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법문-67_1992년 12월 6일 자기 마음이 자기를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본문
질문: 저는 소원하고, 한마음 관(觀)하는 것하고, 지금 현재 일반 사찰에서 기도하는 것에 대해서 스님한테 가르침을 받고자 나왔습니다. 저희들이 어떤 원을 할 때 원하는 게 한마음으로 관해 가지고 되는 것도 있고 안 되는 것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눈으로 볼 때에 안 될 때는 왜 안 되는가를 그 원인을 제가 알고 싶고, 현재 절에 가면 입시철이 돼가지고 여러 가지 기도를 하고 또 소원을 기도를 합니다. 스님들께서 시켜서 하는데 그 기도하는 방법이 잘못돼서 안 되는 건지 그 점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 나왔습니다.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큰스님: 본래 부처님이 가르치신 법은 그게 아닙니다. 상대를 보고 해달라고 그런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부처님 형상과 내 형상이 둘이 아니요, 부처님 마음과 내 마음이 둘이 아니요, 그 뜻도 또한 둘이 아니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에 부처님이 내 몸과 둘이 아니고 마음이 둘이 아니라면 해달랠 데가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네 마음을 먼저 알아야 내 마음을 알 수 있느니라. 그럼으로써 네 마음과 내 마음이 둘이 아니니라.' 그렇게 말씀하신 뒤에는 "만약에 네 마음이 전깃줄이라면, 내 마음이 또 전깃줄이라면 전깃줄과 전깃줄이 한데 합치면 불이 들어올 뿐이지 거기서 ‘해달라 안 해달라’ 이런 게 붙지 않느니라.” 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기복이라는 얘기가 지금 나오는데 부처님이 가르치실 때는 그렇게 가르치신 게 아닙니다. “네 마음을 네가 발견해서 깨달아서 자유스럽게 살라. 모두가 일체가 다 공(空)해서 돌아가느니라. 그러고 일체가 너 아님이 없느니라. 일체가 높고 낮음이 없느니라. 그런데 누구한테다가 해달랠 수 있겠느냐. 네 마음 가운데도 도량이 있고 부처가 있고 법이 있고 그런데 어디에다가 해달라고 하느냐.” 하셨습니다. 그런다면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물론 농사를 지어서 벼를 다 추려서 까서 키질을 해서 이렇게 밥을 지어서 먹어야 먹어지는 거지마는 그거는 한 씨앗과 그 모든 경계를 거쳐 나오는 것뿐이지 결실은 그게 아닙니다. 그냥 무조건 갖다가 붙이면 붙어지고 불이 들어올 뿐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학생들 기도드리는 것도 그렇고 또 어떠한 고난이 있고 어떠한 애고가 있고 그래서 기도드리는 것도 있는데 기도드려서 될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모두 여러분들이 자성(自性)이 다 있습니다. 그래서 자성을 다스릴 수 있는, 그 자성으로 인해서 자기 마음이 자기를 다스릴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길러야만이 정신계의 50%와 물질계 50%, 정신계 50%를 알아야 물질계 50%로 나오게 해서 내가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서 ‘집을 지으려고 생각을 했다’ ‘학교를 들려고 생각을 했다’ 이럴 때, 생각을 했다 할 때는 벌써 나는 시험을 봐야 하고 또는 집을 지으려면 설계도가 필요하니까 설계도가 나와야 합니다. 나오면 집이 올라갑니다. 그건 자동적으로 마음이 아니라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요. 그런데 마음을 내지 않고 어디서 해달라고 자꾸, 그러는 것도 마음 내는 거지만 그거는 물 한 모금 쪽박에 얻어 쓰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거는 복을 비는 건데 복을 좀 얻어 쓸 수야 있겠지마는, 이건 내 생각입니다, 얻어 쓸 수야 있겠지만 본래의 타개는 못 합니다. 자기가 명석해질 수도 없고, 물리가 터질 수도 없고, 항상 얻어먹는 노예밖에는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공부하는 사람들도 부모가 이런 데를 다니면 시험 보는 학생들한테도 이 관(觀)하는 법을 아주 간단하게 그렇게 가르쳐 줘라 그러는 겁니다. 자기만이 스위치를 올려서 불을 켤 수 있는 거니까요. 자기가, 자기만이 하는 거지 누구가 해주는 겁니까? 시험을 봐주는 겁니까? 신이 있으면 신이 와서 나를 시험을 보게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신이, 자기가 자기를 이끌어나가는 거죠. 어리석게 그렇게 속아서는 아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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