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법문_205-1986년 01월 05일 진리는 걸림이 없다
본문
질문: 저의 며느리는 천주교엘 나가요. 그래 마루에다가 십자가를 걸어놓고 있고 전 제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고 그래, 제 며느리 보고는 “대한민국도 신앙의 자유가 있어, 헌법상. 우리 집안에도 자유가 있어. 넌 너대로 성당에 나가고 난 나대로 내 공부를 한다.” 그래 아침저녁 집에서 저는 시간이 있는 대로 그냥 금강경을 공부를 하고 있는데, 어떤 때는 내가 속으로 하면 흥이 안 나서 또 음성을 또 높여가면서도 공부를 해나가거든요. 그런데 또 며느리가 그걸 들으면 또 좋은가, 나쁜가. 한쪽으로 마음에 좀 두근두근 거리면서 공부를 하게 되는데, 이게 어떠한 영적인 면에서 어떠한 충돌이 있어 가지고 혹여나 가정불화가 또 생기면 어떡할까 그런 느낌이 혹 날 적이 있거든요.
큰스님: 선생님께서 그것도 참, 여느 데 절에서는 아마 그런 질문 그렇게, 지금처럼 그렇게 하면 그게 질문이냐고 그러고선 그냥 주장자만 탕탕 치고선 그냥 몇 마디 참, 높은 말씀 몇 마디 해주시고 아마 일어나실 겁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높은 스님, 높은 부처 되려고 이렇게 되지 않았으니깐요. 여러분들 그렇게, 아주 마음이 가난한 데에 나도 마음이 가난한 그 틈에 끼어서 서로 토론하는 겁니다.
그런데 나 같으면 말입니다. 며느리가 천주교를 믿든지 내가 불교를 믿든지 그 마음으로써 듣기 좋게 “야, 우리 한 가정에서 화목하게 한 군데로 나가자!” 이렇게 위에서 존엄성 있게 말씀 한마디 웃으면서 하시면서, 나쁘게는 하지 마시고 그렇게 한 마디 당겨놓고 마음으로 자기 주인공에 모든 것을 맡겨놓으십시오. 맡겨놓으시고 선생님 하시는 것도, 경을 봐서 소상히 이걸 따지지 마시고 경을 보되 그것을 자기가 본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자기 주인공에 모든 것을 놓고 함이 없이, 책이 나를 보게 하지 마시고 내가 책을 보지 마시고 그냥 보십시오. 그리고 마음으로는 항상 살아나가는 생활도 당신이 하는 게 아니라 진짜 당신한테, 공한 당신한테 공한 이치를 다 놓으세요. 맡기세요. 그리고 믿으세요. 그런다면 차차 그 며느리도 한 번만 데리고 와서 서로 대화를 하게 되면은 아주 참신한 사람이 될 겁니다. 그리고 며느리도 또 그렇게 미련하지는 않으니깐요. 그래서 걸리지 마세요. 사람의 마음이 걸려서 걸리는 거지 진리는 걸림이 없는 겁니다.
질문: 그런데 스님, 금강경은 아침저녁 독송을 하거든요. 독송을 하는데 통, 공부가 여일히 되질 않는 거 같애요.
큰스님: 그런데 이런 게 있습니다. 옛날 얘기 또 해야 되겠군요. 옛날에, 옛날이 아니라 어느 도량에서는 학인들이 결제가 되면은 한 절에 모여서 참선을 하든가 경을 읽든가 이럽니다. 해제가 되면은 또 나가서, 나가서 공부를 합니다, 또.
그래 나가서 공부를 하다가 결제가 돼서 다들 들어왔는데 그 절의 주지 스님께서 “너희들은 무슨 공부를 하고 들어왔느냐?” 하니까 전부 무슨 경을 읽었다, 무슨 경을 읽었다 하는데 한 분만은 “너는 무슨 공부를 했느냐?” 하니깐요. “저는 잠자고 밥 먹고 똥 싸고 있었습니다.” 하거든요. 그렇게 똥 싸고 밥 먹고 잠잤다고 하는 말에 “얘, 이놈!” 공부도 안 하고 그렇게 잠만 자고 똥만 싸고 그렇게 했으니 너는 부목이나 하라고 이렇게 내쫓았습니다.
그래 부목을 하면서 나무를 들고 패서 스님 방에 불을 때느라고 그 앞엘 자꾸 돌아다니거든요. 그럴 때에 스님께서 그랬답니다. 노래를 했답니다. 어쩌다가 벌이 말입니다. 벌 있죠? 벌이 어쩌다가 방에 들어가서, 그건 입산한 걸 말하는 겁니다. 어쩌다가 벌이 방에 들어가서 유리가 반사가 되는 거를 보고 그것이 문인 줄 알고 자꾸 입으로다가 거기를 쪼니까 고만 입이 뭉그러져 떨어졌거든요. 떨어져서 몸이 떨어지니까, 그 쪼다가 몸이 떨어지니까 입도 떨어지더라. 그게 아니라 말이 떨어지더라는 얘깁니다. 몸이 떨어지니깐 입도 떨어지고 입이 떨어지니깐 말이 떨어지더라는 얘깁니다. 그 뜻이 무슨 뜻이냐 하면 사람이 몸으로써 사량으로써 이 책을 보고 이론으로다가 이거를 알고 그런다면 이 몸이 없어지면은 그것도 없어질 거 아닙니까?
그러나 내 그, 참 내면세계의 참나를, 참나의 주인공을 모든 걸 믿고 참, 물러서지 않고 거기다 모든 것을 맡겨놓을 수만 있다면, 몰락 맡겨놓을 수 있다면 바로 그 속에서, 그 가운데서 바로 내 참맛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량적인 마음으로서의 물질을 보고 그것을 글자 풀이를 하고 그러면서 소리를 내서 읽는 것은 진짜 그 금강경을 배우는 게 아닙니다. 누가 경을 읽지 말라고 하는 건 아닙니다. 그 경을 누가 읽나. 그것을 찬찬히 생각해 보시란 말입니다. ‘누가 읽고 있을까?’ 하고.
- 다음글인간으로 태어났다면 25.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