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법문_206-1997년 05월 04일 우리가 중심에서 한마음이 돼서
본문
큰스님: (질문이) 다 됐습니까?
사회자: 오늘 한 분밖에 없습니다.
큰스님: 왜요?
사회자: 질문자가 없었습니다.
큰스님: 그럼 내가 사월 파일이 돼서 말을 안 했으면 그냥 질문 한 분하고 말았을 거예요?
질문이라는 게 별 게 아니에요. 사람이 살아나가다가 어떠한 게 닥치거나 어떠한 게 안 닥치거나 사람 살아나가는 도리에서 이것도 저것도 다 놓고 가는 도리가 어떠한 것인가 하고 이렇게 닥쳐올 때 그런 거를 인제 생활 속에서, 생활이 교(敎)니깐요, 그냥. 불성이 불(佛)이라고 하죠. 불은 바로 인간의 생명의 근본이 불이에요. 그리고 우리 생활하는 게 교고요. 그렇기 때문에 불교는 어느 종교라는 이름이 아니고 진리라는 이름도 방편이지만 진리라고 할 수밖에 없죠.
그러니깐 우리 중들이 머리 깎고 이 승복을 입은 거, 이 방편도 우리 머리 깎은 사람이 행할 수 있는 그런 도리를 우리가 진실로 지켜가면서 하기 위해서예요. 검지도 않고 희지도 않은 옷을 입는다, 아무리 껍데기라도. 그 껍데기(를) 입는 반면에 우리 마음이 정숙해져야 된다. 이 무명초라 했으니 이 모든 일체 만물이 다 소생이 되고 또 소생이 되고, 또 깎아도 또 소생이 되고 또 깎아도 또 소생이 되고 하니까 이것은 끝이 없는 진리에 관한 건을 우리가 배우기 위해서 이 머리를 깎은 겁니다.
하나서부터 열까지 부처님께서 사생자부가 되신 그 뜻을 생각할 때 '하나서부터 열까지 내가 아님이 하나도 없다.' 하기까지 그걸 얼마나…. 그러니까 니 부모가 따로 없고, 아까도 얘기했지만 뼈 한 무더기 놓고 “야, 사생자부이신 어버이신데 어찌 뼈 무더기에다가 절을 하십니까, 하치 못한. 하치 못한 뼈 무더기에다 절을 하십니까?” 하니까 그걸 가르치기 위해서 “진짜 사생자부라면 미생물에서부터 수없이 부모가 되고 자식이 되고 거듭거듭 바꿔가면서 이렇게, 찰나찰나 화해서 이렇게 거듭거듭 바꿔서 나온 이 자체를 볼 때 어찌 내 부모 네 부모 따로따로 있으랴. 내 할머니가 될 수도 있고 내 아버지가 될 수도 있고 내 어머니가 될 수도 있으니 어찌 그냥 가랴.” 그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그랬다는 얘기죠. 그것이 바로 사생자부가 될 수 있는 과정을 그냥 가르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거죠. 그래서 “너희들도 이거를 알아서 사생자부가 돼라.” 하신 거죠.
그냥, 그냥 이름이 사생자부가 아니죠. 그 과정을, 사생자부의 과정을 거쳤으니까 사생자부가 된 거죠. 도솔천에서, 도솔천이라고 한다면 돌아가는 이 중심에서 과거가 아니라 찰나 전에, 찰나 전에 사실 때에 그렇게 보살행을 하셨기 때문에 찰나 후에 태어날 때는 '너는 석가로서 이름을 갖고 이 세상을 모두 건지고 그렇게 해라.' 하고서 내보낸 것이죠. 그러니까 찰나 전에 했던 것이 찰나 후에 안 닥쳐오리라고 누가 봅니까? 보세요, 다. 찰나 전에 했던 일인데 찰나 후에 이렇게 크게들 모두 닥치는 거 보세요. 찰나 전에 좋다고 했는데 찰나 후에 이렇게 감옥에까지 가게끔 되지 않나…. 그것만 보는 게 아니라 전체가 다 그렇게, 조그만 거든 큰 거든 다 그렇죠. 원리가 다 그러해요.
그러니까 우리가 삼천 년 전이다 해도 찰나 전이고, 삼천 년 후다 해도 찰나 후예요. 지금 현재에도 그냥 찰나찰나 돌아가고 있고요. 그러니 뭐를 거기서 따지고 뭐를 가져야 한다, 이런다 저런다 할 게 있습니까? 그저 우리가 이 도리천 세계, 삼라만상 대우주 중심을, 우리가 중심에서 한마음이 돼서 오로지 자유스럽게 자유권을 얻어서 우리가 모두 나 하고 싶은 대로, 즉 말하자면 어디 길을 지나가다가 억울한 사람이 있다면 그걸 억울하지 않게 대치를 해주고 지나가고, 누가 그랬는지도 알 수는 없겠죠. 누가 그런 일을 그렇게 대치해 줬는지 알 수는 없겠지만, 그 사람 눈에 보이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그 보살행이라는 게 그러한 까닭에 보살행이 아닙니까? 그게 연기법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무(無)의 공법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저 우리가 살아있으면서 열반의 경지에 들어야지 우리가 살아있지 않고 죽어서 열반은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살아생전에 우리는 열반의 경지에 이르러야 됩니다. 그러나 열반의 경지에 못 들었다 할지라도 초발심시변정각이라고 그랬습니다. 내가 처음에 먹었던 마음을 조금도 이렇게 흐트리지 않고 항상 줄창 그대로 나간다면 그대로 각(覺)입니다. 각을 이루는 겁니다. 허망한 생각 조금도 마시고 처음에 하려고 칼을 뺐으면은 그게 바로 변정각입니다.
그럼 여러분들하고 같이 항상 도반이 되기를 바라면서 조금도 흐트러진 마음으로 사시지 않으셨으면 좋겠고 우리가 어떠한 일을 하든 어떠한 생각을 했든 어떠한 생각이 나왔든 꿈에 어떠한 꿈을 꾸었든 모든 걸 감사하게 그 자리에 놓고 살자 이 소립니다. 감사하게 놓을 거는 거기 감사하게 놓고, 잘 안 되고 살 수가 없을 때에는 '너만이 살릴 수 있다.' 하고 거기다 놓고 하고, 그저 오직 한 구멍 한 자리 거기에다가만 그저 잘되는 것 감사하게, 못 되는 거는 '되게끔 하는 것도 너다.' 하고 거기에 감사하게 그렇게 관하시도록 하고 일체 모든 거를 같은 한 자리에서 우리가 도반으로 여기고 산다면 아주 끔찍하게 좋은 일이 벌어질 겁니다,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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