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법문_187-1992년 11월 22일 자기가 불을 켜는 장본인
본문
질문: 스님, 질문드리기 전에 우선, 스님 너무 사랑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큰스님: 나 사랑하는 거야 뭐, 밑질 것도 없고 뭐, 그러니까 사랑하는 것도 좋을 테지, 그까짓 거 뭐….
질문: 제 자신이 이 자리에 있는 것은요, 깨달음을 위해서 이렇게 와 있고, 또 큰 바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성불할 수 있는 그런 목적을 위해서 제가 이렇게 있는데, 공부를 하다 보니까 인간의 몸을 제가 받았다는 자체가 크게 감사하는 어떤 고마움이 되고요. 이 몸을 받았으니까 또 성불해야겠다 하는 의식이 생기게 되더라고요, 스님. 그런데 제가 이 몸을 받을 때까지 이제까지 거쳐 왔던 윤회가 있을 거고, 또 앞으로 거쳐야 할 윤회가 있을 거란 말입니다. 근데 그 윤회가 왜 꼭 존재해야 하는지 좀 설해 주십시오.
큰스님: 아니, 어저께 밥 먹었으면 오늘 또 밥 먹어야잖아? 그러면 또 딸 노릇도 하고 며느리 노릇도 하고, 예를 들어서…. 며느리 노릇도 하고 엄마 노릇도 하고 아내 노릇도 하고 할머니 노릇도 하고, 이렇게 화해서 돌아가는 게 윤회인데, 그러고 또 한 가지는, 수증기가 물에서 올라가서 또 비가 내리고 다 이렇게 내리면 또 만물이 다 그걸 먹고 사는데 윤회가 없어서 어떻게 해?
질문: 스님, 이 질문은요, 초발심 되신 분을 위해서 제가 일부러 드린 질문이었고요. 진짜 질문은요….
큰스님: 아주 마음이 너그러워서 좋았어.
질문: 공부 과정에서 우리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어떤 요건이랄까 자세들을 쭉 제 나름대로 가닥을 추려 보니까 주인공에 대한 어떤 확실한 믿음과, 그다음에는 돌에서 피가 배일 듯한 간절한 마음가짐, 그다음에 다가오는 모든 공부 재료를 계속 놓는 작업, 이것들을 추스려 나가게 되면 꼭 성불하리라는 자신감은 있거든요. 그런데 돌에 배일 듯한 간절한 마음가짐이 머리로만 계속 굴려지고 마음으로 될 것 같으면서도 잘되지 않은 거 있죠, 스님! 그러니까 그런 부분에 대해서 스님이 좀 지적을 해 주시면서 마음을 같이 좀 내주셨으면 제가 공부하는 데 굉장히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이렇게 나왔어요.
큰스님: 그런데 말이야, 모르는 게 한 가지 있어. 부설 거사가 셋이 공부를 하러 가다가 앞에 닥친, 자기 아니면 죽겠다고 하는 여자가 있었다고 했지? 그런데 그 앞의 것을 죽이고 어찌 뒤에 가서 내가 성불을 할 수 있겠느냐 했어. 그와 마찬가지로 생활 속에서 하나하나가 닥치는 게 그대로, 그대로거든. 답답하다 그러는 것도, 우리가 자기가 불을 꺼 놓고 답답한 거지 불을 켠다면 답답하지 않거든. 그래서 불 켜는 것은 거기에 맡겨 놓고 탄평 믿고 맡길 때에 바로 불이 켜진 거와 같다 이거야. ‘답답한 것도 거기서 나오는 거니까 답답하지 않게 하는 것도 거기다.’ 하고 놓으면 답답하지 않아.
우리가 캄캄한 방에 불을 꺼 놓고선 꺼진 거를 그대로, ‘캄캄하다’ ‘캄캄한 게 다 어떻게 가 버렸으면 좋겠다’ 하고 애원을 하지만 자기가 캄캄한 거를 본 장본인이니까 자기가 켜야 될 거 아니냐 이 소리야. 그러면 방이 환하게 모두 보이고 다 밝게 살 수 있잖아? 그러니까 그 방에 있던 사람들까지도 밝게 살 수 있다 이거야. 그러니까 거기다가 놓는 작업을 ‘그 답답한 것도 거기서 나온 거다. 그러니까 답답하지 않게 하는 것도 거기야!’ 하고 거기 놨을 때 불이 들어오는 거나 같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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