 부처님이다 이런 걸 떠나서 내가 항상 얘기하죠.

 

여기 와서 법당에 와서 절하라. 일정례를 하든지 삼정례를 하든지 칠정례를 하든지 간에 '내 몸은 부처님 몸과 같고, 내 마음 낸 것도 부처님 법과 같고, 내가 저렇게 앉았는 그 모습도 내 모습과 둘이 아니다.' 이렇게 하라고 그랬죠. 항상 그렇게 하면서 저리로 헤어져서 나갈 때는, 여기 들어와서는 하나로 합치고 저걸로, 나갈 때는 댁의 자신으로 한데 합쳐서 나가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항상 둘이 아니죠. 그러니 형상 부처님을 무시하지도 않게 되고, 자기 형상을 무시하면 자기 형상이 무시가 되는 거니까, 모두가 그렇게 상대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냉정하게 판단하면 여러분들 중에 이 세상에 탄생을 안 했다면 뭐가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탄생을 했기 때문에 있는 겁니다. 상대가 있고, 모두 어려움이 있고, 자랑스러운 게 있고, 즐거움이 있고 모두 그런 거죠. 여러분들이 아니었더라면 없다면 없는 거죠. 전부 없는 거죠. 그래서 최초의 문제는 너 하나로 인해서 생긴 것이다라는 얘기죠, 모두 각자. 너 하나 때문에 생긴 일이다. 그래서 '부처님이 어딨습니까?' 하니까 '말하는 놈은 어떤 놈이냐.' 이렇게 말을 했거든요. '번연히 이미 부처가 됐다고 하면서도 왜 부처를 깨닫지 못합니까?' 하고 물으니까 '네가 깨닫지 못했으니까 그런 거 아니겠냐.' 이렇게 대답을 했답니다.

 

그런 거와 같이 모두들 어떤 사람들은, 어떤 중이나 중이 아니든 자기 그릇의 잣대에 대서 상대방을 생각하려고 하지 말고 항상 겸손하게, 모자라면 모자라는 대로 내가 둥글게 그쪽에 모자라게 들어가 주고, 크면 큰 대로 들어가 주고 아주 작으면 아주 작은 대로 들어가 준다면, 아예 항상 평등하고 항상 둥글지 않겠습니까? 어때요? 여러분들이 생각할 때에 좀 모자라는 사람 '왜 저렇게 할까' 하고 생각될 때가 있죠? 그런데  '어허! 저게 내가 모르고 살 때의 내 모습과 같구나.'  이런 생각 해보셨습니까?  '나 모자랐을 때의 바로 그 모습이로구나!' 그렇게 생각을 한다면 바로 부드럽게 말이 나가고 부드러운 행동이 나갈 겁니다. 자기이기 때문에. 전자에 모자랐던 자기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아예 자기 그릇에다가 생각을 하고선 '아휴, 저거는 그냥 천리 만리 모자라.' 하고 생각을 했다면 아예 모가 나죠. 그러고 외면이 되고. 그러니까 사랑을 하려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고 그렇죠.

 

그러니 여러분들이 잘 심사숙고해서 생각을 깊이 하셔서 우리가 자동적인 오신통의 제일 중심에 숙명통이라는 컴퓨터가 있다고 생각을 하세요. 숙명통의 컴퓨터가 스스로 자동적으로 우리가 사는 것이 거기에 입력되는구나. 그러면 스스로서 거기다가 또 맡기면 그 입력된 게 그냥 전체 자꾸자꾸 없어지면서 새 물로 화하는구나. 그럼 내가 생각하는 대로 자꾸 화해서 없어지고 없어지고 하니까 새 걸로만 자꾸 나올 거 아닙니까, 이 세상에. 그러니 얼마나 좋은 세상을 살 수 있겠습니까? 아마 누구든지 이러한 경험 안 해본 분들은 이렇게 좋다고 친밀하게, 정말 눈물까지 흘리면서 좋다고 생각하지 못하실 겁니다,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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