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법문_215-1997년 11월 16일 세세생생을 좌우하는 한철 공부
본문
큰스님: 나는 그래요, 말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이 부처님의 도리와 진리가, 하여튼 그렇게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해도 일어나게 된다는 사실은 자기만이, 자기가 알 수 있는 겁니다. 열심히, 이 공부를 떠나지 말고 물러서지 말고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꼭 성불이라고 할까, 견성이라고 할까? 성불이라고 해두는 게 좋죠. 성불할 겁니다.
큰스님: 왜?
혜수스님: 질문이 끝났으니까….
큰스님: 아, 그러면 어떻게 그냥 질문 끝났다고 그냥 내려가?
큰스님: 이렇게, 이렇게 해야 웃죠. 사람이,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얕은 물에 뜨는 배냐, 깊은 물에 뜨는 배냐? 여기에 따라서 결정이 지어지는 게 아니라, 얕은 물에 뜨려면 작은 배가 되고, 자동적으로. 높은 물에, 깊은 물에 뜨려면 큰 배가 되고 이렇게 할 수 있어야만이 세상 살기가 유유하다 이런 소립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지금 어디에 결정적으로 문제냐? 사람들이, 이렇게 생명들이 살고 있어도 우리가 우주 공간에도 다 우리들의 마음 근본이 살고 있다는 얘깁니다. 물론 멸정처 우주에서도 우리는 하고 있고 또는 은하계 생산처에서도 우리가 하나하나가 살고 있고 또는 북두칠성 거기에서도 우리 생사를 논의하고, 우린 한마음이라면 달과 별도 또는 해도 둘이 아닌 까닭에 우리 지금 살아 나가는 이 진리 속에, 살아 나가는 세상 속에 모두가 결부돼서 돌아가는 거니까 이 결부돼서 돌아가는 것을 우리, 우리 마음이 만약에 좁쌀 알갱이 아니, 티끌 하나라고 하더라도 그 티끌 하나에 다 들어있다는 얘깁니다.
그러니 아까 작은 배가 되고 큰 배가 되고 이렇게 자유자재한다. 이런 법에 의해서 바로 티끌 하나에도 이 우주 삼라대천세계와 더불어 우리 세상도 다 같이 더불어 하고 있다. 모든 게 이름해서 모두가 이름이 주어지는 거고 그렇지, 보살의 이름이라 할지라도 그건 이름으로써 주어진 거지, 진짜 실천은 함이 없이 하는 거죠. 함이 없이 할 줄 아니깐 보살이라는 이름이 주어진 거죠. 우리도 여러분들이 이름에 주어진 이 공부를 하시는 것이 바로 여러분들 몸뚱이가 하는 게 아니라 그 깊은 마음속에서 하는 겁니다.
깊은 마음속에서, 이런 게 있죠. 큰 돌이 있거나 그 돌 밑에 소나무가 있거나 꽃이 있거나 이래도, 그렇게 멀리 있어도 ‘아, 넌 참 교묘하게 뿌리를 꼬아서 올라갔구나! 아유, 참, 얼마나 꼬아서 뿌리가 깊이 내릴 수도 없게 돌 옆을 타고 올라가서 그렇게 고생을 했느냐.’ 그러면 껄껄 웃고 그 대화를 하는 데 대해서 내 몸은 가만히 있는 데도, 예를 들어서 여러분들의 몸도 가만히 있는 데서 때로 생각을 하게 되고 또 때로는 보게도 되고 때로는 하게도 되고, 이렇게 만나게도 되고 이러는 거거든요. 그렇다면은 심심할 게 없죠. 그래서 어딜 가자 그래도 심심할 게 없어서 그냥 때로는 지내기도 하고 또 여러분들이 나가자고 그러면 나가기도 하고 이렇게 하는 거죠. 이것이 모두 삶의 자유니까요.
우리가 그 도리를 완벽하게 좀 더, 내가 때로는 말을 잘못하더라도 믿는 거는 진짜로 믿고 하세요. 나는 잘못하는, 지금 실천적인 얘기지 거짓이 하나도 없는 얘기예요. 그러나 내가 함이 없었기 때문에 실천이란 얘깁니다. 진실이란 말입니다. 여러분들하고 같이 이렇게 지내기도, 내가 그런 생각이 돼요. 지장보살이 문고리를 잡고선 아무리 다 들여보내고 자기가 들어가려고 해도 그치질 않아서 문고리를 잡고선 영 들어가지 못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거를 배워서 실천을 옮기면서, 자기도 모르게 옮겨지면서 이렇게 나가고 있는 분들도 있겠지만 처음 온 분들, 아파서, 처음에는 죄 그래서 모두 오는 분들이죠. 그러면 거기에서 얻어 가지고, 즉 말하자면 믿게 되는 거죠. 자기 주인공을 믿게 되는 거죠. 자기 주인공을 믿으니까 그렇게 낫더라. 그러니까 ‘뭐든지 주인공에만 일임한다면 다 나을 수 있겠구나. 다 할 수도 있겠구나.’ 이렇게 지혜가 생기고 그러니까 ‘업보나 영계성, 유전성 뭐 인과성, 모두가 이렇게 하기만 하면 없어지는구나.’ 하는 걸 알게 되죠.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이, 사는 데 겁내지 말고 굶어 죽을까 봐도 겁내지 말고, 잘 살지 못할까 봐 겁내지도 말고 이 단생에, 우리는 한철 단생에 이 도리를 다 무찌르지 못한다면 세세생생을 얻지 못하고 세세생생을 이렇게 돌아야 하니까요. 때로는 하천세계에 짐승으로도 모습을 갖고, 여자로도 모습을 갖게 되고 남자로도 모습을 갖게 되고, 상세계로는 참, 법신으로서 보살로서 부처로서 이렇게 등등 차원이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면 세세생생을 끄달리지 않아도 좋고 끝 간 데 없죠. 그러니까 우리 한철이 그렇게 중요해요. 세세생생을 좌우하니까요. 그러니까 입산해서 하는 사람들은 속가에서 사는 데에 그 얽히고설킨 문제가 다 없으니까 좀 낫죠. 공부하기가 월등, 삼십 프로는 아마 해온 거죠.
하여튼 열심히 하셔서 부처도 되시고, 부처라는 거 별거 아니에요. 이름이 부처가 아니니까요. 악과 선을 흡수해서 둘 아니게 응용한다면 그것이 평등공법이요. 그 평등공법에서 천차만별로 나가는 갈래갈래를 다 흡수할 수 있는 그런 무기가 되니까요. 보배가 되니까요. 그러면 이제 고만할까요? 누가 한 것도 아니지만…. 뜸을 들였더니 어떠냐, 좀? 밥이 끓자마자 고만 일어서면 뜸이 안 들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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